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 대책 이후 한 달
8·28 대책이 나온 지 한 달이 넘었다.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돌려 전셋값 상승 압력을 덜기 위한 것이 8·28 대책의 핵심이지만 전세 시장에서 단기적 효과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7월 중순부터 급등하고 있는 전셋값 상승 추세는 8·28 조치 후에도 멈출 줄 모르고 추석 이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8·28 조치가 효과가 없다느니, 잘못된 조치라느니 하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면 과연 8·28 조치는 효과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세 가지 측면에서 보자.
참여정부부터 누적된 문제점
첫째, 경제정책은 길게는 몇 년 후에 그 효과가 나타날 때가 많다. 현재 벌어지는 전세난도 현 정부의 잘못이라기보다 이전 정부, 멀게는 참여정부부터 누적된 문제점이 지금 터져 나오는 것이다. 8·28 대책이라는 게 매매 시장 활성화를 통해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를 돌리자는 것인데, 단기간에 그 성과가 나오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떤 정책의 효과라는 것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8·28 대책은 단기 대책이라기보다 장기 대책인 만큼 성패의 판단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둘째, 현재의 전세난은 물량 부족에 기인한 것이므로 시장에 전세 공급이 늘어나게 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 8·28 조치에서는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매입해 시장에 전세 매물이 많이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설사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매입한다고 해도 전세가 아닌 월세의 형태로 공급한다면 전세난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시장에서 부족한 것은 월세 물량이 아니라 전세 물량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8·28 조치에 아쉬운 점은 남는다. 다주택자들이 월세가 아닌 전세를 내놓았을 때 혜택을 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셋째, 8·28 조치가 발표된 지 한 달이 넘었다고는 하지만 시행되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대책이 국회에서 통과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의 발표만을 믿고 수억 원짜리 주택을 거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다주택자가 주택을 취득한다면 법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는 4.4%의 취득세를 내야 한다. 예를 들어 6억 원짜리 주택을 취득했는데, 취득세 감면을 소급 적용해 주지 않는다면 20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더 내야 한다. 이러니 조치는 발표됐지만 시장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MB 정부 때 수많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국회에서 잠만 자고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법이 확실히 개정되는 것을 보고 움직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정책이 단기간의 효과를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지만 전세난을 악화시키는 방향은 절대 아닌 만큼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9월 기준으로 전국 전셋값은 전달에 비해 1.01% 상승했다. 이것은 8월의 상승률 0.64%에 비해 상승 폭이 확대된 것이다. 아직도 전세난이 여전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이사철이라는 계절적 수요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평균 상승률과 비교해 보면 올해 9월의 상승률은 평년보다 0.28% 포인트 정도 더 오른 셈이다. 하지만 평년과 비교해 6월 0.20% 포인트, 7월에 0.28% 포인트, 8월에 0.39% 포인트 만큼 전셋값 상승 폭이 확대됐던 것과 비교하면 그 추세가 조금은 완화된 것이다. 다시 말해 8·28 조치가 없었다면 9월의 전셋값이 지금보다 더 올랐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는 의미다.
매매 시장에서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8월을 바닥으로 전국 집값이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서울 아파트 시장도 2011년 3월 이후 30개월 만에 바닥을 찍고 9월 초부터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송파구·강남구·강북구·성북구·관악구 등 5개 구는 8월에 바닥을 찍고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노원구·중구·강동구·구로구·서초구·양천구·도봉구·은평구·강서구·동작구 등 10개 구도 9월 초에 바닥을 찍고 상승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나머지 10개구는 바닥을 찾고 있다.
전세 얻으려다 집 사는 수요 늘어
그러면 이미 매매가가 바닥을 친 15개 자치구의 특징은 무엇일까. 전셋값이 많이 오른 지역이라는 점이다. 올 들어 이들 15개 자치구의 평균 전셋값 상승률은 5.9%다. 나머지 10개 자치구의 전셋값 상승률은 4.8%에 불과하다. 최근 한 달간 전셋값 상승이 각각 1.3%과 0.9%인 점을 감안하면 전셋값 상승이 매매가 상승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전셋값이 많이 오른 지역의 매매가가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수요자들이 전세를 얻으러 왔다가 매매로 전환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들이 대거 전세 물량을 월세로 전환하는 바람에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집을 사든지 아니면 월세로 살아야 하는 두 가지 선택만 남게 된 것이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8월 전월세 거래량은 10만6550건으로 작년 동기 대비 1.4% 정도 늘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거래량 증가분의 상당 부분은 월세 거래다. 전년 동기 대비 월세 거래는 20% 정도 늘었지만 전세 거래는 오히려 8% 정도 줄어들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세입자는 원금 손실이 없는 전세를 매달 주머니에서 현금이 나가는 월세보다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 거래량이 줄고 월세 거래량이 늘어나는 이유는 시중에 전세 물량이 고갈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선택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세입자가 월세로 전환하지는 않는다. 매달 주머니에서 현금이 나가는 월세로 살기보다 집을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2억5000만 원짜리 집을 살 것인지, 아니면 그 집에 월세를 살 것인지 고민한다고 가정하자. 2억5000만 원짜리 집에 살려면 전셋값 비율 80%를 감안하면 2억 원의 전세금을 마련해야 한다. 실제로 분당이나 용인 수지는 전셋값 비율 80%가 넘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 전세를 월세를 전환하는 전환 비율이 아파트는 6% 정도를 적용하기 때문에 2억 원의 전세를 보증금 없는 월세로 전환한다면 월 100만 원이 된다.
이번에는 집을 살 때를 따져보자.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3년 8월 말 기준으로 주택 담보대출 금리는 3.80%다. 2억5000만 원을 빌린다면 매월 이자가 8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물론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적용되기 때문에 집을 사는 데 필요한 돈 2억5000만 원을 모두 은행에서 빌릴 수는 없다. 하지만 굳이 비교하면 월세를 사는 것보다 집을 사는 게 더 비용이 적게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과거에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첫째, 과거에는 전세라는 좋은 대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매가 대비 낮은 전셋값으로 2년 동안 거주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집을 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세입자들이 집을 사지 않았던 이유는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또는 기대감 때문이다. 애써 모은 돈으로 집을 샀는데, 집값이 폭락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집값이 더 내려간다면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기대감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을 불식한 것이 바로 8·28 조치다. 집값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에서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그동안의 낙폭이 충분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실수요자들이 하나 둘씩 매매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8·28 조치는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지만 심리적으로 시장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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