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후반 승부수…공화당에 ‘빅딜’제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기 임기를 시작한 지 반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연초에 국정 과제로 제시한 대부분의 정책들이 의회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에 발목이 잡혀 있다. 게다가 전직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국가정보국(NSA)의 비밀 정보 수집을 폭로하고 국세청의 야당 성향 기업에 대한 표적 세무조사 의혹 등 대형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지지도가 크게 하락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NBC 방송이 7월 말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45%로 나왔다. 이는 2011년 후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경제 이슈를 꺼내 들었다. 7월 24일 일리노이 주 녹스대 연설에서 중산층 회복, 일자리 창출, 소득 격차 축소, 세제 개혁, 예산 삭감 중단, 이민 개혁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남은 임기 순간순간을 ‘다시 일하는 미국’을 만드는 데 매진하겠다”고 역설했다. 연초 제시한 최대 국정 과제인 중산층 복원을 강조했다. 그는 “기업들이 꾸준히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막대한 흑자를 내고 있음에도 과거 10년간 거의 모든 소득이 상위 1%에 집중됐다”며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소득이 2009년 이후 40%나 늘었지만 일반 국민의 평균 소득은 1999년보다 오히려 적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산층이 소비를 덜하면 기업은 고객을 잃고 부자들이 부를 독점하면 금융시장의 거품이 초래될 수 있다”며 “소득 격차 확대는 도덕적으로만 잘못된 게 아니라 경제에도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를 성장시킬 정책과 법안이 공화당의 반대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포석이 깔린 발언들이다.예산안 타협 무산되면 조기 레임덕 가능성
백악관은 오는 9월 30일까지 2014 회계연도 예산안을 공화당과 타협하지 못하거나 11월 초까지 연방 정부의 법정 부채 한도 상향 조정을 이끌어 내지 못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에 또 한 번 상처를 입게 된다.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7000명의 신규 채용 계획을 밝힌 아마존의 테네시 주 채터누가 물류센터를 찾았다. 그는 이곳에서 중산층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면서 공화당에 ‘그랜드 바겐’을 제안했다. 공화당의 숙원인 법인세 인하를 양보할 테니 그 대신 중산층 일자리 창출을 위한 예산 증액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2012년 대선 때 공약으로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법인세율을 현행 35%에서 28%로 내리고 제조업은 25%로 낮추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들은 즉각 환영했다. 하원의 세제개혁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도 공동성명을 내놓으며 “낡은 세법이 기업의 경쟁력과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을 대통령이 깨달았다는 사실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공화당 측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론 존슨 상원의원(위스콘신)은 “법인세를 좀 더 경쟁력 있게 개혁할 필요가 있다”며 협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 대변인은 “오바마의 그랜드 바겐은 양보가 아니다”며 “세제 개혁을 통해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재정수입을 새로운 경기 부양 자금으로 뽑아 쓰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승부수가 먹힐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워싱턴=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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