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멘토 찾고 주인 의식 가져라 ”

최근 유통 업계에서 주요 임원에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등 두꺼운 유리 천장이 걷히고 있다. 그 선봉에 선 것은 럭셔리 브랜드, 프리미엄 서비스의 집결지로 손꼽히는 갤러리아백화점으로, 이곳은 지난해 여성 임원 3인을 영입하면서 큰 변화를 모색했다. 전통적으로 여성 임원이 적은 유통 업계의 전례에 비춰볼 때 이는 ‘파격 인사’에 가깝다는데 업계의 전언이다. 국내의 주요 백화점 4사, 대형 마트 3사를 통틀어 여성 임원이 10명뿐인 현실에 비춰 보면 더욱 그렇다. 갤러리아의 ‘여풍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사뭇 궁금해졌다.
[인터뷰] 한화갤러리아 파워 여풍 3인 직격 인터뷰
우선 갤러리아백화점 최초의 여성 임원인 정호정(49) 상무는 마케팅전략팀·고객전략팀·디자인팀 등 총 5개의 팀을 맡고 있는 마케팅 수장이다. 글로벌 뷰티 브랜드인 에스티로더에서 근무하다가 지난해 갤러리아에 합류한 정 상무는 백화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특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여러 마케팅 방안을 선보이다 보니 서비스의 격이 한층 달라졌다는 평가를 이끌어 내고 있다.

해외 명품 브랜드에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협상의 여왕’으로 통하는 MD 디렉터 진 콜린(42) 상무는 샤넬·펜디 등 글로벌 명품 회사에서 리테일·바잉·머천다이징을 담당했고 홍콩의 명품 백화점인 레인 크로포드에서 여성 및 남성 의류 총괄, 퍼스널 스타일리스트를 관리했다. 진 콜린 상무는 해외 명품 브랜드 출신이라는 경력을 강점으로 내세워 갤러리아와 명품 브랜드와의 협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유통 업계에서는 백화점이 명품 브랜드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진 상무는 이러한 상황에서 탈피해 주도적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으며 직원들의 고충까지 알아서 처리해 주는 ‘해결사’로 통한다. 또한 1주일에 두 번씩 직접 매장을 돌며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워크스루(walk through)를 통해 직원들과의 소통에 앞장서고 있기도 하다.

갤러리아의 싱크탱크를 책임지고 있는 전략실장 김민정(40) 상무는 유통 업계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이력을 소유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대에서 석·박사를 마친 후에 세계적 컨설팅 그룹인 맥킨지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통섭적인 사고를 통해 갤러리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미션’을 받아든 그녀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 해보지 않은 생각을 끊임없이 내놓으며 ‘신선한 자극’을 불어넣고 있다.

임원의 자리에 발탁될 수 있었던 각자의 강점은 무엇인가.
정호정 상무(이하 정 상무) 갤러리아로 옮기기 전 15년 이상 근무했던 에스티로더에서 브랜드 총괄 임원으로 승진했다. 사실 외국계 회사는 외부에서 임원으로 영입되는 케이스가 더 많기 때문에 나처럼 내부 인력이 임원으로 승진된 것은 무척 드문 사례였다. 당시 회사에 대한 공헌도 때문에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008년 이후 브랜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른바 ‘갈색 병’ 마케팅 전략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다시금 두 자릿수 성장을 하게 됐고, 이 전략을 아시아와 글로벌에서 모두 벤치마킹할 정도로 인정받게 됐다. 이처럼 항상 최고가 되고자 했던 마인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

