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본사를 외국으로 이전해 버리면 어떻게 할 건가?”

기업 관련 규제 및 법인세율, 반기업 정서 등이 쟁점으로 부상할 때마다 기업을 옹호하는 이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하지만 반대쪽에서는 삼성의 국내시장 의존도와 한국인 인력 충원 필요성 등을 들어 불가능한 가정이라고 일축한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1899년 만들어져 이탈리아 국민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자동차 제조사 피아트가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크라이슬러를 2009년 인수하면서부터 부상하고 있는 피아트의 본사 이전설은 최근 들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5월 16일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최고경영자(CEO)가 피아트를 뉴욕 증시에 상장하고 본사까지 이전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르치오네 CEO는 “자금 조달 조건을 우선적으로 본사 이전 지역을 결정할 것이며 뉴욕이 후보지 중 가장 위에 올라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61개국에서 22만 명을 고용해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서 위상을 확보하고 있는 피아트가 이탈리아를 떠날 계획을 세운 것은 재정 위기 이후 유럽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매출 840억 유로 중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4%에 불과했다. 마르치오네가 CEO를 맡던 2004년만 해도 피아트 전체 매출의 90% 이상이 유럽 시장에서 나왔다. 그나마도 계속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북미에서 4억 유로, 남미에서 1억2700만 유로의 영업이익을 내는 동안 유럽에서는 1억1100만 유로의 손실을 봐 기업 전체의 수익성을 깎아먹고 있다.
<YONHAP PHOTO-0232> A Fiat 500L automobile moves along the production line at the new Fiat Automobili Srbija facility in Kragujevac, Serbia, on Monday, April 16, 2012. Fiat's facility in Serbia is a joint venture with the Serbian government, created when the Italian carmaker took over the now defunct Zastava Automobili in Kragujevac, central Serbia, to become a 67 percent owner of Fiat Automobili Srbija. Photographer: Oliver Bunic/Bloomberg
/2012-04-17 08:08:45/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 Fiat 500L automobile moves along the production line at the new Fiat Automobili Srbija facility in Kragujevac, Serbia, on Monday, April 16, 2012. Fiat's facility in Serbia is a joint venture with the Serbian government, created when the Italian carmaker took over the now defunct Zastava Automobili in Kragujevac, central Serbia, to become a 67 percent owner of Fiat Automobili Srbija. Photographer: Oliver Bunic/Bloomberg /2012-04-17 08:08:45/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총매출 중 유럽 비중 24% 불과

생산공정만 놓고 봐도 회사를 이탈리아 바깥으로 옮기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피아트 자체 집계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비용은 폴란드의 3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장을 주요 시장인 아시아나 남미로 옮기면 생산비용은 물론 물류비까지 절감할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피아트가 이탈리아 내 공장을 한 곳 폐쇄하면 생산 효율이 55%, 두 곳을 폐쇄하면 66%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피아트는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고 일부 공장을 폐쇄하더라도 이탈리아 내 생산 라인은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페라리와 마세라티 등 고급차 생산을 위해 높은 기술력을 갖춘 엔지니어가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정치권과 노조는 크게 동요하고 있다. 2년 이상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실업률이 20% 이상으로 치솟는 등 경제 상황이 최악인 가운데 114년간 이탈리아에 자리 잡아 온 대기업이 이탈리아를 떠나겠다고 밝힌 마당이기 때문이다. 카를로 아린가 이탈리아 노동부 차관은 “피아트의 이전 추진은 당연히 좋은 소식이 아니다”며 “이번 결정으로 피아트 스스로의 장래도 위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피아트 붙잡기에 나섰다.

기업의 입지는 현실적인 이득과 미래 성장 가능성에 따라 정해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직원 구성도 2011년 이미 외국인 인력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한국 내 경영 환경이 악화되거나 아시아 시장이 장기적인 위축을 겪는다면 본사 이전을 고민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말이다. 기업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단순히 친재벌적인 수사로만 치부하기 힘든 이유다.


노경목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