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다 보니 한식 맛 소중함 깨달아”
바로 이런 맛이 된장찌개의 참맛입니다. 콩이 잘 발효된 쿰쿰한 냄새, 짭조름하면서 깊은 맛, 뒤끝에 여운으로 남는 단맛…. 한국 시골의 향과 맛이 고스란히 담긴 된장찌개입니다.”다소 어눌한 한국말이지만 눈을 크게 뜨고 또박또박 정확하게 말한다. 한국 토박이도 범접할 수 없는 한식 전문가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렇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났을 때의 표정은 전문가나 비전문가나 다를 게 없나 보다. 된장찌개를 입에 넣었을 땐 눈을 가늘게 뜨고 입가의 미소를 주체할 줄 모른다. 개구쟁이의 천진난만한 모습까지 엿보인다. 후니킴(40·한국명 김훈). ‘한식 최초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인물. 그가 최근 추석 연휴를 끼고 한국에 왔다가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뉴욕에 있는 자신의 한식 레스토랑인 ‘단지’와 ‘한잔’에서 쓰고 있는 된장·고추장·간장의 생산과 관리 상태를 직접 확인하러 온 것이다. 장소는 경상북도 포항시 죽장면 상사리에 있는 죽장연. 서울에서도 자동차로 5시간여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 중의 오지에서 그를 만났다.
깊은 맛 ‘죽장연’의 장류에 반하다
상사리 아주머니가 후니킴을 위해 특별히 차린 밥상. 중앙에 된장찌개가 자리했고 고추장에 박은 각종 장아찌에 간장으로 간을 맞춘 온갖 나물까지 한 상 빼곡하다. 먼 곳에서 온 손님을 대접한다고 돼지고기 고추장볶음에 쌈 채소와 쌈장을 따로 챙긴 것을 빼면 일상적인 시골 밥상과 다를 바 없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여기에 쓰인 된장·간장·고추장이 모두 죽장연의 제품이라는 것.
“저도 뉴욕의 ‘단지’와 ‘한잔’ 레스토랑에서 죽장연 제품을 쓰는데 이곳의 맛이 훨씬 깊고 정감이 있어요. 이유가 뭘까요. 제게는 다른 제품을 보내 주는 것 아닐까요.”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에게서 웃음이 터졌다. 이런 식으로 우스갯소리를 하며 밥상을 차린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를 칭찬하는 여유로움을 보였다.
점심 식사에 앞서 죽장연 장원의 항아리에 담긴 된장·간장·고추장을 살펴볼 때도 2011년, 2012년에 담근 것들을 비교해 맛보며 “엑설런트”를 연발하더니, 그것으로 만든 음식 역시 흡족한 모양이다.
후니킴. 그는 한인 1.5세대다. 세 살 때 한국을 떠나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열 살에 미국 뉴욕으로 옮겨 30년을 뉴욕에서 보낸 뉴요커다. 말을 하다가도 정말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영어로 할 정도로 영어가 훨씬 편한 그다. 밥보다 햄버거를 더 많이 먹었을 것이고 김치보다 샐러드가 더 친숙할 것이다. “여름방학이면 매년 한국에 왔어요. 어머니가 한국말을 잊지 말라고 챙겨서 보내신 거죠. 아버지 고향인 완도, 어머니 친척이 살던 부산에 자주 왔어요. 그때 먹었던 음식들이 최고로 맛있었는데 미국에선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게 무척 아쉬웠어요.”
어머니의 손맛에서 그 맛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납득하기 어려워 그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이 의외였다.
“어머니가 음식을 영 못하세요.” 다른 이민 세대의 부모님들처럼 타국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바쁘게 일하신 점도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솜씨가 ‘꽝’이란 설명이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밖에서 사서 음식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아내의 음식 솜씨 역시 시어머니에 뒤지지 않아요.” 말을 던지고 민망한지 주변 눈치를 살피며 계면쩍은 미소를 보인다. 두 여자 덕분에 뉴욕에 있는 이런저런 외국 식당을 미각 탐험할 수 있었고 자신의 요리를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풀어가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한국에 계속 살았다면 된장의 진정한 맛, 한식의 진정한 가치를 몰랐을 겁니다. 항상 그리워하다 보니 그 맛의 소중함을 알겠더라고요. 저는 한식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봐요.”
