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스티브 잡스…우주개발 꿈 현실로
10 월 초 유튜브에 동영상 한 편이 올라왔다. 시애틀 근교 고속도로를 달리던 테슬라 전기차 모델S가 금속 물체에 부딪친 후 화염에 휩싸인 충격적인 장면을 담고 있었다. 화재 위험이 높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는 테슬라에 치명타가 될 만한 내용이었다. 연초 이후 줄곧 오르던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하루 만에 시가총액 24억 달러가 날아갔다.엘론 머스크(42)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섰다. 사건의 전말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e메일을 전체 고객에게 보냈다. 금속 물체가 차량 하부를 강타해 0.25인치 보호 강판에 3인치 지름의 구멍을 낼 정도로 강한 충격을 줬다는 것이다. 이 충격으로 전면 배터리 모듈에 화재가 발생했지만 승객이 있는 곳으로 확산되지 않았고 운전자가 아무 부상 없이 안전하게 차를 멈추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반적인 휘발유 차량에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상황은 더 심각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모델S 배터리는 16개 모듈로 나눠져 있고 각 부분을 방화벽이 감싸고 있어 훨씬 안전하다고 해명했다. 공상과학을 현실화하는 천재
모델S의 화재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화재보호협회 통계와 비교해도 모델S의 화재 가능성은 일반 차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머스크 CEO는 불붙은 모델S 소유자와 경영진이 주고받은 e메일도 함께 공개했다. 사건 당사자는 “불이 나긴 했지만 차가 잘 작동했다”며 “여전히 모델S의 열성 팬”이라고 썼다. 머스크 CEO는 이런 내용을 회사 블로그에도 올렸다.
머스크 CEO의 적극적인 해명으로 비판적이던 인터넷 여론도 수그러들었다. 주가도 다시 상승세로 반전했다.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인 40대 억만장자 기업가의 빠른 판단력과 솔직함이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머스크 CEO는 인터넷을 통해 자기 의견을 거침없이 개진한다. 잘못된 비판에는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세계가 주목하는 실리콘밸리 전기차 기업 테슬라에서 머스크 CEO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는 CEO와 함께 ‘최고 제품 설계자’ 타이틀을 갖고 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못지않은 마이크로 경영으로 유명하다. 회사 규모가 몰라보게 커졌지만 모든 세부 사항을 여전히 직접 챙긴다. 누구나 함께 일한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부터 사진을 찍는 듯한 비상한 기억력을 자랑했다. 그는 누구든 자신의 지시를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해고하는 냉혹함도 갖고 있다. 상대가 무안해질 만큼 직선적이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직원에게 절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머스크 CEO는 182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미남형이다. 개인 재산이 48억 달러에 달하는 억만장자다. 두 번 이혼하고 다섯 명의 자녀가 있지만 여전히 할리우드 스타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특유의 억양과 어눌한 말투가 유일한 단점이다. 쉽고 간결한 프레젠테이션으로 이를 커버한다.
머스크 CEO는 경영자로서 동물적 본능을 지녔다. 자신의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법도 알고 있다. 지난 8월 그의 초고속 진공 튜브 열차 아이디어가 주요 미디어를 장식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를 진공 튜브로 연결하고 그 안에 특수 제작한 열차를 쏘아 이동 시간을 30분 이내로 단축한다는, 어찌 보면 다소 황당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언론과 투자자들은 비범한 그의 구상이라는 점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
머스크 CEO는 많은 사람에게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를 연상시킨다. 경영 스타일에서 거침없는 독설까지 많은 공통점을 지녔다. 잡스 창업자가 스티브 워즈니악과 21세에 애플을 창업하고 25세에 기업공개로 큰돈을 번 것처럼 머스크 CEO도 23세에 친동생과 첫 회사 Zip2를 세웠고 28세에 이를 컴팩에 팔아 억만장자가 됐다.
