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생생 통신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국정을 이끌 주역들의 면면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난 1월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던 김용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전 헌법재판소장)이 부동산 투기, 아들 병역면제 등에 발목을 잡혀 5일 만에 자진 사퇴하면서 인선이 꼬여버린 탓이다.

게다가 박 당선인의 국정 철학을 담은 정부 조직 개편안도 여야 간 이견으로 처리가 계속 미뤄져 추가 인선 작업 역시 덩달아 지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박 당선인의 임기가 2월 25일 시작되더라도 사실상 이명박 정부의 각료들로 임시 내각을 꾸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 당선인이 김 위원장을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한 것은 지난 1월 24일. 그러나 부동산 투기와 증여세 탈루, 아들 병역면제 등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오면서 5일 만에 스스로 후보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소아마비를 딛고 최연소 판사에 임용된 후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에 올랐던 입지전적인 경력도 소용없었다.

이후 박 당선인 측은 부랴부랴 김 위원장을 대체할 후보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설마 김 위원장이 낙마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던 박 당선인 측은 이번엔 청와대 및 정부 측의 협조를 받아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김 위원장의 후임자는 설 연휴 직전인 지난 2월 8일 발표됐다.

김 위원장의 자진 사퇴 후 열흘 만이다. 현행법상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 청문 요청이 오면 국회에서 15일 내 청문회를 실시하고 이후 3일 내 보고서를 채택해 본회의 상정·의결 절차를 밟는다. 여야는 조속한 처리를 위해 2월 20~21일 청문회를 실시한 뒤 2월 26일 본회의에서 표결하기로 합의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외교국방통일분과 국정과제토론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3.2.13 강은구 기자 egkang@......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외교국방통일분과 국정과제토론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3.2.13 강은구 기자 egkang@......
정부 조직 개편안 처리 지연도 겹쳐

인수위가 현재 15부2처18청에서 17부3처17청으로 정부 조직을 개편하겠다는 방안을 확정한 것은 지난 1월 15일. 한 달이 넘었지만 관련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에 묶여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장관 인선이 줄줄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박 당선인 측은 정부 조직 개편과 관계없는 국방부·외교부·법무부·교육부·안전행정부·문화관광체육부 등 6개 부처의 장관을 지명했지만 나머지 부처에 대해서는 개정안 통과 이후로 미뤘다.

그러나 여야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당초 시한인 2월 14일을 훌쩍 넘겼고 2차 예정일인 2월 18일도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핵심 쟁점은 방송진흥 부문을 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떼어내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는 문제다. 민주당은 이렇게 되면 미래부가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고 방송 광고 등을 활용, 방송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반쪽 출범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도 초대 총리였던 한승수 전 총리가 2008년 1월 28일 지명된 후 2월 20~21일 인사청문회를 거쳐 2월 29일 임명동의안이 통과됐다. 한 전 총리의 임명동의안 처리가 지연되고 일부 장관 후보자들이 낙마하면서 장관 인선은 더 늦어졌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장관들과 ‘어색한 동거’를 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실제 2008년 2월 27일 이명박 정부의 첫 국무회의는 한덕수 전 총리가 주재했다. 노무현 정부 국무위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3월 3일 이 대통령이 주재한 실질적인 첫 국무회의에서도 박명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 노무현 정부 때 장관 4명이 의결정족수를 맞췄다. 정부 출범 23일 만인 3월 18일에 이르러서야 이명박 정부 국무위원들로만 구성된 실질적인 첫 국무회의가 이뤄졌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의 일정표는 이보다 훨씬 늦어졌다. 국정 공백은 물론 주요 국정 과제를 추진할 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이호기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