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주 이랑주VMD연구소 대표

재래시장에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이가 있다. 손만 대면 매출이 고공 행진한다고 해 붙여진 별명의 소유자 이랑주(41) 이랑주VMD연구소 대표다. VMD (Visual Merchandising & Display)는 매장 구성의 기본이 되는 상품 계획과 인테리어, 디스플레이, 판촉, 접객 서비스 등의 매장 환경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해 판매를 촉진하는 기술로, 이 대표가 주력하는 연구 분야다.
[1인 연구소 전성시대] 백화점 13년 근무…재래시장에 경험 접목
이 대표는 13년간 대형 백화점과 명품관에서 디스플레이 업무를 담당한 베테랑이다. 그런 그녀는 2006년 돌연 사표를 내던지고 재래시장으로 뛰어들었다. 뜬금없는 행보에 주변 역시 적잖이 놀랐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의 재래시장의 디스플레이를 바꿔놓겠다며 방방곡곡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국내 VMD 1호 박사가 됐다. 재래시장을 비롯해 소상공인 컨설팅은 물론 VMD 강의 의뢰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몸값도 훌쩍 올랐다. 그러던 중 그녀는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1년간 세계 일주를 떠났다. 세계 각국의 재래시장, 대형 마트, 백화점, 로드 숍 등을 답사하며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과연 무엇이 그녀를 끝없는 도전의 길로 끌어들이는 것일까.

지난 8월 6일 만난 그녀는 봄꽃처럼 화사한 차림으로 등장했다. 표정과 목소리도 생기가 넘친다. 세계 일주를 떠난다고 우려하던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대표의 활동이 1년 전보다 부쩍 늘었다. 재래시장 컨설팅이나 VMD 강의로 짜인 스케줄만 하루에도 3~4개가 넘는다. 그녀가 안정 궤도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은 성공적인 재래시장 디스플레이 사례가 알려지면서다.


재래시장 300개 점포 컨설팅
2005년 당시 이미 13년 차 디스플레이 베테랑으로 정평이 나 있던 이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진흥원에서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디스플레이 전문가들을 섭외해 재래시장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와 강연 등을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이 대표를 포함해 서른 명 정도가 이 자리에 참석했다.

“시장경영진흥원 측에서 VMD를 재래시장에 접목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셨어요. 다들 손사래를 쳤지만 저는 ‘이거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인맥이 닿는 상인들을 중심으로 점포 컨설팅을 시작해 하나둘씩 성과를 만들어 나갔어요. 시장에서 맨손으로 바퀴벌레를 잡고 쥐똥을 치워 가며 끈기 하나로 버텼어요.”

친구네 생선 가게를 시작으로 그녀의 실험은 시작됐다. 생선을 판매대 위에 직선으로만 진열하던 것에서 사선으로 바꿔 놓았다. 그랬더니 생선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옆집 과일 가게도 그녀의 손길이 닿았다. 홍시를 담는 비닐봉지 하나 바꿨더니 매출이 쑥쑥 올랐다. 시들했던 시장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바라본 주변 상인들도 하나둘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 대표는 재래시장의 미다스의 손을 자처했다. VMD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그리고 진열과 매출의 상관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지금까지 컨설팅한 점포들을 대상으로 데이터 분석에 들어갔다. 점포마다 3~5개월 정도 매일 매출 추이를 조사해 논문을 발표했다. 국내에 없던 시도여서 그 의미가 남달랐다.

“분석 데이터를 들고 상인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VMD가 왜 필요한지 설명에 나섰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니 끄떡하지 않던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VMD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대부분을 무료로 컨설팅해 드렸어요.”

홀로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그의 활동에 주목한 시장경영진흥원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전국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며 컨설팅을 해달라는 제안이었다.

