아들·부인 소유 재산이 의혹 출발점
23조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은닉 재산이 처음 밝혀진 것은 2010년 9월이었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김 전 회장이 해외로 ‘빼돌린’ 자금 가운데 700억여 원의 돈이 베스트리드리미티드(구 대우개발)의 차명 지분 등의 형태로 은닉돼 있는 것을 찾아냈다. 대우개발은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 씨가 회장을 맡고 있었으며 정 씨는 지금도 베스트리드리미티드의 사업 운영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차명 재산의 존재 사실을 시인했으며 검찰이 확보한 주식은 액면가로 모두 770억 원대에 달했다. 또한 검찰은 정 씨가 운영하는 아트선재미술관에 보관돼 있는 미술품 134점(시가 8억 원 상당)도 확보했고, 김 전 회장이 은닉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163만 주와 SK텔레콤 주식 3만2000주도 찾아냈다.다시 쏟아지는 은닉 재산 의혹들
총 1000억여 원의 은닉 재산이 발각돼 재산 은닉 혐의, 즉 추징금 강제집행 면탈로 김 전 회장은 법원에서 다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 전 회장은 집행유예가 만료된 이후 베트남으로 건너가 그동안 한 골프장에서 은둔하며 지내 왔다.
올 들어 그동안 잠잠했던 김 전 회장 은닉 재산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이번에는 김 전 회장의 3남인 김선용 씨가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우선 김 전 회장의 은닉 자금이 방콕은행계좌를 통해 거래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7월 인터넷 탐사 전문 언론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확보한 PTN(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 내부 e메일, 자산관리공사와 김 전 회장이 진행한 민사소송 판결문을 살펴본 결과 김 전 회장의 은닉 자금 다수가 페이퍼컴퍼니와 방콕은행 계좌를 통해 거래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PTN 내부 문서 분석 과정에서 페이퍼컴퍼니인 ‘노블에셋’과 ‘노블베트남’ 사이에 대규모 자금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PTN 직원들의 e메일에는 방콕은행 뉴욕지점이 노블에셋의 지시를 받아 노블베트남으로 2003년 9월부터 2006년 5월까지 670만 달러를 보냈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은 2000년대 초반부터 방콕은행에 개설된 비밀 계좌와 여러 회사를 거쳐 선용 씨 계좌로 송금됐다는 것이 이들의 추론이다. 이들은 선용 씨가 여러 조세 피난처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해 베트남 골프장을 인수한 것에 주목한다.
김 전 회장이 국내를 떠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베트남의 반트리 골프장은 선용 씨의 소유로 돼 있다. 이 골프장은 1993년 대우와 하노이전기공사가 합작한 대하(Daeha Co.Ltd.)가 최초 개발 사업권을 따냈다. 당시 대우의 지분은 70%였으며 하노이전기공사의 지분은 30%였다. 대우가 개발 사업권을 가졌던 베트남 골프장은 약 7년 동안 여러 페이퍼컴퍼니를 거쳐 2010년 김 전 회장의 아들 선용 씨가 결국 소유권을 확보하게 됐다. 이후 김 전 회장 일가의 은닉 재산에 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 짓고 있는 초고층 빌딩 역시 김 전 회장의 은닉 재산과 관계돼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내 한 대기업이 짓고 있는 이 빌딩은 2009년 룩셈부르크에 있는 코랄리스 S.A.라는 회사로부터 용지 사용권을 697억 원에 사들여 공사를 시작했다. 확인 결과 코랄리스 S.A.의 공동 대표는 역시 선용 씨다. 선용 씨 지분은 확인된 것만 18.5%, 100억 원이 넘는다. 이 개발권은 1993년 대우건설이 확보했던 것이었다.
김 전 회장 부인 정 씨와 관련해서는 미술품 은닉 의혹이 불거졌다. 정 씨는 지난해까지 선재미술관을 소유했고 최근 우양산업개발에 매각했다. 이곳에서 장부상 거래 기록이 있는데 행방이 묘연한 미술품 14점을 추적해 보니 김 전 회장 일가 주변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6점은 김 전 회장 차남 선협 씨가 운영하는 서울 대치동 고급 일식당과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흩어져 있었다. 이름이 바뀐 우양미술관 측은 지난해 말 일식당에서 독일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의 사진 2점, 아트선재센터에서 김재학 작가의 ‘장미’ 등 회화 4점을 회수했다. 각각 장부상 감정가로 약 4500만 원과 2300여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작품이다.
아직 돌려받지 못한 작품들은 유영교 작가의 대리석 조각 작품 ‘와상’ 등 모두 8점. 시가 4000만 원 상당인 김봉태 화백의 회화 ‘비시원적’도 포함돼 있다. 부인 소유 국내 골프장은 차명 재산?
한편 부인 정 씨와 일가족은 정치권의 유력 인사들이 드나드는 아도니스골프장도 소유하고 있다. 아도니스골프장 관련 사건은 잘 알려져 있다. 1999년 4월 경기도 파주에 개장한 아도니스골프장의 옛 상호는 ‘주식회사 대우레저’였다. 자산 2350억 원의 아도니스 대주주는 현재 부인 정 씨와 그의 특수 관계인으로, 지분의 82.4%를 소유하고 있다. 사실상 정 씨 측의 골프장이라고 볼 수 있다.
2005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김 전 회장이 1996년 자신의 계좌에서 12억800만 원을 인출, (아도니스) 골프장 지분 100%를 인수해 부인 정희자 씨와 아들 선협·선용 씨 명의로 넘겼다”며 이 골프장의 실소유자가 김 전 회장이라고 지목했다. 이 사건의 불씨는 법원으로 옮겨 붙었지만 법원은 “정당한 주식거래에 따른 소유권 이전”이었다고 판단해 부인 정 씨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아도니스는 종속회사로 골프장 두 곳을 보유하고 있다. 드비치골프클럽의 지분 100%, 에이원CC의 지분 51%를 소유하고 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드비치골프클럽 주식회사는 드비치골프클럽으로 상호를 바꾸기 전인 로이젠 시절 역시 김 전 회장의 차명 재산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2005년 국회 정무위 소속이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나경원 당시 국회의원은 국정감사에서 “1980년 초반 이후 해당 골프장 부지의 소유권 이전 과정을 추적한 결과 골프장 부지가 사실상 김우중 전 대우 회장 일가의 은닉 재산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드비치골프클럽의 자산은 토지 등을 포함해 총 850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의혹은 해명되지 않고 있다.
아도니스가 지분 51%를 소유한 또 다른 골프장 에이원CC는 역시 김 전 회장의 은닉 재산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 골프장의 자산 규모는 1527억 원에 달한다. 김 전 회장의 부인 정 씨가 소유하고 있거나 정 씨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골프장 관련 자산만 어림잡아 3000억 원 정도 되는 셈이다.
김 전 회장의 부인과 아들이 소유한 재산들이 실제로 김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인지 밝혀낼 수단은 현재로선 마땅치 않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녀 등 일가에 대한 압수 수색이 가능했던 것은 지난 6월 국회에서 처리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전두환추징법)’ 때문이다. 검찰은 최근 추진 중인 ‘김우중추징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대로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 추적 때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추징 환수 전담팀을 꾸려 은닉 재산 추적에 나설 계획이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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