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d 100년 역사 첫 여성 의장 재닛 옐런

지난 10월 8일(현지 시간) 저녁 백악관에서 한 통의 e메일 날아왔다.
‘내일 오후 3시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차기 중앙은행(Fed) 의장에 재닛 옐런 현 부의장을 지명한다’는 내용이었다. 언론들이 긴급 뉴스로 보도하자 증권 선물시장에서 주가가 오르고 금리는 하락했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옐런 부의장의 Fed 의장 지명 사실을 호재로 판단한다는 뜻이다.
[GLOBAL_미국] 수렁에 빠진 미국 경제에 낭보
오바마 차선책…시장 기대·여론 수용
미 경제는 우선 정치발(發) 위기로 뒤숭숭하다. 연방 정부의 기능이 일부 마비되는 셧다운이 2주째 이어지고 있는 데다 10월 중순이 데드라인인 법정 부채 한도 확대 협상도 결렬될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민주당)과 백악관이 건강보험개혁법(일명 오바마 케어) 등 복지 예산 축소 문제 등을 놓고 대립하면서 2014 회계연도 예산안과 부채 한도 확대 법안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6조7000억 달러인 법정 채무 한도를 의회가 확대하지 않으면 10월 17일께 국채 이자를 제때 갚을 수 없는 디폴트 위기에 직면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말과 내년 초로 예상되고 있는 Fed의 양적 완화(채권 매입 프로그램) 축소라는 대형 불확실성도 도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점진적 채권 매입 축소’를 예고한 벤 버냉키 Fed 의장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는 후임자가 낙점됐다는 것 자체가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거리를 하나 덜어준 것이다.

시장이 옐런을 반기는 가장 큰 이유는 버냉키 의장과 마찬가지로 ‘비둘기파’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물가보다 고용(성장)을 더 중시해 경기 부양적 통화정책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옐런은 지난 3월 한 연설에서 “실망스러울 정도로 느린 경기 회복 상황에서 실업자와 그들의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며 “인플레이션 2% 밑에서는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유동성의 마개를 활짝 열어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옐런이 버냉키보다 더 비둘기파라는 평가도 있다.

버냉키 의장이 내년 1월 퇴임하기 전에 양적 완화 축소를 시작하더라도 옐런이 2월 취임한 후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버냉키 의장보다 신중하게 출구전략을 구사할 것이란 얘기다. 옐런은 지난해 여러 차례 강연에서 “2016년 후반까지 단기금리가 제로(0)에 가깝게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이는 “실업률이 6.5%(현재 7.3%)로 떨어질 수 있는 2015년 중반까지 제로 금리(연 0~0.25%)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버냉키 의장보다 더 공격적인 금융 완화 정책으로 평가된다. 경제 회복과 고용 확대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삼고 있는 오바마가 옐런을 지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옐런은 오바마의 차선책이었다. 당초 2009 ~2010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자신을 보좌했던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을 지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치권과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서머스는 규제 완화로 금융 위기를 불러온 주역인 데다 친(親)월가 인물이어서 안 된다”며 옐런이 적임자라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서머스가 결국 사퇴하자 금융시장은 반색했다. 이를 지켜본 오바마 대통령은 시장의 기대와 여론을 수용한 셈이다.

옐런은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77년 Fed 이코노미스트로 1년간 일하면서 Fed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후 Fed 이사(1994~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경제자문회의 의장(1997~1999년),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2004~2010년) 등을 거쳤다. 옐런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유대인 이민자의 자손으로 자랐다.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과 버냉키 의장에 이어 이번에도 유대인 Fed 의장이 배출돼 39년째 유대인들이 세계 최고 금융 권력자 자리를 차지하는 셈이다.


워싱턴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