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술·강연으로 ‘브랜드 파워’ 키워

‘유희와 생업’의 경계를 허문 1인 연구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1인 연구소는 소장 1명이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걸며 지적 분야를 연구해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종의 1인 창조 기업을 말한다.
[1인 연구소 전성시대] 1인 연구소 창업 희망자 급증
1997년에 불어 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등 두 번의 ‘강펀치’에 직장인들은 휘청거렸다. 회사는 더 이상 자신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커지고 평생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해지면서 1인 연구소를 희망하는 이들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자기 계발, 성공한 삶에 대한 ‘구루(Guru)’를 열망하던 시대적 트렌드와 맞물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이영권 세계화전략연구소장,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 올해 세상을 떠난 고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장 등이 1인 기업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은 대체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펼치기 위해’ 직장의 문을 나서 연구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과감한 도전과 성공적 안착은 많은 직장인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기 위해
1인 기업의 개념에 대한 씨앗은 세계적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가 약 30년 전에 제시한 PSF(Personal Service Firm)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그는 개인이 브랜드가 된다는 의미의 ‘브랜드 유(Brand U), 내가 주식회사다(Me Inc)’라는 이름으로 1인 창조 기업을 소개한 바 있다. 미래학자인 대니얼 핑크도 2000년대 초반, 조직 인간에 대비되는 개념의 프리 에이전트(Free Agent)가 시대의 큰 흐름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창업진흥원이 지난해 12월에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에 보고된 1인 창조 기업 수는 30여만 개이며 전국 사업체 조사와 통계청의 생멸 통계를 이용해 추정한 결과 표준 산업 대분류별상 1인 연구소가 속한 ‘전문 과학기술 서비스업’은 7만 개 정도로 나타났다. 표본조사를 실시한 2000개의 업종 가운데에서는 약 542개로 전체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이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활동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조사하기는 어렵다고 담당자들은 말했다. 김선화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구·개발업 및 전문 서비스업에 해당하는 1인 연구소 종사자의 수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기업 부설 연구소들이 거시경제나 글로벌한 이슈에 집중했다면 1인 연구소는 개인과 한 개인의 접한 사회가 관심사다. 1인 연구소를 운영하는 이들의 수익 모델은 대개 출판·기고·강연·컨설팅 등으로 집중된다. 대체로 저서를 통해 존재감을 나타낸 후 강연과 미디어 출연 등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하고 자신의 이름만으로 하나의 ‘브랜드’를 갖추게 되면 안정적으로 출판·강연·인터뷰 등을 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들의 삶의 방식과 철학, 지식적 깊이를 따르는 팬층이 두터워지게 되면 컨설팅과 후학 양성 등으로 파이를 넓히기도 한다.

1인 기업, 1인 연구소 소장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는 공병호경영연구소의 공병호 소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러한 수익 모델을 통해 “어지간한 상장사 CEO 만큼 돈을 번다”고 밝힌 바 있다. 주 수입원은 강연으로 한 해 평균 200~300여 건의 강의를 다니고 있는 공 소장은 2008년에는 무려 10억 원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으며 그의 주가는 여전히 높다. 강연과 함께 부지런한 집필 활동으로 정평이 자자한 그는 한 해 평균 5~6권의 책을 쓴다. 1996년부터 2013년 현재까지 그가 출간한 책은 이미 100여 권을 훌쩍 넘었다.

최근에는 연구 영역도 다양해졌다. 초창기에는 자기 계발, 재무 관리, 성공 등에 연구소의 ‘쏠림’ 현상이 있었다면 요즘에는 가족 관계, 사랑, 연애, 상품 판매, 은퇴 설계, 소자본 창업, 이미지 메이킹, 먹을거리 운동, 여자, 노화, 소셜 미디어와 스마트 워킹, 운동 처방 등 기성 연구소들이 다루지 않았던 분야까지 넓혔다. 그 형태 또한 기존에 혼자서 연구소를 운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 기관의 부설 기구로 들어가거나 비슷한 철학을 가진 이들과 함께 프로젝트 형식의 ‘따로 또 같이’ 전략을 펼치거나 협동조합 구성, 은퇴 및 창업 관련 공기관 등의 힘을 빌리는 등 매우 다양해졌다.


억대 연봉 벌기도…실패도 다수
대표적인 1인 기업 컨설턴트이자 ‘1인 기업 성공시대’의 저자이기도 한 백기락 크레벤 대표는 “상사의 지시가 아니라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고 돈을 받으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수 있는 명예로운 직업이기 때문에 1인 연구소를 하려는 이들의 문의가 매우 많다”고 말했다. 그는 “1인 연구소를 희망하는 이들은 대개 돈보다 ‘삶의 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좀 더 자기가 잘하는 일에 몰입하면서 가족과의 시간, 개인적인 여유를 갖기 위한 분들이 도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1인 연구소 또한 엄연히 말해 ‘소자본 창업’에 해당하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공병호 소장은 연구소를 열기 전 두 달 동안 중국·미국·대만·말레이시아를 돌아보면서 치열하게 시장조사를 했고 미국의 피터 드러커, 일본의 오마에 겐이치,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와 기 소르망 등을 벤치마킹하면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자녀경영연구소의 최효찬 소장 또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석·박사 학위 취득, 베스트셀러 만들기 등 무려 10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

백 대표는 “1인 연구소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무턱대고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조언한다”며 “준비 없이 안일한 마음으로 덜컥 시작했다가 6개월 안에 그만두고 이전 직장으로 돌아가거나 이전 직장보다 못한 곳으로 가는 이들을 너무나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을 다니지 않고 1인 연구소를 준비한다면 한 해에 최소 1000만 원의 투자비용이 필요한데, 연봉 3000만 원을 받던 직장인이 퇴사 후 이를 준비하게 되면 1년간 4000만 원을 잃게 되는 것이다. 월급쟁이를 하던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3개월만 고정 수입이 없어도 마음이 흔들리고 가족들도 힘들어 한다”고 했다. 연구소 창업 이후에도 사무실 임대료, IT 기기값, 도서 구입비, 주유비 등의 지출비를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1인 연구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톰 피터스도 “내 이름은 브랜드”라고 할 정도로 개인의 브랜드화를 강조했는데, 1인 연구소 소장들은 결국 1인 CEO인 만큼 남과 차별화할 수 있는 자신만의 핵심 가치를 경쟁력으로 무한 경쟁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치열한 열정과 엄격한 자기 관리 또한 반드시 필요한 자세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공병호 소장, 고 구본형 소장, 이영권 소장 등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으로 이미 정평이 자자하다. 또한 유명 1인 연구소 소장들 가운데에서는 연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술·담배를 끊거나 회식 자리를 거절하고 매우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등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는 이들이 많다.

이처럼 수입도 일정하지 않고 성공에 대한 보장도 없으며 철저한 자기 관리가 뒤따라야 하는 삶이지만 ‘일터와 놀이터의 경계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1인 연구소에 대한 인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하지만 백 대표는 “단지 성공한 몇 명의 사례에만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실패한 많은 사람들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했다. 그는 “1인 기업가이기 때문에 마케팅을 비롯해 CEO 마인드를 갖춰야 하며 자신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를 냉철하게 판단하기 위해선 컨설팅 업체와 전문가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닐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사업자 등록, 법인 등록 등을 하지 않으면 규모가 큰 프로젝트나 기업, 공공기관의 일을 맡기 힘들다”며 영세한 1인 연구소의 관계자들이 세금·법령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