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혀지는 역내 불균형

유럽 재정 위기의 전개 과정에서 부각된 유로 존의 근본적 문제점은 경상수지 격차와 같은 회원국 간 심각한 역내 불균형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 직전까지 유로존 내에는 경상수지 흑자국과 적자국의 이중 구조가 고착되는 양상을 보였다. 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 등 북부 유럽 국가들은 매년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데 비해 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와 같은 남부 유럽 국가들은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epa03690553 (FILE) A file photo dated 23 January 2007 showing a container ship in the seaport of Hamburg, Germany. German industrial orders posted a surprise gain of 2.2 per cent from February to March as a surge in demand from the eurozone helped power a strong rise in exports, the government said 07 May 2013. Analysts had expected March orders to slump 0.5 per cent after they gained 2.2 per cent in February. The data helped spur hopes that Europe's biggest economy has rebounded from a contraction in the final quarter of 2012.  EPA/KAY NIETFELD *** Local Caption *** 50498551
epa03690553 (FILE) A file photo dated 23 January 2007 showing a container ship in the seaport of Hamburg, Germany. German industrial orders posted a surprise gain of 2.2 per cent from February to March as a surge in demand from the eurozone helped power a strong rise in exports, the government said 07 May 2013. Analysts had expected March orders to slump 0.5 per cent after they gained 2.2 per cent in February. The data helped spur hopes that Europe's biggest economy has rebounded from a contraction in the final quarter of 2012. EPA/KAY NIETFELD *** Local Caption *** 50498551
경제 위기 이전 이와 같은 역내 불균형은 유럽의 경제 통합 과정에서 필연적인 현상으로 간주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개별국이 평가 절하를 통해 경상수지를 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상수지 격차의 확대는 향후 유로존 해체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남부 유럽 국가들의 국채 금리가 치솟은 원인은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독자적인 평가절하의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채 금리 급등의 원인은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의 증가가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독일·프랑스 등 재정 위기국으로 분류되지 않는 회원국의 국가 채무 수준도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역내 불균형이 재정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경상수지 격차가 위기 진원지
유로존 회원국 간의 경상수지 격차는 별도의 조정 노력은 없었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격차 확대 폭이 둔화됐고 재정 위기를 거치면서 현저하게 축소돼 왔다. 남부 유럽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가 감소하고 있는데, 스페인이 제일 두드러진다. 스페인의 경상수지 적자는 2007년 1053억 유로(GDP 대비 10%)에 달했지만 이후 적자 폭이 현저하게 감소해 2012년에는 113억 유로로 축소됐다. 독일은 여전히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오스트리아·핀란드의 경상수지 흑자 폭은 현저하게 감소하거나 적자로 전환됐다.

