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간섭·내부 갈등…예고된 수순

8월 19일 박동훈 폭스바겐코리아 사장이 르노삼성자동차 영업본부장(부사장)으로 이적을 선언하면서 자동차 업계가 술렁거렸다. 박동훈 사장은 수입차 1세대이면서 ‘폭스바겐 신화’로 불린다. 폭스바겐코리아의 전신이랄 수 있는 모터임포트 시절부터 2005년 법인 설립 이후 줄곧 사장으로 일하며 불모지였던 수입 소형차 시장을 개척해 연간 판매량을 매년 경신한 성공 주역이다. 지난 7월 최대 실적으로 월 판매량을 업계 3위에서 2위로 끌어올리고 최근까지 왕성한 경영 활동을 하던 중이었다.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벤츠’를 제치고 ‘BMW’와 정면대결을 펼칠 정도로 승승장구 상황에서 왜 굳이 폭스바겐을 떠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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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사장은 보도 자료를 통해 “그동안 쌓아 온 자동차 산업에서의 노하우를 이제 또 다른 곳에서 활용해 볼 시간이 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말 못할 ‘속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놀라긴 했지만 그렇게 깜짝 소식은 아니었다”며 “정치적인 이슈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6개월간 직원 10여 명 이탈
업계의 ‘우려’가 ‘사실’로 확인된 배경에는 본사와 지사와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에 속해 있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에 지난해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새로 부임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내부 갈등을 겪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지난해 아우디코리아의 임원 한 명이 자금 관련 스캔들로 보직 해임되고 새롭게 독일계 재무담당 임원이 부임하면서 비용 지출이 깐깐해졌다”고 말했다.

이후 판매 실적이 급상승하는 데도 직원들에 대한 인센티브가 적어지고 일일이 비용 지출에 간섭하면서 6개월간 마케팅·파이낸싱·정비 등 분야 직원 10명 이상이 회사를 떠났다. 박 사장의 사퇴도 이러한 직원 이탈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창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할 상황에서 직원들의 업무가 임원진 선에서 ‘킬’되면서 사장에게까지 보고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내홍 이면에는 본사의 한국 시장 장악력 확대 의도가 있다는 분석에도 힘이 실린다. 한국 수입차 시장은 전성시대를 맞고 있고 글로벌 본사에서도 중요한 시장이 돼 가고 있다. 일례로 BMW코리아는 한국을 일본과 중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한 전략 차원에서 세계에서 3번째로 드라이빙 센터를 오픈한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1조5444억 원, 영업이익 1534억 원을 기록했다. 규모 자체보다는 연간 50%라는 성장률 측면에서 폭스바겐 독일 본사에서도 한국은 눈여겨볼 만한 시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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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업계 관계자는 “영업통으로 불리는 박 사장이 다 키워 놓은 시장을 이제 와서 자기네 사람으로 바꾸려는 것은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며 본사의 횡포라고 지적했다. 실적이 좋은 데도 불구하고 한국인 최고경영자(CEO)의 의사결정을 못 미더워하며 크로스체크를 했다는 것이다. 현재 박 사장의 뒤를 이을 신임 CEO 내정자로는 폭스바겐그룹의 토마스 쿠엘이 언급된다.

이번 사건으로 수입차 업계는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근 1년 사이 수입차 사장 자리가 외국인으로 교체되며 현재 한국인 사장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부 격인 박 사장이 사임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법인을 두고 있는 수입차 회사에서 현재 한국인 사장은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정재희 포드코리아 사장, 정우영 혼다코리아 사장 등 세 명밖에 남지 않았다. 모두 수입차 1세대로 분류된다. 폭스바겐 내부의 내홍에 그칠지, 성장하는 수입차 시장의 성장통으로 확대될지 향후 이 3인의 거취를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