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의 나이다 보니 아직 세상 경험이 적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내게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가장 가깝게 경험한 것은 아버지의 장례식 때였다. 오랜 시간 앓아 온 병으로 몇 달 전 하늘로 가셨다. 오랫동안 아프셨기 때문에 갑작스럽지는 않았으므로 장례식장까지는 담담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시골로 장지를 옮겨야 해서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아버지가 머무르고 계셨던 집에 갔다. 가정 집 정리 컨설팅을 다니면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집 안 정리는 내게 익숙했다. 깊숙한 곳에서 오랫동안 입지 않은 옷,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물건들까지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그런 물건들 속에서 아끼느라고 드시지 않은 영양제, 구석구석에 가득한 약봉지를 발견했다. 그것들을 보는 순간 장례식까지도 담담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영양제 하나도 마음껏 드시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오랜 시간 동안 병 때문에 고생하시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한 죽음을 준비하셨을 수십 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영정 사진 한 개만 유품으로 가져와 서재에 두었다. 항상 약을 달고 사셨지만 그 약조차 마음껏 드실 수 없었던 아버지의 영정 사진 옆에는 건강 보조식품을 두었다. 살면서 병으로 하루하루 힘드셨을 아버지의 영정 사진은 이제 편안해 보인다. 평생 아버지의 건강한 모습을 뵌 적이 없던 내게 아버지의 장례와 유품은 건강과 삶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하게 해 줬다. 건강을 위해 먹는 약이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유품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된 사람이지만 떠날 준비가 된 사람이야말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윤선현 베리굿정리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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