구제금융에 따른 개혁 조치로 남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 건전성이 개선되고 있고 단위 노동비용의 하락으로 일부 품목에서 수출이 증가되고 있다. 남부 유럽 국가들은 고강도의 긴축재정으로 재정지출을 축소하고 있고 이는 해외 차입의 감소로 이어졌다. 긴축에 따른 경기 침체의 여파로 당초 재정적자 감축 목표는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2009년을 기점으로 재정적자 수준은 계속 하락 중이다. 또한 남부 유럽 국가들의 단위 노동비용 하락과 유로화의 약세는 제품의 수출 경쟁력 개선에 기여해 수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0~2012년의 기간 중 남부 유럽 10대 주요 수출 품목은 전례 없는 수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는데, 제조업의 수출 증가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가령 스페인 총수출의 15%를 차지하는 정유 관련 제품은 최근 2년간 수출이 64% 증가했다. 그리스는 최근 2년간 총 수출이 159% 증가했고 정유 관련 제품(총수출의 55%)과 철강은 각각 955%와 83% 늘어났다. 포르투갈도 정유·철강·기계류·자동차의 수출이 2년 동안 48~152% 증가했다.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가장 즉각적인 방법은 평가절하를 통해 재화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지만 유로화 체제 하에서 독자적인 평가절하는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임금 등 생산비용 감소를 통해 실제적으로 화폐 평가절하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 ‘내적 절하(internal devaluation)’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 내적 절하는 화폐 평가절하와 유사한 효과(경상·무역 수지 개선)를 가질 수 있지만, 이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임금) 및 상품시장(물가)이 유연해야 하며 수출 경쟁력 강화가 경기를 주도할 수 있도록 수출 부문의 비중이 비교적 높아야 한다.
[유럽 경제 부활에 베팅하라] 남유럽 수출↑·적자↓…경쟁력 ‘UP’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일부 위기국에서는 임금이 하락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의 단위 노동비용은 고점 대비 각각 7~17%의 하락을 기록하면서 내적 절하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는데 아일랜드의 임금 하락 폭이 가장 크다. 아일랜드의 임금은 2008년 2분기 이후 하락하기 시작해 16분기 동안 17.2% 하락했으며 2012년 2분기부터는 안정되는 경향을 보여 임금 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단위 노동비용은 고점 대비 각각 13.7%와 7%의 하락을 기록하고 있지만 경기 침체를 감안할 때 앞으로도 임금 하락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포르투갈에서는 임금 하락이 최근에 시작됐고 이탈리아의 임금은 지속적인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물가 하락은 아일랜드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나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에서는 최근에야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탈리아는 여전히 물가 상승을 기록 중이다.


임금 감소와 유로화 약세 영향도
대부분의 재정 위기국에서 수출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고 무역수지 적자도 개선되는 추세다. 2009년 이후 재정 위기국의 GDP 대비 수출 비중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고 아일랜드는 GDP 대비 50% 이상의 수출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의 수출 비중은 재정 위기 발생 이전 GDP 대비 6% 수준에 불과했지만 2012년에는 12%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와 함께 GDP의 10% 내외를 차지하던 무역수지(상품) 적자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수출 비중의 증가는 임금 감소와 유로화 약세에 기인하는 바가 크며 산업구조상의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회원국 간 경상수지 격차가 축소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를 남부 유럽과 북부 유럽의 수렴 현상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남부 유럽 경제의 체질 개선보다 호황기의 거품 경제가 불황기에 재조정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경기 침체 및 유로화 약세, 대외 차입 여건의 악화는 재정 위기에 직접적으로 기인하고 있으므로 시장의 자동적인 조정 기능으로 볼 수 있다.

남부 유럽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 감소는 호황기의 자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일종의 디레버리징 과정으로, 앞으로도 일정 기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임금 삭감을 통한 내적 절하는 실업과 빈곤층의 확산 등 많은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는데, 불안 요인은 여전히 내재돼 있다.

여러 상황을 종합할 때 아일랜드 외에 다른 재정 위기국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경기 침체를 동반한 내적 절하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아일랜드는 비교 대상인 다른 국가에 비해 임금 및 물가가 신축적인 것으로 나타나며 이미 임금 하락과 함께 물가 하락이 상당 기간 동안 진행됐다. 이에 따라 향후 추가적인 내적 절하의 필요성은 적어 보인다. 개혁에 대한 정치적 공감대가 높고 수출 비중이 높은 점은 내적 절하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스페인과 그리스의 임금 수준은 하락 중이나 물가 하락은 최근에야 비롯돼 실질 구매력 감소와 이에 따른 내수 침체가 우려된다. GDP 대비 수출 비중은 증가하고 무역수지가 개선되고 있지만 애초 수출 비중이 낮아 경기 반등을 주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스페인·그리스·포르투갈 정부는 개혁 의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치적 지지도가 낮아지는 점은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다.

이탈리아는 경상수지·무역수지 측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어 내적 절하의 필요성은 낮다고 볼 수 있지만 장기간 동안 생산성 상승을 초과하는 임금 상승을 기록한 바 있어 개혁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강유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유럽팀장 ydkang@kie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