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국회의 경제 민주화 입법 등이 속도를 내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대내외 경영 환경이 만만치 않다며 속도 조절론이 고개를 드는가 싶었지만 이내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 당국은 너나 할 것 없이 서슬 퍼런 칼을 꺼내들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과 기업인들이 잇달아 무너지는 모습을 보니 1998년 경제 위기 당시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글로벌 경제 상황도 한국에 좋지 않게 돌아가는 데 이러다가 ‘제2의 경제 위기’가 오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칼날이 효성에게까지 겨눠지자 재계는 말 그대로 ‘경악’하고 있다. 지난 10월 11일 검찰은 수천억 원대의 탈세 혐의와 관련해 효성그룹 본사 등을 압수 수색했다. 재계는 효성에 대한 검찰 수사 방침이 알려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쪽으로는 기업에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기업을 압박하는 정부의 이중적인 스탠스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투자 위축은 이미 현실이 됐다. 최태원 회장이 통신·정보기술(IT)·에너지 사업의 동남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공을 들였던 태국에서의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잉락 친나왓 총리 등 정부 최고위층 인사, 주요 기업체 최고경영진과 대면 접촉이 가능했던 최 회장을 대체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화도 마찬가지다. 비스마야신도시 수주를 계기로 이라크 재건 사업의 연속 수주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추가 발주는 모두 힘들어졌다.
이 또한 현지 최고위 레벨과의 라인이 두절된 때문이다. CJ그룹 역시 그렇다. CJ제일제당이 ‘라이신 글로벌 1위’ 생산력 확보를 위해 진행해 오던 중국 업체 인수 협상이 잠정 중단됐고 사료 사업도 중국과 베트남에서 최종 단계까지 진행된 투자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에 제동 걸리는 사례 잇달아
수사 대상이 효성이라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전부터 몇몇 기업들이 현 정부 출범 당시부터 ‘찍혀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최근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정말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기업들이 다음 정부도 현 정부와 가까웠던 기업들을 수사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그 누가 투자나 고용 확대에 앞장서겠느냐”고 반문했다.
10년도 더 된 일들을 현재의 잣대로 수사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국세청이나 검찰이 문제 삼는 부분은 1998년 경제 위기 당시 생긴 일들”이라며 “많은 기업들이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적자금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그간 눈물겨운 노력을 해왔지만 모두 물거품이 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