김민정 상무(이하 김 상무) 직장 생활을 하면서 특별히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았거나 ‘특혜’를 누린 적은 없다. 단지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일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 오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포항공대를 거쳐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화학으로 석·박사 공부까지 마치게 됐기에 현재 유통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독특하다고 여겨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력보다 남들과 다르게 사고하려는 방식, 새로운 시각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모습이 강점인 것 같다. 박사과정을 마친 후 첫 직장이었던 글로벌 컨설팅 그룹인 맥킨지에는 워낙 다양한 전공·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곳이기 때문에 내가 그다지 ‘별종’도 아니었다. 공부할 때부터 실험실 내에서만 하는 연구보다 다른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에 관심이 많았다. 나는 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추구한다. 싱크탱크의 수장으로서 전략을 수립할 때에도 종이에만 적혀 있는 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 적용 가능한, 생동감 넘치는 진짜 전략들을 세우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진 콜린 상무(이하 진 상무)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전문성을 가지고 일했던 것이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와 인턴십 기간을 포함하면 20년 이상을 MD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패션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에서 경력을 쌓았던 점이 메리트가 됐다. 특히 샤넬과 루이비통 그룹 등에서 일했던 시간 동안 럭셔리 브랜드와 머천다이징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여성이기 때문에 유통 업계에서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은 무엇인가.
정 상무 아무래도 백화점의 주 소비층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구매 욕구와 심리가 어떻게 작용한다든가, 마케팅의 방식을 수립할 때 나와 소비자가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에 힌트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남다른 경쟁력인 것 같다. 갤러리아백화점은 럭셔리 마케팅에 중점을 두는데, 이를 위해서는 고객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 럭셔리 마케팅은 고객이 요구하는 수준의 호불호가 명확하고 고객이 경험하지 못한 부분까지 생각해 새로움을 제공하는 마케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 보다 섬세하게 접근하고 있다.

김 상무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백화점을 즐기는 고객이라는 점이 가장 좋은 점 같다. 사실 갤러리아백화점으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을 때 너무 기뻤고 현재도 회사와 내 삶의 구분이 없을 정도로 백화점의 업무를 즐기고 있다. 평소 장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는데, 유통 업계의 프리미엄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변화 가능성도 다분한 ‘예쁜 사이즈’의 회사 규모 또한 마음에 들었다.

모두 지난해에 영입됐다. 갤러리아에서의 1년 동안 각자 기억에 남는 업무는 무엇이었나.
정 상무
지난해에 문을 열어 큰 화제를 모았던 명품관 내의 식품관인 ‘고메이494’에서 플래시몹 형식의 오페라와 패션쇼 행사가 진행됐다. 마케팅 프로모션에 있어서는 공간의 파괴에 주력했다. 사실 백화점 식품관이라는 특화된 공간에 접목된 패션쇼는 해외에서도 잘 시도되지 않던 사례인데, 이러한 파격적인 시도 덕에 고객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다.

진 상무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지 않던 보테가베네타의 클러치 아카이브 전시 프로모션을 갤러리아에서 단독으로 선보였던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보테가베네타 본사 책임자를 만나 아카이브 컬렉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워크맨십이 강한 브랜드이니 그들의 아카이브 컬렉션이라면 서울의 랜드마크이고 패션의 중심지인 갤러리아에서 전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테가베네타 본사 책임자 역시 갤러리아를 방문한 적이 있다며 서울에서 가장 프리미엄한 백화점으로 갤러리아를 꼽았다. 각자 생각하는 브랜딩 방향성이 잘 맞았기에 잘 진행됐다고 생각한다.

김 상무 싱크탱크의 수장으로서 사내 칭찬 문화 프로그램인 ‘칭찬하는 고래리안’를 비롯해 ‘갤러리아 패밀리데이’, ‘레이디스 토크’ 등 소통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사실 조직 문화는 자칫하면 전시행정으로 변질될 수 있다. 나는 진정성 있는 조직 문화에 힘쓰고 싶었다. 여러 프로그램 중 반응이 가장 좋은 것은 ‘패밀리데이’다. 매주 수요일마다 무조건 저녁 6시에 ‘칼퇴근’하는 것으로, 시행한 지 3개월쯤 됐는데 첫날을 잊을 수 없다. 직원들에게 집에 가라는 의미의 ‘가짜 기차표’도 나눠 주고 6시 정각에 폐점 음악까지 틀었다. (웃음)

또한 여직원들끼리 만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레이디스 토크’도 반응이 좋다. 갤러리아에 와서 보니 여자 직원들에게 ‘왕언니’가 없기에 우리 셋이 이를 자처했다. 지점을 돌아다니면서 테이블에 10명 남짓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기탄없이 나눴다. 이후엔 유부녀 모임, 애 엄마 모임 등 공통성을 바탕으로 만나기도 했다. 사실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세 사람만 있어도 직장 생활은 충분히 행복해진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공감해 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서 힘을 얻기 때문이다. 박세훈 사장 또한 이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고 있기 때문에 업무 시간을 활용해 이러한 프로그램을 마음껏 진행할 수 있다.

