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창조 열풍’
냉전시대 우주개발 등 의미 있는 과학 발전은 국가가 주도해 이뤄졌다. 동구권이 무너진 1990년대 이후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필두로 한 혁신적인 기업들이 정보기술(IT) 혁명을 이끌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개인이 나서 미래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일단 성공하면 막대한 경제적 효과가 기대되는 분야다. 지난 8월 5일 영국 런던에서 첫선을 보인 ‘인조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 패티가 대표적이다. 구글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이 개인 자격으로 70만 유로(약 10억3500만 원)를 투자한 결실이다. 쇠고기 소비는 급증하는 반면 소 사육에 너무 많은 자원이 투입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대량생산에 성공하면 식량난을 크게 덜 수 있는 것은 물론 도축되는 가축의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지난 8월 12일에는 엘런 머스크 스페이스X·테슬라 회장이 초고속 진공 열차인 ‘하이퍼루프’의 콘셉트 디자인·설계도·작동원리 등을 공개했다. 하이퍼루프는 진공에 가까울 만큼 공기를 뺀 저압의 튜브 안에서 최고 시속 1280km로 달리는 열차다. 2분마다 출발하는 하이퍼루프를 이용하면 610km 떨어진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간 이동 시간을 30분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게 머스크의 주장이다. 그는 자신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1000여 명을 디자인 설계에 동원하고 있으며 2023년까지 6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행성 자원(Planetary Resources)’을 공동 창업한 피터 디아맨디스 역시 이들에 뒤지지 않는 괴짜다. 로봇을 이용해 지구 주변의 1500여 개의 소행성을 탐색하고 물과 에너지 자원 등을 채굴하는 사업으로 10~15년 후에 실제 채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미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제임스 카메론 영화감독 등이 투자 의사를 밝혔다. 앞으로 2년 내에 우주 망원경을 소행성으로 발사해 물과 자원을 많이 함유한 소행성을 찾는다.
이처럼 의약·교통·로봇·신소재 등의 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개인이 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IT 기업을 창업해 큰 성공을 거둔 뒤 이 돈으로 혁신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브린은 구글을 창업해 20대에 이미 억만장자가 됐고 머스크는 1998년 온라인 결제 서비스 페이팔을 창업하고 이를 이베이에 팔아 15억 달러를 벌었다.
과학기술 투자는 국가 생존 전략
이미 충분한 성공을 거뒀음에도 사비를 털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은 일종의 사회 환원의 의미가 있다. 브린은 인조 쇠고기 시식회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육류를 생산할 새로운 방법을 찾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채식주의자가 되거나 큰 환경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규모의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것도 이유다. 디아맨디스는 “세계 최대의 시장은 세계 최대의 도전을 통해서만 열릴 수 있다”며 “혁신적인 투자에 나서는 이들은 보다 큰 도전에 관심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는 2000년대 이후 기술 혁신이 수익성을 쫓아 IT 분야의 낮은 단계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뒤집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미래학자 폴 사포는 “새로운 도전이 성공해 ‘잭팟’을 터뜨리면 다른 기업가들도 뒤따라 나서게 될 것”이라며 “16세기 대항해 시대와 같은 발견의 새로운 차원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들이 재정 적자에 시달리면서 과학기술 개발 재원을 대폭 삭감하면서 개인의 기술 분야 투자는 더욱 각광받고 있다. 한때 신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던 벨연구소와 AT&T 등도 시장의 독점적 지위가 위협받으면서 수익이 줄어 과거와 같은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디아맨디스는 “정부는 의회의 예산 감사를 걱정해야 하고 기업은 주가를 걱정해야 하는 반면 개인은 자유롭다”고 말했다.
노경목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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