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악재로 초토화…유동성 회복 안간힘

지난 8월 12일 알앤엘바이오(현 케이스템셀) 고문인 김종률 전 국회의원이 투신자살했다. 김 전 의원은 알앤엘바이오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부실 회계 관련 조사를 받던 중 무마 청탁 뇌물로 건네려 했던 5억 원을 중간에서 가로챈 것이 발각되자 결국 목숨을 끊는 방법을 택했다. 김 전 의원은 라정찬 알앤엘바이오 회장과 전주 신흥고, 서울대 선후배 사이였다. 라 전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기 전에 알앤엘바이오의 고문으로 위촉됐다.
[비즈니스 포커스] ‘퇴출 위기’ 알앤엘바이오 재기 성공할까
김 전 의원의 자살로 지난해 말부터 각종 불법행위와 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최근 상장폐지 당한 알앤엘바이오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알앤엘바이오의 최대 주주 겸 최고경영자(CEO)였던 라 회장의 무리수로 인해 국내 줄기세포 대표 기업이자 한때 코스피 시가총액 1조 원에 육박하던 알앤엔바이오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바이오 업계 대표 기업 중 하나였던 알앤엘바이오가 이대로 몰락하는 것은 아닌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바이오 업계는 황우석 박사 사태 이후 다시 한 번 비슷한 몰락을 겪고 있는 라 회장으로 인해 산업 자체가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구원투수 이형승 대표 영입
알앤엘바이오의 흥망성쇠는 마치 한 편의 영화와 같다. 2000년 설립된 알앤엘바이오는 2005년 서울대로부터 성체줄기세포 관련 주요 기술을 도입해 줄기세포 치료제 생산센터를 구축했다. 2006년 미국에도 알앤엘바이오스타 법인을 설립했으며 2011년에는 인간 지방조직 유래 다분화능 줄기세포와 이를 함유하는 세포 치료제 특허를 취득했다.

독자 기술로 줄기세포 분리 배양 기술을 표준화해 줄기세포 치료 분야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알앤엘바이오는 코스피 시가총액이 1조 원을 훨씬 넘으며 승승장구했다. 라 회장은 ‘줄기세포 신화’로 불리며 주식시장에 바이오 열풍을 일으킨 주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알앤엘바이오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때는 2012년 12월이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알앤엘바이오가 매달 500여 명의 환자를 후쿠오카시 하카타구의 ‘신주쿠클리닉 하카타원’에서 자가 지방 줄기세포 시술을 받도록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 허가 절차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일본과 미국 등 해외 의료 기관에서 이를 이용한 시술을 받으려는 환자들을 모집했다는 것이다. 이후 2013년 1월 보건복지부는 줄기세포 무허가 제조 혐의와 불법 환자 유인·알선 행위로 알앤오바이오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비극이 본격화됐다.

이어 자사주 무차별 매각에 따른 투자자 손실, 회계 법인의 감사 의견 거절에 따라 지난 4월 결국 알앤엘바이오는 상장폐지되는 수모를 겪었다. 또한 라 회장은 주가조작과 처조카 성추행 사건에 휘말리면서 몰락했다.

라 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미공개 회사 정보를 이용해 약 473만 주의 주식을 팔아 50여억 원을 현금화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08년 3월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회사 자금 60억 원을 영업 자금 대여 명목으로 이체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2010년 4월부터 같은 해 8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처조카를 성추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라 회장은 지난 6월 29일 구속 수감된 이후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

라 회장의 불법행위와 비리로 수많은 생채기를 얻은 알앤엘바이오는 지난 7월 사명을 케이스템셀로 변경하고 심기일전할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이형승 전 IBK투자증권 사장을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했다. 이 대표는 “알앤엘바이오는 일반적인 상장폐지 회사와 달리 자산이 많기 때문에 충분히 재기할 수 있다”며 “줄기세포 기술력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회사를 정상화하는 게 목표”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일단 이 대표는 회사 자산을 처분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현재 회사가 보유한 자산은 사옥 30억 원, 대치동 상가 300억 원, 세종시 스파텔 100억 원 등이 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알앤엘바이오의 자산은 1900억 원. 이 중 부채는 1488억 원이다. 그는 “알앤엘바이오가 보유한 자산을 매각하고 채권을 회수하면 현금화할 수 있는 돈이 700억~800억 원으로 집계된다”며 “이렇게만 되면 재무적으로 급한 불은 끄게 되는 셈”이라고 밝혔다.

또한 알앤엘바이오는 줄기세포 사업 이외에 진행하고 있던 스파텔·패션·방송·레저 등 사업도 정리할 계획이다. 현재 자회사로 알앤엘내츄럴(의학·약학 연구개발업)·알앤엘애니멀헬스(사료 첨가물 도소매)·스프라우트(패션 제조 도소매·상하이알앤엘바이오(생물 기술 자문, 화장품)·브레인트로피아(천연물 연구 및 제조) 등이 있다. 알앤엘바이오는 지난 5월 회사 전체 인력 중 5분의 1 정도의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6월에도 용역 업체 분석을 통해 일부 인력 조정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직을 제외한 직원 구조조정에도 나설 방침이다.
[비즈니스 포커스] ‘퇴출 위기’ 알앤엘바이오 재기 성공할까
비리로 얼룩지며 잃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급선무다. 이 대표는 알앤엘바이오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주총에서 사외이사로 알앤엘바이오 소액 주주 모임 대표인 서정미 교수를 선임했다. 현재 케이스템셀의 소액 주주는 3만8000명에 달한다. 이 대표는 “현재 라 회장으로부터 임원 구조조정 등 경영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상태”라며 “다행히 주주들이 알앤엘바이오의 기술에 대해 신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계속되는 영업 손실 극복할 수 있나
이 대표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재무 문제를 해결하고 경영 정상화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외에도 해결해야 할 적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계속되는 영업 손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다.

알앤엘바이오가 공시한 사업·반기보고서에 따르면 각종 악재가 발생하기 이전인 2012년 190억8943만 원, 올 상반기 89억1037만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줄기세포 사업 매출은 387억8048만 원으로 2011년 대비 16% 감소했고, 전체 사업 매출은 413억5125만 원으로 전년 대비 26.4% 줄어들었다. 이 밖에 2012년 패션, 생물 안전, 화장품 사업에서는 전혀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그동안 논란이 됐던 줄기세포 치료제를 정식으로 허가받아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대표는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은 이전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최종 품목 허가를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의 전례가 전무하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당장은 힘들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안전성을 검증하는 1상과 달리 치료제의 효능을 입증하는 2상 중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한다. 또한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 환자에게 여러 번 반복 투여하고 호전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만큼 시간도 수년 이상이 걸린다.

현재 알앤엘바이오는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만 2상까지 마쳤을 뿐 버거씨병 치료제는 2상 진행, 척수 손상 치료제는 1상만 완료했다. 나머지 4개 질환(대퇴골두무혈성괴사·척수손상·롬버그병·중증하지허혈질환) 치료제는 임상시험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즉 치료제의 임상시험을 마치고 상용화하는 데까지 수년간이 소요되고 그동안은 매출을 회복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알앤엘바이오는 재기를 위한 자구책을 고심하던 중 터진 김 전 의원의 자살로 다시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알앤엘바이오가 상실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또 이 대표는 취임 당시 “경영총괄로서 재무적인 부분을 정비하고 라 회장은 기술원장으로서 연구 기술과 관련된 부문을 주도하는 자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단 검찰 조사가 끝나고 만일 재판에서 혐의가 인정되면 실형을 받을 수도 있어 라 회장의 기술 자문은 현실적으로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