잡스 창업자처럼 머스크 CEO도 20대부터 실리콘밸리의 유명 인사였다. 실리콘밸리에서 아직도 위세를 떨치는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다. 그를 제대로 알려면 테슬라만 봐서는 안 된다. 그는 스페이스엑스라는 또 다른 혁신 기업을 갖고 있다. 미국 최대 태양광발전 시스템 공급자인 솔라파워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 인터넷과 지속 가능 에너지, 우주개발로 삶의 방향을 정한 후 그 꿈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머스크 CEO는 1971년 남아공의 행정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엔지니어, 어머니는 캐나다 출신 패션 모델이자 저명한 영양 컨설턴트였다.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운 그는 12세 때 스페이스 인베이더 스타일의 비디오 게임 ‘블래스타’를 만들어 500달러를 받고 게임 잡지에 팔았다. 첫 비즈니스 거래였다. 17세가 되자 군 복무를 피하기 위해 혼자 어머니의 모국인 캐나다로 건너갔다. 인종 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의 첨병이 되는 걸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캐나다 킹스턴 퀸스대를 2년 동안 공부하며 검소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항상 돈에 쪼들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곤 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 장학금을 받고 편입해 경제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졸업과 함께 스탠퍼드대에서 응용물리학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실리콘밸리로 갔지만 수업엔 들어가지 않았다. 공부 대신 팰로앨토의 아파트에서 한 살 어린 친동생 킴발 머스크와 Zip2를 창업했다. 전통 미디어 기업을 위해 지도와 시티 가이드, 비즈니스 주소록, 부동산 정보 등을 서비스하는 비즈니스였다. 머스크 형제는 뉴욕타임스와 시카고트리뷴 등 대형 미디어를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1999년 알타비스타를 갖고 있던 컴팩이 이 회사를 2200만 달러에 인수했다.
페이팔 매각해 단숨에 억만장자
머스크 CEO는 수천만 달러를 손에 쥐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인터넷 금융회사 엑스닷컴(X.com)을 창업했다. 페이팔 신화의 출발이다. 몇 년 후 경쟁사 컨피니티를 합병해 페이팔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머스크 CEO가 새 회사의 최고경영자를 맡았다. 그는 e메일을 통한 지불 시스템의 성공 가능성을 재빨리 알아채고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이베이 사용자들이 지불 수단으로 페이팔을 사용하는 걸 눈여겨봤다. 신규 가입자를 데려오면 10달러를 주는 바이럴 마케팅으로 회원수를 대폭 끌어올렸다. 벤처 거품 붕괴로 주식시장이 무너졌지만 페이팔은 2002년 초 기업공개에 성공했다. 5개월 후 이베이가 15억 달러의 거액에 페이팔을 인수했다.
최대 주주인 머스크 CEO도 하루아침에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일 때부터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성공의 정점에서 다음 단계를 내다본 것이다. 그가 먼저 선택한 것은 전기차가 아니라 우주개발이었다. 1억 달러를 투자해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엑스를 설립했다. 비싼 로켓 발사 비용이 1960년대 이후 우주탐사의 정체를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저렴한 로켓 개발이 스페이스엑스의 목표였다.
테슬라는 이듬해인 2003년 설립됐다. 5명이 공동 창업자로 참여했고 최대 주주인 머스크 CEO가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테슬라는 고급차 시장에 우선 진출해 부유층을 공략하고 시장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대중차 시장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첫 프로젝트는 전기차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는 고성능 스포츠카 개발로 정해졌다. 한동안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7년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4년간 노력 끝에 야심작 로드스터가 출시됐지만 웬일인지 차를 생산할수록 손실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내부 감사 결과 제작비가 차 가격을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가격만이 아니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능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분노한 머스크는 당장 CEO를 해고했다. 부품 공급 협상을 다시 하고 비용을 낮추는 고통스러운 노력이 시작됐다. 테슬라는 이듬해까지 30%의 직원을 해고했다. 차세대 모델인 ‘모델S’를 개발하던 디트로이트 사무소도 폐쇄됐다.
