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정책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부당 하도급 거래가 적발된 최고경영자(CEO)를 고발하는 등 제재가 강화된다. 부당 단가 인하 등으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비용을 빌려주기로 했다. 국회도 ‘갑을 관계’의 부당함을 없애겠다며 경제 민주화 법안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6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정거래위원회·기획재정부·중소기업청 등 10개 부처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부당 단가 인하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부당 단가 인하 근절을 위해 정부가 종합 대책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부당 단가 인하는 중소기업의 수익성 악화와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확대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퇴출과 일자리 축소로 이어져 내수 기반을 약화시킨다”고 부당 단가 인하의 폐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부당 단가 인하에 대한 감시와 제재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부당 단가 인하에 개입한 CEO를 고발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법적으로 법인뿐만 아니라 개인도 고발할 수 있지만 그동안 공정위가 부당 단가 인하를 이유로 개인을 고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노 위원장은 “그동안 해당 기업 CEO를 고발하지 않아 공정위가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앞으로 CEO의 개입이 입증되면 예외 없이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금도 개인을 고발할 수 있지만 그동안 ‘개인을 고발하는 것은 과하다’는 판단에 따라 실제 개인을 고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설명했다. 개인에 대한 검찰 고발은 하도급 업체에 대한 보복 조치 등 위법성이 큰 사안에서만 이뤄져 왔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부당단가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30613
노대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부당단가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30613
부당 단가 인하 개입 CEO 고발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부당 단가 행위에 대한 감시·예방 시스템도 강화하기로 했다. 유통업 등 경기 민감 업종, 대·중소기업 간 영업이익률 격차가 큰 업종을 집중적으로 감시할 계획이다. 하반기 중 하도급법을 개정해 부당 특약을 금지하는 한편 적발되면 엄중 조치하기로 했다. 부당 특약은 ‘갑을 관계’를 악용해 부당 단가 인하를 유도하는 수단이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을은 대금의 증액을 요구할 수 없음을 서약한다’, ‘을이 이 계약 이후 개발하는 모든 소프트웨어(SW)의 전 세계적 사용권을 갑에게 부여한다’는 식이다. 납품 단가 결정이나 변경 관련 거래 기록은 기업의 관리 의무를 강화했다. 사전에 부당 단가 인하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공공 부문의 부당 단가 인하도 근절하기로 했다. 우선 상용 소프트웨어 유지 관리비를 현재 소프트웨어 가격의 8%에서 2017년까지 15%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소프트웨어는 창조 경제의 핵심 산업인 데도 제값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공 기관 발주에서 원사업자는 소프트웨어 유지 관리 보수를 도입가의 8% 수준으로 받는다. 하지만 실제 유지 관리 업무를 하는 하도급 업체는 2~3%만 받는 게 현실이다.

재계는 잇단 경제 민주화 정책에 숨죽이고 있다. 국회는 지난 4월 ‘경제 민주화 1호법’을 처리했다. 부당 단가 인하 등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안이었다. 이달 임시국회에서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 금융회사의 지배 구조법 등 경제 민주화 법안이 본격적인 심사를 거치게 된다.



주용석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