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최고가 되었나④-김경문 NC다이노스 감독

2008년 7월이었다. 당시 두산 베어스 선수단은 KIA와의 광주 원정 경기가 비로 취소된 뒤 다음 경기가 열리는 대전으로 막 이동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두산 김경문 감독은 1군과 2군을 오르내리던 투수 A선수를 불렀다. 얼마 전 데뷔 첫 승을 올리며 사기가 올랐다가 갑작스러운 2군행 통보를 받고 풀이 죽어 있던 선수였다. A선수가 달려오자 김 감독은 그를 한참동안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어 김 감독은 A선수의 어깨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섭섭하냐? 내 마음 알지? 실망하지 말고 2군에서 변화구 제구를 가다듬으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 8월에 돌아와 네가 우리 팀에 중요한 역할을 해 줘야 한다.” A선수는 각오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서운함은 눈 녹듯 사라졌다.

공격력을 강화하기 위해 최준석을 1군으로 올리려면 투수 가운데 A선수를 2군으로 내려 보낸 것은 누가 봐도 합당한 조치였다. 더욱이 그해 8월 베이징 올림픽 사령탑을 맡은 그는 올림픽을 불과 보름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였다. 그러나 김 감독은 자칫 소홀할 수 있었던 한 무명 선수에 대해서도 배려를 잊지 않았다.

김경문 감독은 선수 시절 ‘잡초’였다. 그래서 그런지 ‘잡초’를 발굴해 ‘꽃’을 피우는 능력이 남다르다. 2000년대 두산의 ‘화수분 야구’는 김 감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명 선수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정상급 선수로 키워냈다. 연습생 출신으로 방출의 설움까지 맛봤던 이종욱을 최고의 톱타자로 재탄생시켰고 역시 신고 선수였던 김현수를 최고 타자로 만들어 냈다. 2군에서도 설 자리가 없었던 고영민을 수비 범위가 넓은 ‘2익수(2루수인데도 우익수 지역까지 수비한다는 뜻)’로 거듭나게 했다.
<YONHAP PHOTO-0016> 김경문, NC 다이노스 초대 사령탑 선임

    (서울=연합뉴스)  NC 다이노스는 31일 김경문 전 두산 감독을 계약기간 3년, 총 14억원에 창단 초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2011.8.31

    photo@yna.co.kr/2011-09-01 00:16:53/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김경문, NC 다이노스 초대 사령탑 선임 (서울=연합뉴스) NC 다이노스는 31일 김경문 전 두산 감독을 계약기간 3년, 총 14억원에 창단 초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2011.8.31 photo@yna.co.kr/2011-09-01 00:16:53/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당근 주면서 채찍도 함께 들어

‘화수분’은 당근만 주면서 ‘화초’로 키우는 게 아니다. 김 감독은 언제나 ‘채찍’을 함께 든다. 두산은 2009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상대로 1패 뒤 3연승을 거두고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스승’ 김성근 감독이 이끌던 SK였다. 김경문 감독은 키 플레이어로 고영민을 꼽았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면 “공격이든 수비든 고영민이 잘 해줘야 한다”는 말을 자주했다.

김 감독의 기대대로 고영민은 감기 몸살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에도 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 연속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2차전이 끝난 뒤 김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시즌 때 마음고생이 많았던 선수가 잘해줘 나도 기분이 좋다”며 흐뭇해했다. 그러나 고영민이 감기 몸살을 이겨낸 ‘투혼’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얼굴이 바뀌었다. “감기 걸린 선수가 잘한 게 뭐 대단한 일입니까. 오히려 몸 관리를 제대로 못했으니 벌금 낼 일이죠. 어디가 부러지거나 찢어진 것도 아니고….” 김 감독의 난데없는 질타에 기자회견장 분위기가 싸해졌다.

A선수의 경우처럼 실의에 빠졌을 때 등을 두드려 주며 격려하다가도 고영민의 경우처럼 조금이라도 해이해지는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강하게 다그친다.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은 누구보다 단단한 김경문식 외유내강 리더십의 한 단면이다.

김 감독의 리더십이 주목 받은 것은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야구라는 종목 특성상 전승 우승은 쉽지 않다. 게다가 세계 정상급 팀들이 모두 나온 올림픽 야구에서 9전 전승은 기적에 가깝다. 그는 금메달을 딴 뒤 “지금 야구를 그만둬도 후회가 없다”며 감격해 했다.

