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돌아왔다. 지난 2월 19일 화상으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뮌헨 안보회의(MSC)에 참석한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다자 체제에서 ‘미국의 귀환’을 선언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다자 체제에서의 리더십을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던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 복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을 확인한 모임이었다.
이러한 다자 무대에서 미국이 강조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국제 사회의 공동 대응’이다. 즉, 중국과 러시아처럼 독재 정치가 우선되는 국가에 맞서 민주주의 세력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이 맞서던 과거의 냉전과 달리 민주 체제와 독재 체제로 또 다른 형태의 체제 경쟁이 막을 올리게 된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이제 눈을 한국 문제로 돌려보자. 재정·복지·노동·미시적 시장 정책 등의 분야에서 한국 정부의 정책은 집권당의 정치 이념에 의해 결정됐다. 하지만 국제 통상 정책 분야는 상대적으로 집권당의 정치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운영돼 왔다.
노무현 정부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됐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한국과 중국의 FTA가 협상돼 발효된 것이 그 예다. 집권당의 정치 이념보다 개방을 통한 경제 혁신, 해외 시장의 적극적 확보라는 국익을 위해 국제 통상 정책이 수립되고 운영됐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이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 기술 패권, 국제 질서 패권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국제 통상 정책의 기조 역시 불확실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미·중 무역 분쟁의 유탄을 피하는 것이 한국의 최우선 과제였다면 이제는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해 전쟁에 직접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이는 집권당의 정치 이념에 따라 친미 정권, 친중 정권과 같이 성향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국제 통상 정책의 방향이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집권당의 정치 이념에 상대적으로 독립적이었던 국제 통상 정책이 집권당의 이념에 따라 휘둘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국제 사회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정권의 성향이 진보여서 또는 보수여서 우리의 정책이 이렇게 결정될 수밖에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미국이나 중국에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 따른 정책 결정을 ‘약육강식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국제 정치 및 국제 경제 무대에서 양해를 구할 정도로 한국의 힘이 아직 크지 않다.
결국 한국 정부는 집권당의 정치 이념에 휘둘리지 않을 국제 통상 정책의 비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 이념을 넘어 한국의 역량을 이해하고 한국이 걸어온 발자취와 이룩한 성과에 바탕을 둔 ‘한국만의 가치’에 기반을 두고 국제 통상 정책의 비전을 가져야 한다.
1950년대 6·25전쟁 이후 가난했던 한국이었지만 이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한국을 빼놓고는 기술 발전·생산·공급을 논의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경제의 역량은 우수하다.
또한 짧은 역사 속에서 한국이 이룩한 산업화와 동시에 민주화 성과를 고려해 한국의 국제 통상 정책 비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비전은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경제 성장을 꿈꾸는 모든 개발도상국에도 희망을 줄 수 있는 비전이 돼야 할 것이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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