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에 이어 올해 개봉한 ‘베를린’이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모두 CJ E&M이 투자한 영화다. 이를 두고 영화계에서는 영화계의 빅 파워 CJ가 스크린을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계에 미치는 CJ의 막강한 힘의 원천과 이미경 부회장의 국내외 파워 인맥을 알아본다.
[관객 1억 시대 연 ‘한국 영화의 힘’ CJ] 톱10 중 4편이 투자 작품… 투명한 시스템 구축 ‘앞장’
[관객 1억 시대 연 ‘한국 영화의 힘’ CJ] 톱10 중 4편이 투자 작품… 투명한 시스템 구축 ‘앞장’
한국 영화가 1억 관객을 동원하며 전성기를 맞고 있다. 2012년 한 해 동안 한국 영화를 찾은 관객 수는 1억1461만2900명으로 전년 대비 38.3% 증가했다. 국민 1인당 연평균 극장 영화 관람 횟수 또한 3.83회로 200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중 한국 영화 관람 횟수는 2.24회로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관객들이 늘면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도 줄을 이었다. 한 해에 두세 편 나오기 어렵다던 400만 이상 관객 동원 영화가 지난해에만 9편 등장했다.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1000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도 2편이다. 한국 영화의 흥행이 전체 영화 시장을 이끌었다는 방증이다.

바야흐로 ‘한국 영화 전성시대’다. 올해에도 한국 영화 강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올 초 극장에 걸린 ‘베를린’과 ‘7번방의 선물’이 2월 18일 현재 각각 600만, 9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중이다.

이런 한국 영화도 2000년대 중·후반 침체기를 맞았다. 영화계는 이 시기를 반성과 내실의 시기로 삼았다. ‘기획·제작·투자 역량’을 강화하고 영화 산업 전반의 프로세스를 혁신했다. 그 결과 참신한 소재와 다양한 장르의 웰 메이드 상업 영화들이 탄생했다. 영화계 관계자는 “최근 만들어지는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 시장을 염두에 두고 관객의 취향과 트렌드를 철저하게 분석, 대응한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전했다.

이런 토대에서 자양분을 얻은 신진 감독들의 등장도 한국 영화에 힘을 보탰다. 신진 감독들의 활약은 지난해 특히 두드러졌다.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 ‘시체가 돌아왔다’의 우선호 감독, ‘나의 PS 파트너’의 변성현 감독 등이 그들이다.

한국 영화의 이 같은 성장에 CJ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지난해에만 한국 영화 흥행 톱 10 중 4편이 CJ E&M이 투자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CJ E&M이 투자해 대박을 친 영화는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 ‘해운대’ 등을 비롯해 ‘써니’, ‘화려한 휴가’, ‘늑대소년’ 등이다. 이들 영화는 장르와 주제도 다양해 CJ E&M이 투자한 영화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영화계에서 CJ E&M의 힘은 제작 편수와 관객 점유율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12년 CJ E&M은 총 27편으로 가장 많은 영화를 극장에 걸었다. 이를 통해 약 306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 영화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7%에 이른다. 동원 관객 수만 약 4214만 명에 이른다.

2013년에도 CJ E&M의 1위 수성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CJ E&M은 현재 9편의 영화를 통해 약 328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누적 관객은 약 453만 명으로 전체 관객 중 37.8%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전체 관객 중 점유율 38%

CJ E&M은 영화계의 질적인 성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게 투명한 회계 관리 시스템 도입이다.

과거 영화 시장은 대부분의 회계가 간이영수증 등이 통용되는 ‘충무로식 회계 방식’이 관례였다. 큰 규모의 돈이 정확한 쓰임을 알 수 없는 채 비용으로 처리됐고 비용은 고스란히 제작비에 얹어지곤 했다. 촬영에 지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단체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풍문이 나돌 정도였다.

CJ가 영화판에 뛰어든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CJ는 ‘영화 제작 예산 운영 가이드’를 도입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예산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수익의 분배 및 정산’ 에 대한 시스템을 투명하게 한 것도 CJ의 힘이 컸다. 시스템 도입 후 영화계에는 ‘종영 3개월 이내 부금 정산’ 등의 룰이 자리 잡았다.

투자된 자금을 투명하게 운용하고 이를 통해 생긴 수익이 다시 영화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안정적인 자금원은 다양한 영화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된다.

