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힘’ 달라진 인구 지도

지난 5월 대한민국 인구 분포에서 작지만 의미심장한 변화가 발생했다. 조선시대 이후 처음으로 충청권의 인구가 호남권을 추월한 것이다. 지역별 인구의 증감은 정치·경제적으로 민감한 영역이다. 정치적으로는 유권자 수의 변화로 한국 정치 지형이 바뀐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더 나아가 경제적으로 보면 인구 유입과 유출의 원인은 실제 지역별 경제성장률, 일자리, 소비 능력 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구가 유입되는 권역일수록 미래 지역 경제성장이 가속화되고 이는 다시 인구 유입을 불러오는 선순환 구조를 낳게 된다. 대한민국 인구 이동의 원인과 영향을 분석하고 최근 몇 년 동안 인구 유입이 가장 많은 충청권의 경제 현황을 분석해 본다.
(서산=연합뉴스) 충청남도 서산군 대석면에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대산공업단지. 항공사진/ 1993.5.1 (본사자료) (끝)
(서산=연합뉴스) 충청남도 서산군 대석면에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대산공업단지. 항공사진/ 1993.5.1 (본사자료) (끝)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 수십 년 동안 전국의 인구는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는 일자리가 있었고 좀 더 풍요로운 삶이 약속됐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낸다’는 말이 흔하게 회자됐다.

하지만 2013년 현재 이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선 반면 비수도권으로 인구 유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도권은 노동인구인 젊은층의 유입이 2000년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노년층 지방 이동의 둔화로 고령화까지 진행되고 있다.

권역별 순이동 추이를 살펴보면 2002년만 해도 수도권만 순유입(21만 명)을 기록했고 나머지 중부권·호남권·영남권 모두가 순유출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수도권 유입 인구가 줄어들다가 2011년 통계 작성 이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순유출(8000명)로 전환됐다. 2012년에 순유입을 회복했지만 불과 7000명에 불과했다. 광복 이후 지속돼 온 수도권 인구 집중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또한 연령별로 살펴보면 ‘서울은 젊고, 지방은 늙었다’는 공식도 깨졌다. 수도권의 고령층 인구 증가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수도권 거주 고령층 인구는 2000 ~2012년 사이 120만 명에서 240만 명으로 증가했다. 고령층의 연평균 증가율은 수도권이 평균 5.9%로 비수도권 3.9%에 비해 2% 포인트나 높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도권의 젊은층 인구 유입 추세가 뚜렷했다. 하지만 경제활동인구인 20, 30대 젊은층의 수도권 유입은 둔화됐고 40, 50대 인구가 수도권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80세 이상의 고령층은 수도권으로 흘러들어 왔다. 과거 노인들이 귀향하던 것과 달리 부양 자녀의 거처로 옮기거나 수도권 외곽 지역에 개설된 요양 시설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수도권
수도권 인구 유입이 줄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LG경제연구소는 소득 창출의 부진으로 상대적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00년대 이후 수도권의 성장률 둔화가 두드러져 2001년 기점으로 비수도권의 경제성장 속도가 수도권을 앞질렀다. 2000~2011년 수도권의 평균 성장률은 6.5%로 비수도권의 7.0%를 밑돌았다. 수도권의 성장 둔화는 결과적으로 수도권 내의 일자리 창출 저하로 이어졌다. 서울·인천·경기 지역의 취업자 수 증가율은 1999~2001년 연평균 3.0%에서 2010~2012년 연평균 2.0%까지 낮아졌다. 최근 취업난이 심화된 까닭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비수도권에서는 같은 기간 취업자 수 증가율이 1.5%에서 2.0%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고용 위축은 특히 제조업에서 두드러진다. 2000~2012년 사이 수도권의 제조업 취업자 수는 220만 명에서 195만 명으로 감소했고 서울의 제조업 취업자 수는 같은 기간 89만 명에서 51만 명까지 크게 줄었다. 인구 밀집에 따른 용지 부족, 지가 상승과 함께 균형 발전을 내세운 수도권 규제 등의 정책 요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서울과 수도권의 고용 유발 효과가 떨어져 특히 청년층에게 고용 충격으로 이어졌다. 수도권의 청년 실업은 지방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에서 대학을 나와도 취업 시장에서 갖는 우위가 예전에 비해 낮아진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대졸자 직업 이동 경로 조사에서 2004~2009년 사이 대학 졸업 후 정규직에 취직한 비중은 수도권에서 11% 포인트(55%→44%)로 크게 줄어든 반면 비수도권에서는 9% 포인트(48%→39%) 감소해 상대적으로 고용 충격이 덜했다. 학업을 위해 상경했던 젊은이들이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상황도 빈번한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의 고용 환경 악화로 지역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하락했고 상위 자리를 지방에 내줬다. 서울의 1인당 GDP는 2000년대 이전까지 줄곧 1~2위였다. 하지만 2012년에는 2500만 원으로 전국 5위로 떨어졌다. 서울과 함께 상위권에 있었던 인천·경기 역시 2012년 9위, 11위로 떨어졌다. 그 대신 울산(5040만 원)·충남(3600만 원)·전남(3040만 원)이 상위권을 점령했다.

