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비즈
“연예인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만났을 때 휴대전화를 꺼내서 사진을 찍고 싶은 연예인과 검색해야 하는 연예인. 저는 당연히 그 후자입니다.”(웃음)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다. 자타 공인 ‘17년 차 무명 개그맨’ 대신 최근 오종철에겐 여러 이름이 생겼다.연예인 출신 자기 계발 강사 섭외 1순위이자 연 100회가 넘는 전국 강연을 통해 기업인·직장인·공무원·대학생·주부 등 대상을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에게 꿈과 열정의 메시지를 전하는 오종철. ‘소통테이너’라는 개인 브랜드를 특허 출원했고 강연 및 공연 전문 기획 그룹인 에이트스프링스의 대표를 맡고 있고 최근 출간한 자기 계발 서적 ‘온리원’의 저자이기도 한 그의 ‘인생 유턴’에 부쩍 호기심이 생겼다.
오종철은 중앙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후 1996년 SBS 5기 공채 개그맨으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그의 공채 동기는 지상렬·강성범·심현섭·김준호 등이다. 남을 웃기는 데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꾼’들 사이에서 오종철은 늘 기가 죽어 있었다.
“신인 개그맨 때부터 지금까지 연예인으로선 늘 하향 곡선을 그렸습니다. 방송국에서 걸려오는 섭외 전화 한 통에 온 신경을 집중했죠. 제 어머니는 더 늦기 전에 은행에 취직하라고 성화였습니다.(웃음) 3년간 진행하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잘리고’ 난 후 생계가 막막해지자 은행에서 빌린 1900만 원을 아내에게 건네면서 생활비와 세 아들의 교육비로 쓰라고 했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라디오 방송에서 했던 대본상의 멘트가 한 단체의 오해를 불러일으켜 오종철은 ‘고소’를 당했다. 물론 무혐의로 마무리됐지만 이러한 상황을 겪으면서 해머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고 했다.
“언제까지 제가 이런 식으로 남들에게 휘둘리면서 살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뭔가 타개책이 필요했죠.”
무명 연예인에서 섭외 1순위 강연자로
그는 EBS 라디오 가운데 유명한 저자, 작가, 성공한 기업가들이 나오는 ‘직장인 자기 계발 프로그램’을 3년간 진행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당시 가지고 있던 낡은 수첩을 뒤적거리다가 자신이 이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유명 인사들을 꽤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찍부터 세계적 강연 행사인 테드(TED)도 관심 있게 봤던 터라 이들과 함께 ‘새로운 강연 프로그램을 기획해 진행해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물론 어디서도 그의 이러한 결심을 눈치 채고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스스로 그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오종철은 서울 광화문 ‘올레 스퀘어’를 지나가다가 이곳에서 토크 콘서트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무작정 담당자를 찾아가 이 공간에서 새로운 공연이나 강연을 기획해 보고 싶다고 했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제안서를 보내라고 했다. 정성껏 제안서를 만들어 보낸 지 3개월이 흐르자 그에게 연락이 왔다. 담당자는 “딱 2번만 해보세요. 공연당 200만 원의 예산으로 강연자와 공연 팀을 다 섭외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오종철은 어렵사리 붙잡은 기회에 사활을 걸었고 첫회 강연자로 당시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김난도 서울대 교수를 섭외했다. 라디오 방송에서 한 번 만났던 인연으로 김 교수는 흔쾌히 무료로 강연장에 올라섰고 관객들의 반응은 역시 상상 이상으로 폭발적이었다. 두 번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자 KT 측에선 오종철에게 ‘드림 스테이지’를 전담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2011년 7월부터 스스로 만든 기회의 무대에 그는 오르고 있다.
방송할 때보다 수입도 5~6배 늘어
이를 계기로 강연계에서 그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올레(OLLEH) KT의 ‘오종철의 드림 스테이지’를 비롯해 잡코리아의 ‘(나꿈소)-나의 꿈을 소리치다’, 신개념 나눔 콘서트인 ‘(모나콘)-모발 나눔 콘서트’, 팟캐스트 방송인 ‘(꼴통쇼)-꼴찌들의 통쾌한 승리’를 직접 기획하고 진행 중이며 CBS의 인기 강연 프로그램인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의 MC를 맡고 있다. 더군다나 요즘은 기업의 사원 연수 프로그램의 강연자로 그를 찾는 일이 많아져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특히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생명·삼성엔지니어링·삼성카드 등 삼성그룹에서 러브콜이 쇄도하는 강연자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콘텐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이 사회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삶을 연구했다.
“삼성의 아무개로 살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그냥 삼성에 다니는 홍길동일 때는 회사가 시키는 일만 하고 윗사람 눈치만 보지만 순서를 바꾸면 회사의 주인이 자신이 되고 자기 주도적으로 살게 됩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개발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죠.”
자신 역시 ‘개그맨 오종철’이었을 때는 늘 다른 사람의 개그, 다른 사람들의 인기에 연연해야 했다. “자신의 이름을 앞으로, 직책이나 회사 이름을 뒤로 놓으면 엄청난 변화가 생깁니다. 저 또한 ‘개그맨 오종철’이 아니라 ‘오종철의 개그’라고 순서를 바꾼 순간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어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저만의 것을 찾는 고민이 시작된 거죠. 개그맨들의 개그는 ‘세상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겠지만 ‘오종철의 개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웃을 일을 만들어 주는 것’이 됐어요.”
이처럼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방송만 할 때보다 수입도 5~6배가 늘었고 사업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어 매출액도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열거한 고정 강연 외에도 최근 소셜 커머스 기업인 위메이크프라이스의 삼성동 신사옥의 1층 공간에 대한 컨설팅 작업을 하고 있다. 오는 11월부터 1층 문화홀에 대한 전체적인 프로그램과 공연 기획을 전담할 예정이다. 서울 용산구의 여행박사 신사옥 내의 공연 기획 작업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게다가 8월 15일부터 나흘 간 일본의 미야자키에서 ‘제1회 꼴통 투어’를 시작했다. 신창연 여행박사 대표, 이영석 총각네 야채가게 대표와 의기투합해 젊은이들과 한바탕 어울리며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웃을 일을 만들어 주는 것’을 모토로 살다 보니 자연스레 타인을 돕는 일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종철은 ‘모발 나눔 콘서트’의 수익금 전액을 이웃에게 기부하고 있다.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가발을 제작하는 데 벌써 15개의 가발을 만들게 됐다며 기뻐했다.
“하루하루 기적같아요. 제 개그가 자살하려던 사람에게, 등록금이 없어 고민하는 학생에게 도움을 주죠.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이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하는 ‘꿈동산 중개업자’로 살고 싶습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