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경영 방식 개선
중국에서 대출 자산 유동화가 또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중국 국무원(중앙정부)은 최근 리커창 총리 주재 상무회의(각료회의)에서 은행 대출 자산 유동화 시범 프로그램을 확대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에서 2005년 시작된 은행 대출 자산 유동화는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의 원흉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유동화가 지목되면서 일시 중단됐다가 2011년 재개됐다. 이번 조치는 은행 대출 유동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출 자산 유동화를 통해 은행의 양적 확대 위주 경영 방식의 탈피를 유도하고 자금 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한편 실물경제의 직접금융 시장 자금 조달 확대를 촉진한다(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당국이 밝힌 배경도 이 분석과 맥이 같다. 우선 은행의 자금 회전율을 높여 취약하거나 중점 육성이 필요한 실물경제에 더 많은 자금이 배분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은행의 자금 회전율 제고는 통화량을 늘리기보다 기존 통화량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겠다는 리 총리의 정책 방향과 맥이 닿아 있다. 국무원은 구체적인 취약 분야로 3농(농촌·농업·농민), 영세 기업, 판자촌 개조 사업 인프라(기초 시설) 건설을 꼽았다. 중점 육성 대상으로는 선박과 철도가 꼽힌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정보기술(IT) 연관 소비를 위한 인프라 사업도 중점 육성 대상에 해당된다.대출 자산 유동화는 투자 상품 다양화를 통해 직접금융 시장인 자본시장을 키우기 위한 행보이기도 하다. 우량 대출 자산을 증권화해 증시에서 거래되도록 하고 그 범위를 확대한다는 게 그것이다. 은행 대출은 돈을 제공하는 측과 받는 측 사이에 중개 기관(은행)이 끼어 있는 간접금융이다. 반면 주식과 채권은 직접 거래하는 직접금융으로 분류된다. 중국은 간접금융에 과도하게 의존해 직접금융 비중을 늘리는 쪽으로 금융 개혁의 방향을 잡고 있다. 간접금융 쏠림이 심한 금융 시스템에서는 은행에 대출 리스크가 집중돼 금융 취약성이 커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대출 자산 유동화는 이 리스크를 투자자들에게 분산하는 효과를 낸다.
물론 미국발 금융 위기처럼 불량 대출 자산의 증권화는 철저히 막을 방침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로 만연된 재증권화도 금지하고 유동화 과정의 감독도 강화하기로 했다. 대출 자산 유동화 시범 프로그램 확대로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은행 자금 회전율 높여 실물경제 살리기
대출 자산도 자산 증권화를 통해 시장에서 평가받도록 함으로써 전반적으로 금융 시스템의 시장 원리 기능을 제고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이는 시장화와 법제화를 양축으로 정부와 시장과의 관계 재설정에 나서고 있는 리커창 경제학의 방향과도 통한다.
하이퉁증권의 천루이밍 전략분석가는 “유동화 가능 은행 대출 규모는 3조 위안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금리의 자유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금리 변동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이번 조치와 무관하지 않다. 금리 변동 리스크가 커지면 장기 투자 분위기가 줄어든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이익을 내기 위해서도 그렇고 경제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도 장기 대출은 지속돼야 한다. 은행으로선 단기 조달 장기 운용이라는 자금의 기간 불일치에 따르는 유동성 리스크가 커진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바로 대출 자산 증권화다.
주목할 건 이번 조치가 그림자 금융의 양성화도 시사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상업은행은 대출 자산을 만기 때까지 운용하지만(대출 조기 회수는 드물다) 그림자 금융은 자산을 증권화해 매각하는 식으로 운용한다. 긴축정책의 충격을 덜어주는 완충장치 등 그림자 금융이 갖는 순기능을 살리는 정책 방향과 이번 대출 자산 유동화 확대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베이징=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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