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아! 나의 아버지] '존경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하여
나는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다. TV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의아해하는 편이다. 영어에서 인간을 뜻하는 단어 ‘퍼슨(person)’의 어원이 연극 무대에서의 가면이듯이 사람은 사회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가까운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이 있고 이 두 가지가 같은 경우는 내가 아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 위인전이나 대중 매체 혹은 강연을 통해 만나게 된,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존경’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 함께 살면서 같이 목욕하고 잠잘 때 코를 고는 모습을 보며 칭찬은 물론 매를 들 수 있는 아버지에게는 왠지 ‘존경’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때때로 나라는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이런 일이나 행동을 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내 모습이 어디서 많이 봤던 것 같은 기시감(旣視感)을 느끼기도 한다. 때론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새삼 놀라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문구점에서 원고지를 사오라는 단골 심부름을 시켰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며 이 원고지에 싸구려 모나미 볼펜으로 신문사에 보낼 원고를 쓰곤 했다. 일기 쓰는 것도 싫었을 만큼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던 어린 내게도 누런 원고지는 매우 친숙한 것이었다. 어느새 나는 일간지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책도 썼다. 예전에 지켜봤던 아버지의 ‘원고 마감’은 이제 내게도 적용되는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30년 넘게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쳤던 아버지는 이제 80세에 가까운 노인이지만 가끔씩 외부 세미나나 특강을 하고 있다. 나는 아버지가 교실에서 강의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막연하게 누군가를 가르치고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업 위기관리 컨설팅을 업(業)으로 삼으며 어느새 나는 컨설팅 방법론으로 보고서보다 고객과 함께 워크숍을 디자인하고 진행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아버지는 미술 감상을 유달리 좋아한다. 특히 현대미술과 서예 작품을 즐기는 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날 데리고 인사동 화랑이나 각종 미술 전시회에 자주 가곤 했다. 2~3m 떨어져 작품을 감상하다가 안경을 벗고 다가가 작품 해설을 읽던 모습이 기억난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여행을 가면 꼭 미술관을 찾는데, 40대 중반에 노안이 온 나는 작품과 작가 이름을 읽을 때에는 안경을 벗어야 하는 옛날 추억 속 아버지 모습이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명절이나 주말이 되면 부모를 찾아뵙는다. 기쁨보다는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가족이란 고마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부담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내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고 나와 가장 비슷하면서 동시에 그 영향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존재…. 자신과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자기 옆에 서 있는 아버지에 대해 ‘존경’이건, ‘사랑’이건, ‘감사’건 뭔가 한두 단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복잡다단한 감정이 오래 숙성돼 ‘인정’으로 표현되면서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아버지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가끔 아버지는 신문에 실린 내 칼럼을 보고 감상평을 해 준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칼럼에 대해서는 어떤 평이 들려올지 궁금하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