김 감독은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나타냈다. 주목을 받은 것은 그의 ‘파격 야구’였다. 일본과의 준결승전 때 상대 선발투수가 왼손이었지만 1~4번 타자를 왼손으로 배치했다. 그런데 그게 통했다. 미국과의 경기 막판 1점 승부에서 김현수를 내세워 강공으로 밀어붙였다. 일본과의 경기에선 앞선 타석에서 홈런을 친 이대호에게 번트를 지시했다. 파격적인 작전은 시도할 때마다 딱딱 들어맞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야구인들은 결과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김 감독은 “모두가 번트를 예상하는 상황에서 번트를 댄다면 야구가 재미없지 않느냐. 승부를 걸어야 할 때는 과감하게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번트를 대야 하는 상황일 때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는 강공을 펴고 게임을 풀어야 한다. 물론 실패하면 모든 것은 감독 책임이다. 하지만 감독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생각”이라고 자신의 ‘야구 철학’을 밝혔다.

김 감독은 2011년 시즌 도중 ‘독이 든 성배‘를 마셨다. 시즌 초부터 이종욱·손시헌 등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과 마무리 임태훈 사건으로 팀이 균열되면서 팀 성적이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김 감독의 결단은 빨랐다. 시즌의 절반도 채 지나지 않은 6월 13일 중도 사퇴했다. 8시즌 중 6번이나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킨 명장이었지만 미련 없이 감독직을 버렸다.
[닮고 싶은 스타들의 리더십] 김경문 감독, ‘잡초’ 발굴해 ‘꽃’ 피우는 능력 탁월
“절대 고개 숙이지 말라”

‘생즉사, 사즉생’이라고 했던가. 모든 것을 던져버린 그에게 예상외로 빨리 기회가 찾아왔다. 두 달여 뒤인 8월 31일 신생 팀 NC다이노스에서 그에게 초대 감독 지휘봉을 맡긴 것이다.

NC의 2013년 시즌 참여 여부를 두고 2012년 초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NC의 2013년 1군 참여를 가장 강도 높게 반대한 이는 당시 롯데 자이언츠 장병수 사장이다. 그는 “신생팀 NC가 준비 없이 1군 무대에 들어오면 약한 전력 때문에 프로 야구 수준이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NC는 우여곡절 끝에 2013년 시즌에 참여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NC는 개막 후 7연패 늪에 빠졌다. 하지만 한화가 프로야구 개막 후 최다 연패 신기록인 13연패에 빠지면서 ‘운 좋게도’ NC의 부진이 가려졌다.

경험이 적은 선수가 대다수인 NC는 후반 역전패의 위기에 몰리면 얼굴빛이 변하고 당황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런 선수들을 끝까지 믿었다. 그는 “위기를 헤쳐 나가는 것도 큰 경험이 된다”며 기를 살려줬다. “마운드에서 난타를 당해도, 타석에서 기회를 날리고 삼진을 당해도 절대 고개 숙이지 말라”고 강조했다.

김 감독 특유의 ‘믿음의 야구’, ‘뚝심의 리더십’은 서서히 빛을 발했다. 4월 11일 LG를 4-1로 누르고 역사적인 팀 창단 첫 승을 거두더니 4월 13~14일 SK를 상대로 창단 첫 2연승을 올렸다. 이어 4월 30일~5월 2일에는 LG와의 3연전을 싹쓸이하며 창단 첫 스윕(싹쓸이)까지 달성했다. 5월 22~25일에는 SK와 KIA를 상대로 첫 4연승을 거두기도 했다. 5월 12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팀 창단 이후 최다 득점이자 올 시즌 9개 팀 최다 득점인 17점을 뽑아내는 가공할만한 파워를 분출했다.

NC는 6월 19일 현재 20승 3무 34패, 승률 3할 7푼으로 9개팀 중 8위를 달리고 있다. 애초 3할 달성도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성적이다. 4월 한 달간 22경기에서 고작 4승(1무 17패)을 거뒀지만 5월에는 11승 1무 11패로 5할 승률을 달성했다. 엄청난 ‘폭풍 성장’이다. 이제 NC가 올 시즌 최하위를 할 것이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어떤 팀과 만나도 자신이 있고 그 어느 팀도 NC를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김 감독의 리더십이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는 요즘이다.




김동훈 스포츠 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