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 정도로 폭발력이 클 줄 몰랐습니다. 한 달에 1만3000원꼴인데….”
‘2013년 세법개정안’을 작업했던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모 과장이 진땀을 흘렸다. 한 주 전까지만 해도 “별문제 없이 국회를 통과할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내비쳤었다. 세법개정안의 핵심이었던 소득세법 개편안이 문제였다. 고소득층에 유리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의료·교육비 등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기로 했는데, 그 결과 한 해 수입이 3450만 원인 근로자에서부터 소득세 부담이 조금씩 늘어나게 됐다. 소득 4000만~7000만 원 구간까지 한 해 평균 16만 원을 더 내는 식이었다.
<YONHAP PHOTO-1714> 질문 듣는 현오석 부총리
    (서울=연합뉴스) 배정현 기자 =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2013 세법개정안 수정 방향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13.8.12
    doobigi@yna.co.kr/2013-08-12 19:39:59/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질문 듣는 현오석 부총리 (서울=연합뉴스) 배정현 기자 =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2013 세법개정안 수정 방향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13.8.12 doobigi@yna.co.kr/2013-08-12 19:39:59/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지난 8월 8일 현오석 부총리는 세법개정안 브리핑에서 서민·중산층의 부담은 늘리지 않고 고소득층의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산층의 거센 ‘반란’을 예측하지 못했다.


월급쟁이 분노에 당황…현오석 책임론까지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됐다. 고소득자는 그대로 두고 ‘유리지갑’인 근로자들 부담만 지운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민주당은 이 틈을 노려 ‘중산층 세금 폭탄론’을 꺼내들었다. 온라인 사이트에 뜬 세법 관련 기사엔 무수한 댓글이 달렸다. ‘한 달 300만 원 벌어서 빚 갚고 아이들 학원비 내고 나면 저축도 못한다’, ‘나는 중산층이 아니라 서민일 뿐이다’는 의견이 몇 백 개였다.

이즈음 세제실은 거의 공황 상태였다. 세법개정안 발표 직후엔 공무원들도 꿀맛 같은 ‘휴가 모드’를 즐길 예정이었다. 세법개정안 기사가 나간 직후인 지난 8월 11일 일요일엔 세제실 공무원들 대부분이 서울청사로 출근했다. 분노한 민심을 어떻게 달랠 것인지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세제실의 또 다른 공무원은 “이미 여당과 당정 협의까지 거쳤기 때문에 별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라며 “세금 폭탄론이 나올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기재부의 ‘비상 모드’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현오석 부총리에 대한 책임론까지 일기 시작했던 것이다. 최근 현 부총리는 리더십 논란을 가까스로 누르고 조금씩 존재감을 알려 가던 상황이었다. 청와대도 힘을 실어주면서 모처럼 산업 입지 규제 완화, 서비스산업 활성화 등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일각에서 ‘부총리 경질론’까지 나오자 기재부의 사기는 확 꺾이는 듯 했다. 심상치 않은 민심을 확인한 청와대가 소득세법 개정 방향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하자 기재부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현 부총리와 김낙회 세제실장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시 한 주가 시작된 8월 12일 현 부총리는 간부 회의 차 세종시에 내려가려던 일정을 취소했다. 그 대신 여의도 인근 대방동에서 점심을 먹으며 당정 협의를 다시 했다. 세제실 간부들과 대책회의 직후 청와대까지 합류한 당정청 회의를 거쳤다. 그리고 오후 7시 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법개정안을 전격 수정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연소득 5500만 원 이상의 근로자들에 대해 차등적으로 세 부담이 증가하도록 구조를 바꿨다. 부족해진 세수를 어디에서 충당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폭발 직전의 민심을 간신히 잠재울 수는 있었다.

경제 수장의 경질론도 수면 아래로 잠복하는 분위기다. 기재부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애초부터 경질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부연한다. 현 부총리가 할 일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9월 초 러시아에서 G20 재무회의가 열리고 한·러 정상회담에서는 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 재개가 논의된다. 9월 말엔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기재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세법개정안에 대한 정무적 책임을 부총리에게 묻는 것도 난센스”라고 강조했다.

기재부의 안도 섞인 한숨이 언제까지 갈지는 두고 볼 문제다. 복지 혜택을 위해서는 세수를 늘려야 하고 그 혜택을 받게 되는 중산층도 언젠가는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중산층 반란이 재개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김유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