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현 엠버스(Mverse) 대표
무엇을 하든 한 가지 목표만 생각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산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막연하지만 이렇게 살 수 있다면 분명 어떤 성취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소개하는 주시현 엠버스 대표는 젊은 나이지만 매사에 확실한 목표를 갖고 일해 온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해 성공에 이른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현실 세계의 냉혹함이지만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일찌감치 창업을 생각하고 준비해 온 그의 삶의 궤적과 준비 과정을 지켜보는 게 상당한 의미가 있을 듯하다. 2년 만에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를 졸업하고 2004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에 입학한 주시현. 그야말로 ‘엄마 친구 아들(엄친아)’의 포스가 느껴지는 그는 이걸로도 부족했는지, 수재들이 모인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다.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그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 군대를, 그것도 일반 사병 현역 입대해 만기제대했다는 점. 통상 이공계 진학생들이 엔지니어로 병역특례를 받는다는 것에 비춰 의외의 모습이다. 카이스트에 진학한 것이나, 전산학과를 택한 것이나, 군대를 현역으로 간 것 모두 창업 때문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사실 해외에 나가 창업하고 싶은 생각에 군대를 빨리 갖다 오자고 생각했어요. 군대를 해결해야 해외에 나가는 게 자유로울 테고 병역특례는 경험을 쌓을 수 있지만 기간이 길잖아요. 병역을 빨리 마치고 해외로 가자고 생각한 거죠.”
시행착오 속에 길을 찾다
제대하고 2010년 ‘코스모스 졸업’한 그는 유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외국계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에 입사했다. 해외로 바로 나가느냐, 경험을 쌓고 해외로 가느냐의 기로에서 경험을 우선 쌓는 길을 택한 것이다. 창업을 생각했을 때 ‘학위를 더 딸 필요가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때도 그의 생각의 중심은 창업 준비에 있었다고 한다. “경험은 없는 상태에서 회사의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는 훈련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컨설팅 회사에 갔죠.”
그런데 1년 2개월여 만에 그는 회사를 나왔다. 컨설턴트가 하는 일은 그가 생각한 것과 좀 달랐다. 무엇보다 창업과는 큰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창업에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 “사업은 결정하고 행동에 옮기는 게 중요하잖아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수정하고 성장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컨설팅이란 일은 그렇지 않더군요. 컨설팅은 모든 정보를 모아 시행착오 없이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업을 하면서 충분한 시간과 충분한 정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컨설팅 회사를 그만둔 그에게 때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카이스트 선배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타일세즈(Stylesays)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것이었다. 선배 일도 돕고 일도 배울 겸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2011년 9월이었다.
스타일세즈 입사가 주 대표에게 좋은 기회였던 이유는 본래 해외 창업을 꿈꿨던 그가 미국에서의 창업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처음에 그는 스타일세즈에서 경험을 쌓고 미국에서 창업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는 2012년 4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주 대표가 당초 해외에서 창업하려고 했던 것은 한국 시장이 작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어차피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려면 해외에서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서였다. 그런데 외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는 그가 모르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고 한다. “서비스 회사는 고객을 잘 알아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고객이 원하는 것을 알고 불편함을 해소해 주고 그래야 하는데 미국에 나가 보니 미국 고객들의 마음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문화적인 차이도 분명히 있었고요. 고객의 마음을 알고 고객과 만날 수 있는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죠.”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던 한국 시장이었지만 카카오톡 등 모바일 서비스 활성화에 힘입어 급성장하는 모습도 그에게 자극을 줬을 것으로 생각된다.
2012년 봄 한국에 들어온 그에겐 함께 창업할 동료도, 뚜렷한 사업 아이디어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카이스트 2년 후배이자 기숙사에서 방을 같이 썼던 산업디자인학과 김태은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한 번도 창업에 대해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었지만 주 대표는 김태은의 실력을 알고 그의 성격이 자신과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 또 한 명을 설득, 2012년 6월 엠버스(Mverse)를 창업했다. 모바일(mobile)의 엠(M)과 유니버스(universe)의 버스(verse)를 딴 조어다. 모바일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열망을 담은 것 같다.
주 대표가 서비스 개발을 맡고 다른 2명의 창업자가 각각 디자인과 비즈니스를 맡기로 했다. 이들은 모바일 커머스로 자신들의 사업 영역을 정했다. “모바일 커머스 분야가 기술적인 측면에서 소비자들에게 정말 큰 가치를 줄 수 있고 혁신의 여지가 많은데 그런 부분의 발전이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봤죠.”
연말께 두 번째 서비스 출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모바일 커머스가 아직 초창기라 1위 사업자라고 할 만한 존재가 없다는 점. 모바일 커머스에서는 1등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꿈이 있고 목표가 있어야 사업을 끌어갈 수 있고 뜻 있는 젊은이들을 모을 수 있다.
주 대표에게 엠버스는 사실 첫 창업이 아니다. 그는 2006년 초에 학교 선배들과 창업을 같이한 적이 있다. 당시엔 세컨드라이프와 같은 것을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었지만 자금 부족, 경험 부족 등으로 중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군에 입대했다. 2012년 창업할 때 주 대표의 모습은 그때와 사뭇 달라져 있었다. 6년 전에는 선배들의 창업에 합류하는 형태였지만 이번엔 자신이 주도해 후배들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모바일에서 제일 편리하게 이용하는 커머스 플레이스를 만들어 보자’는 게 이들의 목표였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케이큐브벤처스에서 1억 원의 투자도 받았다. 2012년 말 이들의 첫 작품 ‘MNOP 디자인(Designs)’을 출시했다. 이름이 어렵다. 주 대표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이름을 지었나? “생각을 너무 많이 했어요. 이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지었어야 했는데….”
이 서비스는 디자이너들이 상품을 올리고 사용자들이 이를 구매할 수 있게 한 것. 모바일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쇼핑 중에서 디자인과 관련된 상품을 선택한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사용자들이 어떤 물건이든 편하게 살 수 있는 그런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우선 소비자들에게 다가가야 하니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진만 보고도 구매를 결정할 수 있는 그런 버티컬(vertical) 영역을 하나 잡은 거예요.”
출시하고 7개월여 만에 150명의 디자이너들이 올리는 상품 5000여 개가 축적됐다. 4만여 명이 다운로드해 서비스를 이용했다. 나쁘지 않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소비자들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게 하려는 게 목적이었는데, 막상 서비스를 시작해 보니 기술적인 혁신보다 제대로 된 상품을 제때 공급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 돼 버렸다. 이에 따라 정작 중요한 부분의 변화는 이루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
주 대표는 요즘 본질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본래 서비스를 시작할 때 목표는 ‘좋은 제품을 편리하게 구매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품을 공급하느라 리소스의 상당수를 투입하는 상황이 된 것. 결국 커머스의 요체는 좋은 상품이고 이에 대한 정보라는 것을 서비스하면서 알게 된 그는 연말을 목표로 새로운 서비스 준비에 나섰다.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끔 유도하면서 모바일에서만 제공되는 그런 특징을 가진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뭐가 나올까. 아직 초창기인 모바일 커머스 시장에서 기존 웹 기반 커머스가 보여주지 못한 것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까. 소비자들의 구매 경험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그의 목표는 아직 진행형이다.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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