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시장은 국내 농산물 유통의 53%를 차지한다. 대형 마트가 수년간 대항마로 자라났지만 그래도 시장가격을 주도하는 것은 도매시장이다. 장바구니 물가에 주름을 안기는 농산물 값을 잡으려면 도매시장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이 여기서 나온다. 정부가 30년 만에 농산물 도매시장의 ‘대수술’에 나섰다. 경매 위주의 거래 구조에 치우쳐 가격 변동성을 높인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정부가 5월 27일 발표한 ‘농산물 유통 구조 개선 종합 대책’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생산자는 제값을 받지 못하고 소비자는 비싼 값에 사야 하는 유통 구조의 부조리를 바꾸겠다는 취지다. 우선 도매시장 가격 결정 구조를 경매 위주에서 정가·수의매매 거래 비중을 높이는 등 다양화하기로 했다.

여인홍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이날 세종청사 브리핑에서 “경매는 거래 주체 간 가격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장점이 있지만 가격 변동성을 높이는 단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해 작황이 좋아도 당일 도매시장에 물량이 적게 들어오면 가격이 급등하는 게 경매 방식의 한계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경매 대신 정가·수의매매(가격이나 상대를 정해 거래하는 방법) 거래 비중을 높여 가격 변동을 줄일 방침이다.

지난해에도 이 같은 대책을 추진했지만 참가자들이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큰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이번엔 인센티브를 크게 강화해 정가·수의 매매 비중을 8.9%(2012년)에서 20%(2016년)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정가·수의매매에 참여한 도매시장 법인이나 중도매인에게 올해 정책자금 700억 원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도매시장 참가자들의 손발을 풀어 경쟁도 강화하기로 했다. 오는 11월부터 도매시장 법인이 정가·수의매매를 전제로 농산물을 직접 사거나 팔 수 있게 된다. 겸영 사업의 범위도 가공·저장·물류 전반으로 넓어진다. 이를 통해 도매시장 법인이 산지 유통인이나 대형 유통 업체와 경쟁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중도매인들이 복수의 도매시장 법인과 거래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도매시장 간 경쟁을 붙이기 위해서다. 여 차관은 “과거엔 단순히 유통 경로를 축소하고자 했다면 이번엔 다양한 판로 간 경쟁을 붙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이를 위해선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30여 년간 유지됐던 도매시장 관행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예컨대 중도매인이 특정 도매시장 법인에 소속됐던 소속 제도가 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중도매인이 다양한 도매시장 법인과 거래를 트지 못하고 있다.
<YONHAP PHOTO-1192> 봄내음 가득한 채소시장   

    (대전=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25일 대전 노은농수산물 도매시장 채소판매점에 상인들이 봄내음 가득한 채소를 쌓아 놓고 손님을 맞고 있다. 2013.4.25

    jobo@yna.co.kr/2013-04-25 13:52:06/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봄내음 가득한 채소시장 (대전=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25일 대전 노은농수산물 도매시장 채소판매점에 상인들이 봄내음 가득한 채소를 쌓아 놓고 손님을 맞고 있다. 2013.4.25 jobo@yna.co.kr/2013-04-25 13:52:06/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정부,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 발표

제도 개선이 영세 농업인이나 유통 업체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정가·수의매매는 기존 경매 방식보다 투명성이 떨어지는 만큼 일부 ‘큰손’들의 담합이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됐다. 도매시장에 반입할 수 있는 ‘최소 출하 단위’를 설정하기로 한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금까지는 농업인 한 명이 아무리 적은 물량을 갖고 와도 도매시장이 거래를 붙여주는 게 의무화돼 있었다. 정부는 다양한 유통 생태계도 육성할 계획이다.

산지와 소비지를 직접 연결하는 5개 권역별 도매물류센터를 설립, 농협 도매 조직 중심의 단순한 유통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농산물 직거래는 유형별로 맞춤형 지원책을 내놓는다. 직매장을 운영하는 생산자 단체에는 포장 작업 등을 위한 공동 작업장과 실내장식 비용 등을 지원한다. 생산자가 정기적으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는 ‘꾸러미 사업’도 활성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농산물 유통비용 10~15%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식탁 물가에 부담을 줬던 배추·무·마늘 등의 가격 변동 폭을 2017년까지 현재의 절반인 10%로 줄인다는 구상이다.



김유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