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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한류 전도사' CJ] 식품·영화·유통, ‘글로벌 꿈’무너지나
식품·외식·유통 등 비제조업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글로벌화를 주도하고 있는 CJ그룹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늪에 빠졌다. 강도 높게 이어지는 검찰 조사로 각종 의혹이 불거져 나오면서 CJ그룹을 숨 가쁘게 압박하고 있다. 검찰의 칼날은 이재현 회장을 직접 겨누고 있다. 이 회장은 해외 진출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한국 식문화의 글로벌화에 전력을 쏟아 온 인물이다. 이번 검찰 수사로 이 회장의 꿈이 좌초될 것인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 CJ그룹의 글로벌화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한국 경제를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시킨 주역은 제조업이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 등의 제조업체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면서 한국 경제는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 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식품업·외식업·유통업·엔터테인먼트업 등 비제조업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다. 한국보다 한 단계 높은 경제 대국인 미국·독일·일본 등의 선진국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비제조업에서도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제2의 도약을 위해서는 비제조업의 글로벌화가 절실한 과제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식품·유통·문화 기업으로 알려진 CJ그룹의 강력한 해외 진출 전략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CJ그룹의 글로벌화는 단순한 구호 차원이 아니다.
[위기에 빠진 '한류 전도사' CJ] 식품·영화·유통, ‘글로벌 꿈’무너지나
21개국 126개 해외 법인 운영

CJ그룹은 현재 21개국에 진출해 126개 해외 법인을 운영 중이다. 해외 사무소와 영화관, 베이커리 점포 등을 합치면 그 수가 200개를 훌쩍 넘는다. CJ그룹의 4대 사업군은 ▷식품 및 식품 서비스 ▷바이오 및 생명공학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물류 및 신유통 등이다. 이렇게 4개 사업군이 모두 진출해 있는 국가는 중국·미국·일본·베트남 등 4개국이다. ‘제2의 CJ’인 중국과 ‘제3의 CJ’인 베트남의 비중은 ‘CJ글로벌’ 사업의 80%에 달한다. 그만큼 CJ그룹이 아시아 지역을 향후 주요 신시장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진출 국가마다 지역적 특색을 고려했다. 바이오 및 소재, 생명공학 생산 공장 인프라는 중국·동남아·미국 등 대륙에 깔았고 뚜레쥬르와 비비고 등 외식 사업은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집중 노크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전체적으로 고루 분포돼 있는데 특히 영화관은 중국과 동남아에 많고 음악·방송·영화 등 콘텐츠 사업은 글로벌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일본에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물류 사업 강화를 꾀하는 CJ대한통운이 기존 국가 외에 인도·중동에 새로 진출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CJ CGV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동유럽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유럽 진출 교두보인 터키에 CJ오쇼핑의 홈쇼핑 사업과 CJ헬로비전의 케이블 방송 사업이 진출했다. 국내 최대 헬스&뷰티 스토어로 발돋움한 CJ올리브영도 해외 진출을 선언하며 조만간 상하이에 1호점을 열 계획이다. CJ그룹의 지난해 해외 매출액은 7조9000여억 원이다. 전체 매출액(약 26조 원)의 30% 정도다. CJ그룹은 올해 해외 사업에 7000억 원을 투자한 데 이어 올해 9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올해 그룹 매출 38조 원에서 해외 매출 비중 50%를 달성해 글로벌화의 기반을 완성한다는 복안이었다. 2020년 그룹 매출 100조 원, 영업이익 10조 원, 글로벌 매출 비중 70%를 달성해 ‘그레이트 CJ’를 완성한다는 것이었다.

CJ그룹이 본격적인 글로벌 경영에 나선 것은 1988년이다. 인도네시아 파수루안에 라이신 생산 법인을 설립하면서부터다. 2000년 초까지 글로벌 사업은 사료와 바이오로 한정됐다. CJ그룹은 2000년대 들어 해외 진출 관점이 달라진다. 미래 성장 기반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쇼핑·푸드빌·CGV 등 전 계열사가 해외 진출에 나섰다. 물론 중국과 동남아 공략이 우선됐다. 2005년 식품 회사 애니천을 인수하며 미국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같은 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뚜레쥬르 1호점을 열었다. 2006년은 CJ그룹이 ‘글로벌 도약의 원년’으로 삼았던 해다. CJ중국본사를 설립했고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도 해외로 진출했다. 2009년부터 한식 세계화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첫 단계로 글로벌 시장에 맞는 스코빌 단위(SHU)를 이용해 고추장의 매운 맛을 등급화했다. 2010년 5월 한식 브랜드 비비고를 론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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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조업 글로벌화에 총력

CJ그룹이 비제조업 분야에서 해외 진출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이재현 그룹 회장의 강력한 의지 덕분이다. 사실 자동차·가전 같은 제조업은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면서 글로벌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음식과 영화 등의 문화 산업은 그간의 노하우가 없기에 더 어렵다. 더구나 문화는 국가마다 다르다. 전자제품처럼 별다른 표준이 없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오너 경영인의 강한 의지가 없다면 글로벌화는 불가능하다. 국내 최대 종합 식품 회사가 된 CJ가 기존 기득권에 기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쉬운 길 대신 지난 10여 년간 때론 적자를 보며 해외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이 회장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식문화 수출에 대한 이 회장의 애정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 음식도 일본이나 태국 음식처럼 세계화될 수 있으며 사업적 차원을 떠나서라도 한식을 세계화하는 것이 국내 최대 식품 기업으로 출발한 CJ그룹의 의무”라고 말해 왔다. 이 회장이 글로벌화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은 “문화 산업을 글로벌화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이 회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이병철 선대 회장이 해 왔던 ‘문화 없이는 나라도 없다’라는 말을 자주 인용하며 “역사적으로 경제 강국의 전제 조건은 문화 강국”이라면서 “우리나라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문화 상품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고 한다. 일종의 ‘문화 보국론’인 셈이다. 이 회장은 “그룹의 창업 이념인 사업보국(기업 활동을 통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을 문화 콘텐츠 산업으로 이뤄야 한다”며 경영진 회의는 물론 사석에서도 거듭 강조해 왔다. ‘사업보국’은 선대 회장이 금과옥조로 여긴 가치다.

이 회장의 공(功)과 실(失)은 객관적으로 다뤄져야 하겠지만 한편에선 한창 글로벌 공격 경영에 탄력을 받은 CJ그룹이 이번 검찰 수사로 힘겹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당장 이 회장의 해외 일정 및 계획했던 주요 계약 건의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 회장은 이달 말부터 예정됐던 터키·중국·동남아·미국 등 해외 출장을 모두 취소했다. 하반기 전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 해외에서 개최하려던 ‘글로벌 콘퍼런스’ 일정도 뒤로 미뤘다고 회사 관계자는 밝혔다. CJ는 그룹 창립 60주년을 맞는 올해를 ‘글로벌 CJ’를 완성하는 원년으로 삼고 중국과 베트남에 이어 다른 해외 국가에 이른바 ‘제4의 CJ’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회장의 현장 경영 및 해당국 주요 인사들과의 면담이 깨지면서 사업적 손실은 물론 기업 신뢰도 실추가 불가피해졌다. 글로벌 진출 위축은 ‘한류’ 확산에도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우려된다. 재계 관계자는 “CJ그룹은 비빔밥 등 우리의 음식과 K팝 등 문화 콘텐츠를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라며 “기업 외적인 이유로 해외 사업이 지장을 받는다는 것은 ‘한류’ 확산에도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