이력만 놓고 본다면 탄탄대로를 걸어온 듯하다. 사회 초년병 시절, 힘든 일은 없었나. 진 상무 미국은 한국보다 신입 사원들에게 더욱 냉정했던 것 같다. 경쟁은 치열하고 보수는 낮았다. 시즌에 맞게 빠르게 움직이다 보니 선배로부터 멘토링을 기대할 수도, 그럴 여유도 없었다. 신입 사원의 능력은 대부분이 비슷비슷하지 않나. 그저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만 남으라는 식이었다. 멘토링은 없었지만 유명한 브랜드에서 일하다 보니 주변에 일 잘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샤넬에서 나를 영입해 준 상사에게 가장 감사하게 생각한다. 샤넬 보조 매니저로 입사하던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다. 같은 직급의 사람들은 35세 정도였으니 매우 어렸지만 내 나이와 상관없이 가능성을 보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줬다.

정 상무 회사에서 승진하는 단계에 있었지만 당시 둘째 출산 휴가를 간 사이에 상사가 바뀌면서 다른 사람이 승진되면서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이직까지 하려고 했었는데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업무를 수행하니 오히려 원래 가고자 하던 자리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계기로 ‘모든 건 때가 있다’는 생각과 함께 적절한 시기를 인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아직까지도 많은 여성들이 결혼·출산·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을 떠나곤 한다. 이 같은 현실적인 장벽을 어떻게 극복했나.

김 상무 나 또한 다른 직장 여성들처럼 힘든 시기를 보냈다. 지금은 딸아이가 일곱 살이어서 손이 덜 가지만 맥킨지에 근무했을 때에는 매번 새벽 3~4시에 퇴근하다 보니 아이가 자기 전에 얼굴을 보려고 저녁에 집에 가서 아이를 재워 놓고 다시 회사로 나오거나 늦은 시간까지 집에서 업무를 해결하곤 했다. 그 시간이 비록 고되긴 했지만 오히려 가족이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었다. 집에 가면 모든 것을 잊는다. 가족이 아니었다면 내 생활의 재충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독일인인 남편의 자상한 성격과 도움이 컸다.

진 상무 여성이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남편과 가족의 서포트가 중요한 것 같다. 나 역시 결혼 후에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을 챙겨야 하는 부분이 많다. 다행히 남편이 내 일을 잘 이해하고 많이 지지해 주기 때문에 어려움보다 오히려 결혼을 통해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갤러리아에 오게 된 계기도 남편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었다. 주말 부부로 지내야 한다는 점이 미안했지만 MD로서 전체 리뉴얼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다며 좋은 기회니 꼭 잡으라는 남편의 격려에 힘을 얻어 결정하게 됐다.

정 상무 육아에 있어서 남편의 도움이 컸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할 때 남편과 공동으로 했기 때문에 부담을 많이 덜 수 있었다. 또한 회사일이 힘들거나 지칠 때 남편은 훌륭한 대화 상대이고 멘토 역할도 해주고 있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세 사람처럼 성공을 꿈꾸는 여성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정 상무 훌륭한 마케터를 꿈꾼다면 내가 주인이고 최고 경영자라는 생각으로 ‘3P’, 즉 열정(Passion)·자신감(Pride)·완벽(Perfection)을 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꿈을 갖고 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길 바란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꿈을 말하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해야 한다.

김 상무 과거의 성공한 여성들처럼 일과 가정을 완벽하게 이끌려고 하는 ‘슈퍼 우먼 콤플렉스’를 버렸으면 좋겠다. 또한 같은 여성을 시기하고 밟고 올라서는 일도 없었으면 한다. 그 대신 인생을 즐기고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스스로가 프로라는 마음으로 행복을 느끼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

진 상무 많은 사람들은 패션이 화려하고 재미있는 분야라고 생각하지만 패션 비즈니스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나도 샘플 정리와 복사부터 시작했다. 화려한 부분만 볼 게 아니라 본인의 부족함을 채우고 배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후배들에게 상사의 말을 경청하라고 강조한다. 대개 일이 익숙해질 때면 상사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는 경우들이 많다. 하지만 상사들이 그 자리에 올라가는 동안 그들만의 연륜과 노하우가 분명히 있는 만큼 선배들의 장점을 보고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터뷰] 한화갤러리아 파워 여풍 3인 직격 인터뷰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