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 위기 해소 이후

“미국 경제는 오늘 총탄을 피했다. 그러나 안도는 잠시뿐. 내년 1월부터 다시 결투가 시작된다.”

미국 정치권이 연방 정부 셧다운(일부 폐쇄)과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해소하는 방안에 극적으로 타협한 10월 16일(현지 시간) 폴 에덜스타인 IHS글로벌 인사이트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협상으로 위기가 해소된 게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YONHAP PHOTO-0611> U.S. President Barack Obama speaks in a prime-time address to the nation from the East Room of the White House in Washington, July 25, 2011, as polarized lawmakers failed to rally behind a plan to avert a disastrous debt default perhaps just one week away. Obama said on Monday a temporary six-month extension of debt ceiling does not solve the problem and might not be enough to avoid credit downgrade. REUTERS/Jim Watson/Pool (UNITED STATES - Tags: POLITICS BUSINESS)/2011-07-26 11:15:23/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U.S. President Barack Obama speaks in a prime-time address to the nation from the East Room of the White House in Washington, July 25, 2011, as polarized lawmakers failed to rally behind a plan to avert a disastrous debt default perhaps just one week away. Obama said on Monday a temporary six-month extension of debt ceiling does not solve the problem and might not be enough to avoid credit downgrade. REUTERS/Jim Watson/Pool (UNITED STATES - Tags: POLITICS BUSINESS)/2011-07-26 11:15:23/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미 의회 상·하원은 이날 잠정예산안과 부채 한도 적용을 일시적으로 유예하는 내용의 법안을 각각 통과시켰다. 사상 초유의 국가 디폴트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지만 시장 참가자들의 불안 심리는 여전하다. 정치권이 급한 불을 껐지만 연방 정부 셧다운과 디폴트 위기를 불러온 핵심 쟁점은 건드리지 않고 데드라인만 몇 달간 뒤로 미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우선 2014 회계연도(2013년 10월~2014년 9월) 예산을 전년 수준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내년 1월 15일까지 적용되는 잠정예산안(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10월 1일부터 16일 동안 일시 해고 상태였던 40만여 명의 공무원은 10월 17일부터 복귀했다. 폐쇄됐던 국립공원이 문을 여는 등 연방 정부 기능은 정상화됐다.

정치권은 또 내년 2월 7일까지 연방 정부의 법정 부채 한도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다. 재무부는 부채 한도(현재 16조7000억 달러)에 구애 받지 않고 국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됐다. 디폴트 데드라인이 내년 2월 초로 연기된 셈이다.

민주·공화 양당은 이와 함께 오는 12월 13일까지 세제 개혁과 복지 예산 조정 등을 통해 재정 적자를 줄일 수 있는 본예산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본예산안에 합의하지 못해 또다시 잠정예산안을 편성하면 내년 1월 ‘2차 예산 자동 삭감(시퀘스터)’ 조치가 발동된다. 협상의 핵심 쟁점이었던 건강보험개혁법(일명 오바마 케어)은 기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오바마 케어 폐기와 예산 삭감을 요구하며 대치하던 공화당이 싸움에서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평가다.

정치권이 무려 2~3주 동안 셧다운과 국가 디폴트를 볼모로 벼랑 끝 대치를 벌였지만 승자 없는 게임이었다. 공화당이 ‘완패’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리더십에도 큰 흠집이 생겼다. “우리는 성공할 수 없는 전략을 갖고 싸웠다.” “내년 부채 한도 협상에서 싸울 무기가 약화되고 말았다.”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선 한숨 소리만 나왔다.


공화당 완패…오바마 리더십도 흔들
셧다운이 길어지면서 공화당 지지율은 24%로 주저앉아 1989년 이후 2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공화당 책임론이 53%에 달했다. ‘정치적 참사’라는 자평도 나왔다. 내년 중간선거 위기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보수파 의원들이 오바마 대통령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오바마 케어 폐기’라는 카드를 들고나온 게 ‘패인’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보수 유권자 단체인 티파티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경제 충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국제 신용 평가 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날 셧다운의 경제적 손실이 240억 달러에 이르고 4분기 경제성장률이 0.6% 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더욱 큰 문제는 위기가 잠시 가라앉았을 뿐이라는 점이다. 미 정치권의 이번 합의는 2014 회계연도 예산안과 부채 한도 상향 조정을 3~4개월 뒤로 미룬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개혁법, 세금 및 지출 삭감 등을 둘러싼 정치권 대립이 해소되지 않는 한 내년 초에 셧다운과 디폴트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12월 중순의 재정 적자 감축안을 시작으로 1월 중순 예산안 협상, 2월 초 부채 한도 협상 등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한폭탄이 예고돼 있다.


워싱턴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