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_중국] 하이얼 지분 10% 인수…‘ 내수 업종 유망’

세계 최대 사모펀드 KKR의 중국 전략

세계 최대 사모 펀드 KKR가 최근 중국 최대 가전 업체 하이얼의 지분 10%를 인수했다. 상하이 증시 상장사인 하이얼의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기 위해서다. 하이얼은 KKR 대상으로 34억 위안 규모의 제삼자배정 유상증자를 했다. KKR의 중국 단일 투자 규모로는 최대다. KKR와 하이얼의 짝짓기 행보는 한국 금융자본과 경쟁 기업에 적지 않은 의미로 다가온다. 왜일까.

우선 한국 금융자본은 중국 상장사의 지분 인수를 통해 중국을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 금융자본의 중국 투자는 주로 기업공개(IPO)를 앞둔 비상장사에 투자하거나 상장사도 주로 적격 외국인 기관투자가(QFII) 제도를 통해 시장에서 매매하는 식의 단기 투자 수준에 머물렀다. 중국에서 외국 기업의 상장은 아직 불허돼 있지만 상장사에 대한 외국자본의 인수·합병(M&A)은 허용하고 있다.

물론 경영권까지 확보하려면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전략적 투자자로 중국 상장사 지분을 인수한 곳은 적지 않다. KKR의 하이얼 투자는 그 사례 중 하나인 셈이다.

KKR가 선택한 중국 기업의 업종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이얼을 선택한 건 소비 업종의 간판 기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KKR가 그동안 투자해 온 중국 기업들은 대부분이 내수형 업종에 집중돼 있다. 수처리 업체인 연합환경, 낙농 업체인 현대목업, 중소기업을 위한 금융 리스 회사인 원동리스가 대표적이다.

중국제대혈 공급 회사에도 투자했다. KKR의 창업자 헨리 크래비스는 지난 7월 중국 잡지 재경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신흥 서비스에 관심이 있다. 의료보건·물류운수·환경보호·금융서비스가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KKR는 당시 2번째 아시아 펀드를 모집했는데 총 60억 달러가 걷혀 아시아 기업을 겨냥한 단일 사모 펀드로는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KKR는 이 가운데 30%를 중국에 투자할 계획이다. 크래비스는 내수형 업종에 관심을 두는 이유로 “머지않아 2억5000만 명의 농촌인구가 도시로 편입되면서 높은 의료·거주·소비·서비스를 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M&A 등 업그레이드 전략 지원
한국의 기업들에는 하이얼의 업그레이드 전략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하이얼은 이번에 유치한 자금을 주로 운용 자금 등에 쓸 계획이다. 량하이산 하이얼 회장은 “KKR가 전 세계에 보유한 자원과 산업 투자 경험은 하이얼이 전 세계 백색가전의 선도적 위치를 더욱 굳히고 세계 가전 업종의 리더가 되는 시간을 앞당길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공시에서도 KKR는 단순한 자금 제공에 그치지 않고 스마트 가전의 혁신 능력을 높이고 해외 M&A, 자본 구조 고도화, 인센티브 제도 개선 등에서 전략적 협력자가 되기로 했다.

상장을 앞둔 기업에 투자해 상장 후 차익을 챙기는 일반 사모 펀드와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긴 기간을 두고 투자 기업의 가치를 창조하고 높이는 데 주력한다. “투자가가 아닌 기업가의 시각으로 투자한다”는 게 크래비스 창업자의 지론이다. 하이얼이라는 중국발 다국적기업의 성장을 이 같은 국제 자본이 떠받치기 시작한 것이다. 경쟁 한국 기업들로서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최근 들어 성장 모델이 삐꺽거리면서 자금난이 심화돼 좌초하는 대기업들이 적지 않다. 당장의 급전 마련에 주력하기보다 자금난 해소와 경영 업그레이드를 한 번에 이룰 수 있는 질 좋은 자본과의 전략적 제휴를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금융자본도 KKR처럼 단타 투자자가 아닌 장기 가치 창조형 투자자이자 전략적 협력자로 탈바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KKR와 하이얼의 제휴가 한국 경제에 던지는 메시지다.


베이징=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