의대생서 셰프로 변신한 이유는
처음 만났을 때 악수하려고 내민 그의 손이 떠올랐다. 거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곱살하고 작았다. 거기에 살이 살짝 올라 오동통하다. 이런 손은 손재주가 많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동글동글하다. 옆머리를 바짝 올려 치고 그도 모자라 짧은 앞머리도 뒤로 훌렁 넘겨 더욱 동글동글해 보인다. 음식을 잘 만드는 ‘열정 셰프’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손과 얼굴을 조합해 보니 손재주를 칼을 쥐고 요리 재주로 풀고 있는 듯하다.
사실 그는 꿈이 처음부터 셰프였던 것은 아니다.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가 중도에 포기했다. UC버클리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6년제 의과대학원에 합격해 놓은 상태에서 1년 동안 잠시 쉬기로 한 게 현재의 오너 셰프 후니킴을 만들어 놓았다.
“미국에 건너와 고생하신 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도 제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을 갖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저도 의사의 길을 택했는데 입학 공부부터 무척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합격해 놓고 1년간 머리를 식히며 쉬기로 한 겁니다.”
쉰다고 그냥 놀 수는 없는 일. 평소에 관심이 있던 요리를 배우러 프랑스 요리학교 FCI(The French Culinary Institute)를 다녔다고 한다. 10개월 동안 기본적인 공부를 마치고 났는데 대학원 입학까지 3개월이 남더란다. 이참에 현장 경험도 쌓아 보자는 생각에 뉴욕의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미슐랭 3스타 ‘다니엘(Daniel)’의 문을 두드렸다.
“3개월 동안 공짜로 일하겠다고 했어요. 흔쾌히 받아주더라고요. 그런데 2주 후 제게 보수를 줄 테니 정식 직원으로 일할 생각이 없냐고 묻더라고요.”
자신의 요리 실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자신도 흔쾌히 “오케이”라고 답하고 의과대학원 휴학을 1년 더 연장했다. 이때까지도 의사의 길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하루에 16시간을 서서 하는 일. 바로 요리입니다. 그런 요리 일을 하는데 나 자신이 행복하더라고요.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는 평생 할 일이라면 나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상대로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두 살 때부터 홀로 키우신 어머니는 1년 동안 자신과 말을 섞지 않으셨다고 한다. ‘의사 남편’을 기대했던 아내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다니엘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차츰 어머니도 아내도 마음을 풀고 셰프 후니를 인정했단다. 사실 그 배경에는 열 살이나 어린 동료들과 뒤섞여 땀을 흘리면서 ‘의사를 포기할 만큼 죽기 살기로 열심히 노력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의사의 하얀 가운과 집도를 포기하고 조리복을 입고 부엌칼을 쓰는 셰프의 길로 나서게 됐다.
“다니엘은 좌석이 140석이나 됩니다. 그런데 요리사는 고작 12명입니다. 주방에선 전쟁을 치른다고 할 정도로 하루 종일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다니엘 레스토랑의 주방 경험자는 다른 레스토랑에서도 누구든지 환영할 정도로 인정받는다. 요리에 대한 창의력과 함께 육체적으로 뒷받침되는 ‘빠른 스피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2년간의 통과의례를 거친 후니는 또 다른 미슐랭 3스타 일식 레스토랑인 ‘마사’에서 2년간 일한다. 마사는 다니엘과 달리 28개의 좌석임에도 불구하고 요리사가 10명에 이른다. 그는 이곳에서 요리의 섬세함을 배웠다고 했다.
후니킴. 하늘의 별과 버금간다는 미슐랭 별을 하나도 둘도 아닌 셋이나 받은 레스토랑에서 인턴 2주 만에 정식 직원 제안을 받을 정도의 실력자. 그런 그가 정작 차린 음식점은 한식당 ‘단지’.
