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자금 유입 ‘위장된 축복’될 수도

매년 10월이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다음 연도 환경을 토대로 경영전략을 구상하거나 짠다. 가장 신경 쓰는 변수는 환율이다. 시기적으로 민감한 때에 외국인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크게 떨어짐에 따라 기업들이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하락할 것인지가 문제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바이 코리아 이후’ 대응 시나리오
갑작스러운 외국인 자금 유입 근거로 한국 증시의 저평가 요인을 꼽고 있다. 주가수익률(PER)이 10배 이내로 다른 국가에 비해 낮다는 것이다. 이 요인은 금융 위기 이후 주가 예측이나 투자 권유 차원에서 계속해 거론돼 온 점을 감안하면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대립 구조’로 특징짓는 21세기 세계경제 질서에서 두 권역의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한국과 같은 국가들은 대전환기에 대기성 자금을 넣어둘 수 있는 최적국으로 분류된다. 신흥국으로 양적 완화 추진 과정에서의 매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선진국으로 출구전략 추진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기준은 ‘캐시 플로(cash flow: 현금 흐름)’다. 크게 두 가지, 즉 재정과 외환 건전성이다. 국제 기준(중앙과 지방 정부의 현시적 채무)으로 한국은 소득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34% 내외로 재정 건전국으로 분류된다. 신흥국의 위험 수준인 7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외자는 재정수지보다 더 건전하다. 우리 외화보유액은 스톡 면에서 직접적으로 갖고 있는 제1선 자금과 간접적으로 확보한 제2선 자금을 합하면 4000억 달러가 넘는다. 최광위의 캡티윤 개념으로 추정된 적정 외화보유액 3700억 달러가 넘는다. 플로 면에서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6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샌드위치 위기’ 대비해야
현재 보유하고 있는 외화와 경상수지를 감안해 신흥국을 분류하면 두 지표에 문제가 없는 ‘캐시 플로 건전국’으로는 한국·멕시코·대만·중국이 꼽힌다. 이미 위기 조짐이 일고 있는 ‘캐시 플로 불건전국’은 인도·인도네시아·태국·터키다. 두 국가군의 중간 단계로 위기가 발생하면 점염될 우려가 있는 ‘캐시 플로 중립국’은 브라질·필리핀 등이다.

앞으로 출구전략이 추진되면 투자 가용 자금이 곧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금과 미국 국채, 일부 신흥국에서 이탈한 자금과 국채(혹은 주택저당증권) 매입 규모를 축소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중앙은행(Fed)이 제공하는 본원통화는 나오기 때문이다. 현금 보유 성향이 높아져 시중 자금이 퇴장되지 않는다면 자금의 속성상 어디론가 투자된다.

세 가지 자금 흐름이 예상된다. 이미 안전 선호 자금은 미국 등 선진국으로 제자리를 찾고 있다. 출구전략 피해가 적고 갈수록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프런티어 마켓에는 고위험·고수익 추구 자금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중위험·중수익 추구 자금은 캐시 플로가 건전한 한국과 같은 신흥국에 머무르거나 신규로 유입되고 있다. 캐시 플로 건전 신흥국에 안전 지향 자금이 들어와 주가가 올라가고 통화가치가 절상되면 진정한 의미의 차별화다. 하지만 펀더멘털이 받쳐 주지 못한다면 차별화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통화가치가 절상돼 경기가 침체되면 거품 발생이 촉진돼 나중에 자금이 빠지는 과정에서 더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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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전략 추진 전후 글로벌 자금 흐름에 캐시 플로가 중시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적정 이상의 외화 보유,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상대적으로 건전한 재정수지 등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가가 상승하고 기대까지 겹치면서 ‘신흥국과는 다르다’는 차별화 주장에 의외로 큰 공감대가 마치 우리 경제가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펀더멘털 측면에서는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1% 포인트 이상의 ‘디플레 갭’이 발생할 만큼 완전하지 못하다. 내년에도 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은 건전한 재정수지도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어 언제든지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외화 건전성도 삼성과 현대그룹의 의존도가 높아 질적으로는 건전하지 않다.


적정 환율 1070원 …환위험 관리 비상
이 때문에 주목해야 할 것은 앞으로 정책이나 경기, 투자자 성향이 어느 한 방향으로 잡힐 때 지금처럼 한국에 외국인 자금이 계속 들어올 것인지 하는 점이다. 출구전략이 추진되면 신흥국들이 지금의 성장통(痛)을 개선하지 못하면 선진국이 더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도 유동성보다 펀더멘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쪽으로 이동될 가능성이 높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같은 중간자 위치에 있는 국가들은 최근처럼 정책이나 경기 등에서 양면성을 갖고 있는 대전환기에는 사람과 돈이 몰려든다. 일종의 ‘샌드위치상의 대기 혹은 도피성 매력’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한편으로 방향이 잡혀갈 때에는 들어왔던 사람과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큰 어려움이 닥친다. 이른바 ‘샌드위치 위기론’이다.

하루 빨리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을 준선진국 지위에 맞게 끌어올려야 한다. 재정수지도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외화도 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뒤따를 때에는 지금의 외자 유입이 ‘진정할 축복’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지금의 외자 유입이 후에 더 큰 화(禍)를 닥치게 하는 ‘위장된 축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예산안 처리 불발 등으로 출구전략 추진이 예상보다 지연돼 현 국면이 당분간 지속되면서 코스피 지수가 더 올라가고 원·달러 환율이 더 하락하는 국면이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 펀더멘털이 채 개선되기 전에 출구전략이 추진되면 정반대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다. 두 가지 시나리오에 동시에 대비해 놓아야 할 때다.

현재 환율 구조 모형 등을 통해 추정된 원·달러 환율의 적정 수준은 달러당 1070원 내외다. 교역국의 통화가치와의 교환 비율인 환율은 적정 수준에서 상하로 50원 범위대에서 움직이는 것이 정상적인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 범위대에서 이탈된 것은 ‘위험 지대(오버 혹은 언더 슈팅)’로 곧 돌아온다.

환율 예측도 적정 수준 밑으로 떨어지면 올라가고 높으면 떨어진다고 보면 무난하다. 그 반대로 떨어지면 더 떨어지고 올라가면 더 올라간다고 보는 순응성 환율 예측이 문제다. 펀더멘털이 개선되면 그만큼 적정 수준을 낮추면 된다. 앞으로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환위험 관리를 잘해야 한다.

정책적으로 외자 유입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자의 대처 방안은 종전의 ▷유입 외자를 사들이는 태화 개입 ▷유입 외자를 사들이되 풀리는 국내 여신을 흡수하는 불태화 개입 등이 있지만 올해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신흥국의 자금 이탈과 환율 방어책으로 권고한 ‘영구적 불태화 개입(PSI)’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PSI는 국부 펀드나 내국인을 권유해 유입 외자만큼 해외 자산을 사들이고 외자 이탈 시에는 이 자산을 들여오는 방안이다. 이때 외자 유·출입에 따른 환율 급등락을 방지해 금융시장과 경제 주체의 착시와 교란을 방지할 수 있다. 페이-고, 간지언,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재정 중화 정책(FSP) 등과 함께 뉴 노멀 시대에 적합한 제3의 정책 대안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