2007년 개봉한 ‘어거스트 러쉬’는 기획·개발 단계부터 할리우드와 공조한 대표적인 사례다. ‘어거스트 러쉬’는 워너브러더스와 CJ가 손잡고 만든 첫 한미 합작 영화다. CJ가 투자한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2009년 칸 영화제에서 경쟁 부문에 동시에 진출하기도 했다.

CJ의 저력은 특히 제작비 100억 원 이상의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도드라진다. 물을 소재로 한 첫 한국 재난 블록버스터 ‘해운대’,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을 진일보시킨 ‘타워’, 한국형 첩보 액션 영화의 새 장을 연 ‘베를린’ 등은 모두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들었다.

현재 극장가에서 인기몰이 중인 ‘베를린’은 기획의 중요성을 증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베를린’은 2008년 시나리오 기획 단계부터 CJ E&M이 류승완 감독과 협의를 거쳐 탄생한 작품이다. ‘첩보 액션’이라는 미개척 장르인 데다 제작비만 100억 원 가까이 드는 대작이라 위험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CJ E&M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전 과정에 참여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원안부터 시나리오는 물론 제작까지 참여한 ‘CJ E&M의 기획 영화’다. 기획팀이 20페이지의 트리트먼트 제작 후 이를 바탕으로 작가가 시나리오를 각색했고 그런 다음 감독을 선임했다. 여기에 전문 제작사를 붙였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콘텐츠의 기획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례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투자사가 기획부터 관여한 첫 사례이기 때문에 적지 않은 구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플랫폼 회사인 CJ CGV를 통해 스크린을 장악해 인위적으로 관객 1000만 영화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CJ CGV가 CJ E&M에서 투자한 영화에 우선권을 줌으로써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관객 1억 시대 연 ‘한국 영화의 힘’ CJ] 톱10 중 4편이 투자 작품… 투명한 시스템 구축 ‘앞장’
케이블 TV 자금이 힘의 원천

이에 대해 CJ E&M 이창현 부장은 “지난해 그런 의혹이 제기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CJ CGV가 같은 CJ 계열사이지만 별도 법인으로 매출 극대화를 위해 다른 계열사의 사정을 봐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부장은 대표적인 사례로 2009년 개봉한 영화 ‘전우치’를 들었다. ‘전우치’는 지난해 ‘도둑들’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CJ E&M은 2006년 최동훈 감독의 ‘타짜’에 투자해 6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성공한 경험이 있었다. 여세를 몰아 만든 작품 ‘전우치’에 큰 기대를 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우치’는 개봉 1주일 만에 ‘아바타’에 밀려 스크린을 잡지 못해 고생했다. CJ CGV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 부장은 “영화 담당 기자들도 그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축적된 실력의 최종 목적지는 해외다. CJ E&M 이미경 부회장은 “우수한 한국의 대중문화를 세계에 퍼뜨려 ‘한류’를 그냥 흘러가는 트렌드가 아니라 세계의 문화로 만들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말에 부합하듯 CJ E&M은 해외시장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영화는 예측이 어렵고 기복이 심해 ‘흥행 비즈니스’라는 속성을 안고 있다. 영화의 이 같은 위험을 최소화하는데 중요한 게 해외시장이다. 국내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한 ‘7광구’나 ‘마이웨이’가 해외시장에서 보여준 성과가 이를 대변한다. ‘7광구’는 중국에서 348만 달러를, ‘마이웨이’는 일본에서 4억 엔의 수익을 거두며 해외시장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CJ E&M은 한국 영화의 해외 수출 및 배급은 물론 한국 감독과 배우들의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봉준호 감독과 김지운 감독이 각각 ‘설국열차’와 ‘라스트 스탠드’를 통해 해외에 진출했고 배우 이병헌은 ‘지.아이.조2’, 보아는 ‘COBU’, 정지훈은 ‘닌자 어쌔신’ 등을 통해 해외에 얼굴을 알렸다.

이재한 감독의 ‘사요나라 이츠카’, 오기환 감독의 ‘선물’ 등은 해외 현지 투자로 만들어졌다. 이와 함께 CJ E&M은 한국 영화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2012년에 만든 영화 ‘I AM’은 SM타운 아티스트들의 성장기를 영화 소재로 다룸으로써 케이팝 케이필름(K-Film)의 결합을 통해 해외 판매에 큰 실적을 거뒀다.

엔터테인먼트 부문 한경비즈니스 베스트 애널리스트인 한승호 신영증권 이사는 “CJ E&M은 케이블 TV에서 나오는 우량한 현금 흐름을 바탕으로 다양한 영화에 투자할 수 있다”며, ‘돈의 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한국 영화산업을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