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정부 ‘셧다운(shutdown)’후폭풍
10월 1일부터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관광 명소인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출입문이 굳게 닫혔다. ‘정부의 셧다운으로 박물관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링컨 기념관, 2차대전 기념관 등도 폐쇄됐다. 옐로스톤·그랜드캐니언 등 전국 200개 국립공원을 찾았던 관광객들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미 정치권이 2014 회계연도(2013년 10월~2014년 9월) 예산안(법)을 합의하지 못해 연방 정부가 10월 1일부터 부분적으로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진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매년 예산안을 법률로 정한다. 의회에서 예산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별도 법률에 의해 매년 자동으로 지출되는 ‘의무 지출 항목’을 제외한 재량 지출(예산법에 근거)을 할 수 없게 된다. 정부가 돈을 쓸 수 없게 되자 공무원들을 강제 무급 휴가 보내고 그 결과 업무가 일시 중단된 것이다. 예산안 처리 지연으로 연방 정부가 일시적으로 업무를 중단한 것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5년 12월 16일부터 이듬해 1월 7일(21일간) 이후 약 17년 만이다.다만 국방·치안·사회보장서비스·항공 등 정부의 핵심 기능은 유지되기 때문에 국가 운영이 전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 안보와 사회 안전 등과 관련 없는 비핵심 업무에 종사하는 연방 정부 공무원 80만~120만 명은 무급 휴가를 떠났다. 워싱턴포스트는 연방 공무원이 밀집해 있는 워싱턴 D.C.는 하루 2억 달러 규모의 경제적 손실을 볼 것이라고 추정했다. 무엇보다 공무원 월급 삭감으로 소비가 타격을 받고 있다.
연방 정부 청사 부근에서 샌드위치를 파는 폿벨리샌드위치숍은 종업원 5명 중 3명을 일시 해고했다. JP모건체이스는 공무원의 봉급 삭감 여파로 1주일마다 4분기 성장률이 0.12% 포인트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광 위축, 기업의 연방 정부 발주 물량 지연, 전반적인 소비 심리 위축 등 직간접 영향까지 고려하면 경제적 손실이 더욱 커진다.
설상가상으로 각 부처의 경제 통계 발표 서비스도 잇따라 중단됐다. 상무부는 10월 1일 오전 10시 예정된 8월 건설 지출 동향을 발표하지 않았다. 통계 담당 직원이 ‘비핵심 인원’으로 분류돼 무급 휴가를 떠났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깜깜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제통계 발표 서비스도 중단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초래된 까닭은 미 정치권이 예산안을 둘러싸고 이념 논쟁에 가까운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쟁점은 ‘건강보험개혁법(일명 오바마 케어)’이다. 공화당은 국민의 강제 의료보험 가입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기업에 부담을 가중시킨다며 오바마 케어를 폐기 또는 시행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오바마 케어 시행을 1년 연기하지 않으면 예산안에 합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버티고 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오바마 케어 연기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최대 업적이자 유일한 업적일 수 있는 오바마 케어를 폐기하라는 공화당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였다. 양당이 타협 없는 평행선을 달려 온 이유다.
미 정치권의 교착상태는 사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하원은 공화당이, 상원은 민주당이 장악하면서 잉태됐다. 미 의회는 상·하원에서 모두 통과돼야 법률로 확정되는데 다수당이 상·하원에서 각각 쪼개지면서 민감한 정책 관련 입법 활동이 사실상 중단되고 있다. 3년 내내 ‘예산 전쟁’을 벌이면서 땜질 예산으로 버티고 있고 급기야 올 3월에는 연방 정부의 예산 자동 삭감(시퀘스터)까지 발동됐다. 그뿐만 아니라 총기 규제, 이민 개혁 등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이 모두 의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연방 정부의 셧다운은 “워싱턴에 정치가 실종됐다”는 말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워싱턴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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