“한국에서 먹은 음식들은 모두 맛있는데 미국에서 먹는 한식은 맛이 없어요. 어머니를 모시고 갈 곳은 고사하고 친구들에게 소개할 만한 곳도 없어요.” 미국의 한식당을 싸잡아 야단한다. 대부분이 먹고살기 급급해 한식의 본질을 버리고 현지에 타협한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건, 뉴요커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똑같아요. 그러니 서울에서든 뉴욕에서든 맛있게 만들면 됩니다. 그런데 맛있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아 뉴욕 맨해튼에 몰려 있는 한식당들이 고만고만하게 맛이 없는 겁니다.”
가장 맛있는 한국의 맛. 그의 기준은 모던 코리아 퀴진(Modern Korean Cuisine)이라고 적힌 명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통(Traditional)보다 정통(Authentic)에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다.
“뉴욕에 있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62곳 중 80% 이상이 셰프가 경영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한식당은 대부분이 ‘경영자 따로, 요리사 따로’잖아요. 고집 있는 맛으로 승부를 하지 않는 거죠.”
한식 최초 ‘미슐랭의 별’달아
후니는 한국의 맛을 내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 방식이나 모양은 과감하게 탈피했다. 자신만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는데 최우선이 ‘품질 좋은 재료’다. 인테리어가 허름하고 그릇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최상의 재료로 최고의 맛을 낸다는 것이다. 좋은 재료만 있으면 조미료가 없더라도 각 재료의 맛을 살려 뉴요커가 감탄할 만한 요리가 나온다는 확신은 ‘단지’ 개점 1년도 안 돼 나타났다.
후니킴의 단지 레스토랑이 문을 연 건 2010년 12월. 문을 열기가 무섭게 뉴요커들이 몰려들었다. 50㎡(15평) 규모의 20여 개 좌석이 꽉 차고 예약을 받지 않아 문밖에 기다리는 줄이 이어졌다.
오픈 10개월 만에 드디어 뉴욕 브로드웨이에 별 하나가 뜬다. 2011년 10월 5일 발매된 ‘2012년판 미슐랭가이드-뉴욕편’에 단지가 별 하나 레스토랑으로 등극한 것. 비록 별은 하나이지만 전 세계에 있는 한식당 최초로 ‘미식 바이블’이라고 칭하는 100년 역사의 미슐랭 별을 받은 것만으로 한식 역사에 은하수를 가슴에 안은 것과 버금가는 일을 해낸 것이다.
단지에서 마련한 자금으로 최근 한국의 술과 어울리는 안주류를 주로 파는 2호점 ‘한잔’을 오픈했다. 이곳 역시 한식의 본맛이 궁금한 뉴요커들에게 벌써 핫 플레이스가 됐다.
후니킴은 세계인들에게 한식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으면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프랑스 요리는 음식의 기본입니다. 요리의 모든 용어는 세계인들과 바로바로 통하거든요. 프랑스 요리 용어가 외식 업계에선 만국 공통어인 셈이죠.”
자신과 같은 요리사가 되고 싶거든 학원부터 다닐 생각하지 말고 일단 주방에서 열심히 설거지를 해서 모은 돈으로 맛있는 것을 신나게 사 먹고 다니란다.
“공부한다는 게 꼭 요리 기술을 배우는 의미는 아닙니다. 열심히 먹어 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됩니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오면 열심히 먹고 다닌다. 삼각지 봉산집의 차돌박이, 을지로 우래옥의 불고기, 오장동 함흥집의 냉면, 신사동 개화옥 된장국수, 광장시장의 순희네 빈대떡, 통인시장의 기름떡볶이 등 맛집 가이드북을 펼친 것처럼 후니의 입에서 맛집이 술술 나온다.
“제게 휴식은 맛있는 것을 찾아 먹으러 다니는 겁니다.” 이번에도 한국에 와서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간다고 했다. 그건 푹 잘 쉬고 간다는 의미. 2호점 ‘한잔’에 총력을 쏟느라 방전된 배터리를 완벽하게 재충전해 되돌아간다는 얘기다.
한국 땅에서 되찾은 활력으로 뉴욕의 한복판에서 단지, 한잔에 이어 또 어떤 일을 벌일지 그의 다음 행보가 자못 궁금하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