한편 집값을 포함한 생활비가 비싸다는 점도 수도권 탈출의 큰 요인으로 파악됐다. 전통적으로 수도권은 물가가 높아 소비지출액이 지방에 비해 높다. 2011년 통계청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인구 이동의 가장 주된 요인으로 주거지(42%)가 꼽혔고 다음으로 가족(16%)·직업(13%) 등이 뒤를 이었다. 수도권의 주거비용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집값이 빠르게 상승해 지방과의 격차가 확대됐다. 이와 함께 최근 전셋값 폭등 현상은 수도권 탈출을 부추기고 있다. 또한 KTX·고속도로의 발달 역시 수도권 탈출의 기반을 마련했다. 영동고속도로 개통으로 강원도는 서울에서 1시간 거리가 됐고 KTX 개통으로 전국 2시간 시대가 열렸다.


탈수도권 인구, 중부권으로 몰려
2012년 수도권의 인구 이동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도권으로 오는 인구는 지속적으로 영호남에서 유입되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나가는 인구들은 대부분 충청도를 포함한 중부권으로 향하고 있다.

중부권은 2004년 순유출에서 순유입으로 돌아선 후 지속적으로 순유입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중부권으로 향하는 인구는 수도권(2만2000명, 2012년 기준)뿐만 아니라 영남권(8000명)·호남권(4000명) 등 모든 다른 지역에서 순유입을 기록했다.

이와 같이 중부권으로 인구가 몰리면서 지난 5월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충청권의 인구는 525만136명, 호남권 인구는 524만9728명을 기록해 조선시대 이후 처음으로 충청권이 호남권을 앞질렀다. 그리고 지난 8월엔 충청권 525만9841명, 호남권 524만9747명으로 석 달 만에 격차가 1만94명으로 점점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충청권 인구수는 매월 평균 3000여 명씩 증가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지역별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충남이다. 대규모 산업단지 이전과 정부 정책에 따른 계획도시 등의 영향으로 충남 지역은 2001~2011년 사이 연평균 11%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취업자 수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내년 말까지 정부 부처 세종시 이전 작업이 마무리되고 내년 7월 통합청주시가 출범한다. 대전시·세종시·천안시·통합청주시 등 충청권 4개 도시가 ‘빅4 경쟁 시대’를 열면 인구 증가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충청권에서도 도시 거주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늘어난다는 의미다.

충청권으로 인구 이동에 발맞춰 건설업·유통업 대기업들은 이미 발 빠르게 이 지역으로의 진출 및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건설업계는 충청권을 기회의 땅으로 여기고 있고 실제 최근 충청권 분양 시장에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유통 업계는 속속 대형 쇼핑센터 설립에 나서 2016년께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충청권 지역경제 및 부동산 시장은 현재 전국적인 침체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취재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전문가 기고 백운성 충남발전연구원 연구원·강대묵 대전일보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