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롤링스퀘어 대표

화장품을 정기 배송하는 서비스는 지난해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올해도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사업 중에는 이런 유형의 것들이 있지만 샘플을 이용해 제품 제작비 한 푼 들이지 않고 새 제품을 판매해 돈을 버는, 그야말로 대동강물 팔아 돈 벌었다는 김삿갓 못지않은 기발한 사업 모델이었다. 물론 이제는 흔한 사업이 됐다.
[한국의 스타트업] 화장품 배송 서비스의 한계를 넘다
그런데 이 서비스에 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간파해 내고 약점을 극복한 새로운 서비스 방식을 찾아낸 사람이 있다면? 이재윤 롤링스퀘어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재윤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 03학번.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인 2010년 유명 컨설팅 회사에 취직이 됐지만 웬일인지 직장 생활이 하기 싫었다는 그는 취직이 되자마자 그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주변에서 보기엔 좀 뜻밖의 결정을 한다. 2010년 서울 홍대 앞에 국수가게를 차렸다. “요리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지만 장사를 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밤을 새워 요리를 배워 가게를 차렸죠.”


3년간 두 차례 창업 도전
그가 차린 국수가게 상호는 누들 인 더 박스(noodle in the box). 장사는 잘됐다.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는 국내 3대 백화점에 제안서를 냈다. 그의 제안서가 통했는지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에 2호점을 낼 수 있었다. 컨설팅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국숫집을 차릴 때 그의 마음속에 고민이 없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그가 생각한 것은 “남들처럼 똑같이 살고 싶지는 않다”였다고 한다. ‘서울대 나와 컨설팅 회사 들어가서 일하다가 대기업으로 간다? 인생이 너무 따분할 것 같다!’

“처음엔 외식업 식당을 5개 정도 열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사는 게 그렇게 제 뜻대로 되지는 않았죠.”

2011년 경남에 있는 한 전통주 업체가 경영 악화를 겪으면서 최고경영자(CEO)를 물색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 이 대표는 이 회사에 제안서를 보냈다. 제안서를 보내는 것은 그의 특기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회사를 이렇게 바꿔볼 테니 자신을 사장으로 일하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제안했다. 혼자 하지도 않았다. 그의 대학 같은 과 친구인 류주현에게 연락해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같이 새로운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여기서도 또 ‘제안’이 나온다. 당시 류주현은 LG생활건강 화장품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던 시절.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는 LG생활건강에 들어갔지만 제조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울러 술과 관련된 일도 그의 구미에 맞았다. 이 대표의 제안을 듣고 그는 곧 회사를 나와 합류했다.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두 사람은 또 다른 2명과 함께 경남 지역에 내려가 그 전통주 회사의 사업을 재구축하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실업자가 된 이들은 홍대 앞으로 돌아와 공동으로 바(Bar)를 하나 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이 밀려왔다. 2012년은 시련의 시기였다.

왜 공허함을 느꼈는지,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을 했다.

“이것저것 뚜렷한 결론을 못 내리면서 그런 거죠. 한편으론 ‘왜 창업에 뛰어들어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냥 평범하게 직장에 다녔으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하하.”
[한국의 스타트업] 화장품 배송 서비스의 한계를 넘다
그래도 그의 결론은 창업이었다. 한 번만 더 해보고 싶다. 한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더 이상 창업은 없다. 나름의 배수진을 친 그는 다시 창업 동료인 류주현을 찾았다. 또 창업하자는 말에 경악을 할 법도 한데, 류주현은 이번에도 흔쾌히 합류했다. 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리더십이 있다. 천생 사업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재도전에 나선 이들은 음식료 업계에서 창업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엔 정보기술(IT) 분야를 택했다. 이 대표가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에게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2012년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분야가 뷰티섭스크립션(화장품 정기 배송)과 리워드 분야였습니다. 그런데 둘 다 제가 볼 때는 약점이 있어 성장이 매우 제한적이고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게 뭘까. 리워드앱은 소비자 기반이 취약하다는 게 그의 분석. “모든 종류의 리워드 관련 애플리케이션(앱)들은 물론 처음에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는 데 효과적이지만 소비자들이 그보다 나은 리워드가 있는 곳으로 쉽게 옮겨가곤 합니다.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지 않아 그런 겁니다. 자체적으로 커뮤니티가 돌아가면 꼭 리워드 때문이 아니더라도 들어올 수 있거든요.”
[한국의 스타트업] 화장품 배송 서비스의 한계를 넘다
화장품 정기 배송 서비스는 성장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게 그의 지적. “화장품 정기 배송으로 사업을 키우려면 정기 배송 박스가 그만큼 늘어야 하는데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기 힘듭니다. 소비자들이 민원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저마다 다르게 박스 내용물을 구성하긴 어렵죠. 비슷한 수준으로 내용품을 구성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몇 만 개의 샘플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화장품 회사는 10개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 대표는 사용자들에게 리워드를 제공하되 뷰티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두 서비스의 단점을 보완하기로 했다. 서비스 방식도 화장품 정기 배송이 아닌 마케팅 플랫폼 형식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런 콘셉트의 서비스 ‘핑크파우치’를 앱으로 만들어 7월 초 출시했다.


뷰티 커뮤니티 활성화 꾀해
핑크파우치의 1차 목표는 뷰티 커뮤니티 포 모바일(Beauty community for mobile), 즉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화장품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모임도 만들어지고 화장품에 대한 사람들의 수다와 발걸음이 계속되는 곳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사람들이 몰려들 수 있는 유인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벤트를 하루에 한 개씩 올려놓았다. 이 이벤트는 앱의 ‘파우치 받기’에 들어가 시도하면 된다. 파우치를 받는 사람에 한해 그다음 메뉴인 화장품 받기 코너에 들어가 광고 동영상을 보고 화장품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 이벤트 때문에 매일 들어가다 보면 관심도 생기고 정보도 쌓고 화장품도 받고 여러 가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7월 초에 출시해 3주 만에 4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등 순항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버전이 먼저 출시됐고 8월 들어 아이폰 버전도 나왔다.

이벤트에 참여해 당첨되는 사람들은 화장품을 받으면서 설문 조사에도 참여하게 된다. 이 설문 조사 결과는 화장품 서비스 확대를 위한 중요한 데이터로 활용된다. 광고만 보면 화장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성들의 참여가 많다. 여성 유저가 96%에 달한다. 대부분이 10대부터 30대까지의 여성들이다. 핑크파우치는 20대 여성들을 주요 타깃으로 설정하고 있다.

“업체에는 마케팅 플랫폼을 제공하고 유저들에게는 화장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모두에게 좋죠. 물론 우리는 돈을 벌 수 있고요.”

그는 업체들에 영업을 하러 다니면서 수만 개나 되는 샘플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샘플을 늘리는 게 아니라 소비자(고객) 풀을 늘린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 또한 몇 만 개씩이나 되는 샘플을 제작할 수 있는 소수의 화장품 회사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500여 개의 화장품 회사들의 2000여 개 브랜드를 모두 포함할 수 있다는 것도 이들의 장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업체와 소비자 모두에게 부담을 덜어주면서 혜택을 넓혀 주고 시장을 키워보겠다는 이들의 시도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까. 이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모바일 커머스 시장에서 1위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하지만 그전에 화장품이라는 버티컬 시장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확장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