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아름다운 이별’이 최선

Q 저는 30대 중반으로 직원이 400여 명인 제조회사의 사장입니다. 올해 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갑자기 회사 경영을 책임지게 됐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뒤 3년 정도 회사에서 일해 왔습니다. 그 덕분에 업무는 웬만큼 파악하고 있어 다행히 대표이사직을 수행하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정작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임원들이 제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상당수의 임원들이 제가 무슨 말을 해도 건성으로 듣고 맙니다. 저를 존중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창업 초기부터 아버지와 동고동락한 분들로 연배가 많습니다. 회사에 대한 애정이 강하고 지금도 조직의 핵심적 위치에 있습니다. 또 저를 어릴 적부터 봐 왔기 때문에 허물없이 대합니다. 그러나 회사엔 그들 말고도 많은 직원들이 있습니다. 또 저의 대외 활동이 늘고 있기 때문에 임원들의 이런 태도는 저뿐만 아니라 회사에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A1. ‘아버지의 사람들’과 빨리 헤어지세요
나이 많은 부하 직원과 일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그 부하 직원이 창업 공신이자 현재 회사의 핵심 임원이고 게다가 자신이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아버지의 사람들’이라면 그들을 중심에 놓고 회사를 경영하는 귀하가 얼마나 힘들지 이해가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아버지의 사람들’과는 빨리 헤어져야 합니다. 그들이 아버지와 함께 회사를 일군 핵심 임원들이지만 최고경영자(CEO)가 바뀐 이상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교체해야 합니다. 임원들 본인을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자리를 바꿔 주는 게 옳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임 CEO인 귀하가 리더십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과거 고려나 조선의 역사를 보면 나이 어린 왕에게 왕권이 넘어갈 때 왕과 신하들 간 갈등이 생깁니다. 고려나 조선처럼 새로운 왕조를 만들 때부터 선왕과 함께 나라를 이끌어 온 신하들은 나이 어린 왕을 새로운 리더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장 과정을 지켜본 아들 왕이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쉽게 인정할 신하는 많지 않았을 겁니다. 북한에서 나이 어린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김일성 김정일과 함께 북한을 이끌어 온 원로 그룹을 지휘하려는 것과 상황이 비슷할 겁니다.

일반적으로 사람 간 관계는 첫 만남이 결정할 때가 많습니다. 한 번 맺어진 관계는 이후 상황이 변해도 잘 안 바뀝니다. 처음 어떻게 만났느냐가 평생 영향을 미칩니다. 이에 따라 연배가 많은 임원들의 눈엔 귀하가 회사의 최고경영자로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보스의 리더십은 ‘누가 뽑았느냐’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뽑거나 선택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선택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내 권위를 더 인정합니다. 기본적으로 상사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수장이 바뀌면 주요 임원을 자기 사람으로 바꾸는 것도 이런 사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귀하도 가급적이면 새로운 임원을 뽑아 쓰는 게 맞습니다.


A2. 섭섭함 해소 방법은 ‘파격적 보상’ 뿐
문제는 교체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귀하 회사의 임원들은 회사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에 쉽사리 자리를 비켜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비즈니스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봐서 교체 과정에서 업무의 인수인계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조직 운영에 혼선이 빚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경우에 따라선 사업이 타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단계적으로 교체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최대한 예의를 갖춰 떠나는 임원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Business man facing large group of business people in formation, elevated view
Business man facing large group of business people in formation, elevated view
보스의 리더십은 ‘누가 뽑았느냐’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선택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내 권위를 더 인정합니다.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떠나는 임원들로선 섭섭함을 완전히 해소하긴 어려울 겁니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회사가 자신에게 임원까지 승진시키면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게 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회사의 희망 사항일 뿐입니다. 떠나는 입장에선 회사의 배려보다 자신이 그동안 회사에 쏟은 노력, 겪었던 어려움, 만들어 낸 성과 같은 것들을 주로 떠올리게 됩니다. 이 때문에 마음이 상한 일부 임원들은 회사 안팎에 회사와 CEO에 대한 부정적 소식을 전파하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선 회사의 주요 정보나 기술을 유출하기도 합니다. 이사로 퇴직하든, 부사장으로 퇴직하든 섭섭함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직급이 높고 근무 기간이 길수록 섭섭함의 강도는 더 세집니다.

이 때문에 외국계 기업이나 국내 대기업들은 퇴직하는 주요 임원들에게 직급에 따라 1~3년간 고문이나 자문을 맡기면서 상당히 예우합니다. 퇴직자 전직 지원 제도인 아웃 플레이스먼트를 활용하는 기업도 많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퇴직에 따른 심리적 불안을 최소화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퇴직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줍니다. 기업들이 이 제도를 채택하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업들이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핵심 목적은 전직 지원보다 퇴직자들이 받는 충격을 줄여주는 ‘퇴직자 충격 완화’나 섭섭함과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퇴직자 감정 완화’에 있습니다.

섭섭함을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파격적으로 보상해 주는 것입니다. 창업해 회사를 일군 경영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일이 창업 공신을 정리하는 겁니다. 대부분의 창업 경영자들이 이 문제 때문에 심한 가슴앓이를 합니다. 어떤 경영자는 이들을 정리하지 못해 조직이 오랫동안 성장 정체를 겪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잘 마무리한 경영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회사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보상해 줬다”고 말합니다.


A3 .나이 많은 부하 움직이는 솔선수범
기존 임원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조직 내 리더십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임원들에 대한 정리가 끝날 때까지는 그들을 데리고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손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지식이 앞서는 부하 직원, 경험이 많은 부하 직원을 따르게 하는 방법은 솔선수범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상사보다 경험과 지식이 많은 부하 직원들은 상사의 지휘 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직급이나 권한을 행사해 강압적으로 따르게 하다간 부작용만 키우게 됩니다.

솔선수범은 아무리 문제가 많은 직원도 움직이게 합니다. 가끔씩 높은 직급의 간부들이 업무에 필요한 일을 먼저 하고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상사가 조직의 목표, 조직에 요구되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데도 이를 외면할 부하 직원은 많지 않습니다.

웃는 사람에게 침을 뱉기 어렵고 엎드린 사람을 밟기 어려운 법입니다. 어떻게 하든 나이 많은 창업 공신들의 마음을 사야 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은 솔선수범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세요.

언제나 조직은 리더십의 크기만큼 성장합니다. 특히 조직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어떻게 얼마나 이끌어 내느냐가 성과를 좌우합니다. 그런데 제가 목격하고 체험한 것 중 직원들의 마음을 사는 최선 방법은 솔선수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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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만의 CEO 코칭] 사장 인정하지 않는 창업 공신
커리어케어 회장·‘보스가 된다는 것’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