“공식적으로는 2006년부터 VMD가 재래시장에 투입됐어요. 저 역시 2006년에 회사에 사표를 내고 곧바로 1인 연구소를 차렸죠. 전부터 VMD 전공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던 터라 연구소를 내는 데 자신 있었어요. 시작은 집 골방에서 달랑 전화기 한 대 놓고 했어요. 그래도 13년간 쌓은 노하우와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시장과 소상공인 VMD 데이터가 큰 힘이 됐어요.”

연구 활동을 하며 큰 수익이 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월 200만 원 정도를 벌며 연구소는 무난하게 굴러갔다. 재래시장 컨설팅 사례가 알음알음 퍼지자 강연 의뢰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 사이 박사과정도 마쳐 이 대표는 한 대학교의 겸임 교수로도 활동했다.

2012년은 오랜 연구 끝에 빛을 보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컨설팅 사례와 그가 만난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이랑주의 마음을 팝니다’라는 책도 펴냈다. 이 책에 담긴 콘텐츠는 시장 상인들이 보는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책 내용이 인기를 끌며 한 달에 강의가 스무 건 이상씩 들어왔다.

“책 수익금은 전액 재래시장에 기부했어요. 당장의 제 수익보다 VMD에 대해 알리고 VMD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최고의 가치 진열 전문가 꿈
그러던 중 지난해 3월 그녀는 세계 여행을 떠났다. 1년 동안 세계 40개국의 150여 개의 재래시장과 4000여 개의 소상공인 점포를 돌아다녔다.

“내가 더 창의적이고 견고해지지 않으면 이들을 도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떠날 결심을 했죠. 본 만큼 생각하고 생각한 만큼 변화한다는데 꾸준히 보고 느끼고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잖아요. 또 소상공인들이 해외 진출을 하는데 도움을 주려면 제가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1인 연구소 전성시대] 백화점 13년 근무…재래시장에 경험 접목
여행을 떠나기 전 이 대표를 향한 주변의 만류와 우려와 달리 그녀는 요즘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그녀의 손에 의해 재래시장의 300여 개 매장이 달라졌다. 칼럼을 연재하는 언론 매체도 늘었다. 강의 요청 역시 쇄도하고 있다. 한 시간 반 남짓한 인터뷰 시간 동안에도 끊임없이 그녀의 전화벨이 울렸다. 강의와 인터뷰 요청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 전화 통화를 마친 이 대표가 말했다.

“(이야기 중에)죄송해요. 이게 1인 연구소의 단점이라면 단점일까요(웃음)? 비서가 없으니까 저 혼자 스케줄 관리를 하는데, 일하는 동안 이렇게 전화 연락이 올 때는 제대로 응할 수 없어 난감할 때가 있어요. 다른 직원은 몰라도 비서 한 명은 채용하려고 알아보는 중입니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만 해도 직원이 10명 정도 됐다. 그런데 월급날이 다가오면 괴로움에 시달리곤 했다. 돈에 얽매이고 이는 곧 스트레스로 직결돼 비서 한 명 외에는 직원 채용 계획은 없다.

“내가 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에는 1인이 딱 적당한 것 같아요. 특히 1인으로 일하는 곳은 자기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자유롭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 속에서 지내야 합니다. 연구소를 출범하고 지금까지 출근 시간 오전 6시를 어겨 본 적이 없죠.”

그런데 최근 함께 일하는 식구가 생겼다.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중소상공인들을 돕기 위해 결성된 ‘상품진열협동조합’이다. 이 대표와 같은 1인 VMD연구소 네 곳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팀으로, 1인이 소화하기 어려운 연구나 작업을 함께한다. 이들과 함께 해마다 전국에 있는 재래시장의 점포 100개씩 고치는 게 목표다. 또 해외 진출을 꿈꾸는 소상공인들과의 작업도 함께하고 있다. 이들과는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해산, 다음 프로젝트가 생기면 다시 모인다.

“앞으로는 단순 상품 진열이 아닌 상품에 담겨 있는 마음과 진정성을 보여주는 가치 진열 전문가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팔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팔아야 하니까요.”
[1인 연구소 전성시대] 백화점 13년 근무…재래시장에 경험 접목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