2008년 여름 글로벌 금융 위기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 와중에 소설가인 첫 번째 부인과 이혼했다. 이혼한 부인은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스페이스엑스도 절망적이었다. 기대했던 로켓 발사가 3회 연속 실패했다. 머스크 CEO가 쏟아부은 1억 달러도 바닥을 드러냈다. 2006년 설립한 솔라시티도 수요가 줄면서 매출이 반 토막 났다. 테슬라는 운영 자금이 4개월 치밖에 남지 않았다. 그의 꿈이 담긴 3개 기업이 동시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머스크 CEO는 지금도 2008년 여름을 생각하면 두렵다고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 축축해진 베갯머리를 보고 밤새 자신이 흐느꼈음을 깨닫곤 했다.
‘모델X’로 질주 이어지나
머스크 CEO는 한 달 만에 4번째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발생하면 원인 규명에만 수개월이 걸린다며 성급한 결정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2008년 9월 팔콘1 로켓이 민간 로켓 최초로 위성 궤도에 도달했고 3개월 후 나사(NASA)에서 16억 달러 규모의 로켓 발사 계약을 따냈다. 머스크 CEO는 테슬라에서도 리스크가 큰 도박을 했다. 이사회를 열어 4000만 달러 증자를 제안했다. 그는 맨 먼저 마지막 남은 개인 돈 2000만 달러를 전부 걸었다. 그의 결단이 주주들을 움직였다. 이때부터 직접 CEO를 맡아 경영 전면에 나섰다. 머스크 CEO는 전기차를 개발하는 자동차 대기업에 배터리 팩을 판매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는 테슬라가 세계 최고의 배터리 기술을 갖고 있다고 확신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로 날아가 다임러 경영진을 설득했다. 스마트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 팩을 공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이와 함께 친환경차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연방 정부 대출 프로그램에 신청서를 냈다.
좋은 소식이 차례로 날아들었다. 다임러가 스마트용 배터리 팩 1000개를 주문했다. 금액으로 4000만 달러어치에 달했다. 숨통이 트였다. 다임러는 테슬러의 지분 10%도 사들였다. 얼마 후 도요타가 다임러의 뒤를 이었다. 연방 정부로부터 4억6500만 달러 대출 승인도 받았다. 모델S를 개발하기 위한 실탄이 확보된 셈이었다. 2010년에는 나스닥에 주식을 상장했다. 1965년 포드 이후 기업을 공개한 첫 미국 자동차 기업이 됐다.
모델S는 작년 7월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바탕에는 기존 자동차 산업의 관행을 깬 머스크 CEO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자리해 있다. 미국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딜러 체제에 도전장을 던졌다. 애플스토어를 닮은 전시장을 쇼핑몰에 열어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에 나섰다. 모델S는 이들 41개의 전시장과 온라인을 통해서만 판매된다.
머스크 CEO는 전기차의 주행거리에 대한 소비자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미국 전역에 초고속 충전소인 슈퍼차저 네트워크를 까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 북미에 25개 슈퍼차저가 건설됐다. 머스크 CEO는 슈퍼차저를 빠른 속도로 확대해 내년 미국 인구 80%와 캐나다 일부까지 커버할 계획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테슬라는 모델S 배터리를 90초 이내에 충전이 완료된 새 배터리로 교체하는 ‘배터리 스와프’ 서비스도 선보였다.
머스크 CEO의 다음 타깃은 보급형 시장이다. 내년 말 나오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X’가 출발점이다. 뒷좌석 문이 위로 열리는 팔콘 윙 디자인이 특징적이다. 가격은 떨어지지만 모델S의 파워트레인은 그대로 사용해 성능은 그대로다. 모델X가 노리는 시장은 BMW의 i3 등 경쟁사 신모델로 붐빌 전망이다. ‘꿈꾸는 천재’ 머스크 CEO가 또 한 번 진짜 실력을 발휘해야 할 승부처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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