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계가 검찰과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정부 및 국회의 전방위 압박에 맥을 못추고 있다. 투자 위축은 물론이고 ‘제2의 경제 위기설’마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9월 27일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이 구속됨으로써 구속 상태인 오너 최고경영자(CEO)는 8명으로 늘어났다. LIG그룹 부자 동시 구속 사태가 벌어진 지 불과 2주 만에 재계 3위 기업 SK의 형제가 동시에 구속된 것이다. 이에 따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 구자원 LIG그룹 회장, 구본상 LIG 넥스원 부회장 등이 모두 ‘옥고’를 치르고 있다.
[ISSUE&TOPIC] 흔들리는 재계, 곳곳서 압박 받아…투자 위축 ‘ 현실화’
이뿐만이 아니다. 아예 그룹 자체가 와해되는 상황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재계 38위 동양그룹은 그룹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또한 ‘샐러리맨 신화’를 일궜던 STX그룹과 웅진그룹 모두 무너졌다. 롯데그룹·포스코 등에는 국세청의 전방위 세무조사가 펼쳐지고 있다. 전통의 대한전선은 오너가 ‘너무 힘들다’며 경영권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여기에 국회의 경제 민주화 입법 등이 속도를 내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대내외 경영 환경이 만만치 않다며 속도 조절론이 고개를 드는가 싶었지만 이내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 당국은 너나 할 것 없이 서슬 퍼런 칼을 꺼내들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과 기업인들이 잇달아 무너지는 모습을 보니 1998년 경제 위기 당시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글로벌 경제 상황도 한국에 좋지 않게 돌아가는 데 이러다가 ‘제2의 경제 위기’가 오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칼날이 효성에게까지 겨눠지자 재계는 말 그대로 ‘경악’하고 있다. 지난 10월 11일 검찰은 수천억 원대의 탈세 혐의와 관련해 효성그룹 본사 등을 압수 수색했다. 재계는 효성에 대한 검찰 수사 방침이 알려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쪽으로는 기업에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기업을 압박하는 정부의 이중적인 스탠스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투자 위축은 이미 현실이 됐다. 최태원 회장이 통신·정보기술(IT)·에너지 사업의 동남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공을 들였던 태국에서의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잉락 친나왓 총리 등 정부 최고위층 인사, 주요 기업체 최고경영진과 대면 접촉이 가능했던 최 회장을 대체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화도 마찬가지다. 비스마야신도시 수주를 계기로 이라크 재건 사업의 연속 수주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추가 발주는 모두 힘들어졌다.

이 또한 현지 최고위 레벨과의 라인이 두절된 때문이다. CJ그룹 역시 그렇다. CJ제일제당이 ‘라이신 글로벌 1위’ 생산력 확보를 위해 진행해 오던 중국 업체 인수 협상이 잠정 중단됐고 사료 사업도 중국과 베트남에서 최종 단계까지 진행된 투자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에 제동 걸리는 사례 잇달아
수사 대상이 효성이라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전부터 몇몇 기업들이 현 정부 출범 당시부터 ‘찍혀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최근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정말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기업들이 다음 정부도 현 정부와 가까웠던 기업들을 수사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그 누가 투자나 고용 확대에 앞장서겠느냐”고 반문했다.

10년도 더 된 일들을 현재의 잣대로 수사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국세청이나 검찰이 문제 삼는 부분은 1998년 경제 위기 당시 생긴 일들”이라며 “많은 기업들이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적자금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그간 눈물겨운 노력을 해왔지만 모두 물거품이 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