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다음 달 경제지표를 봐야 한다고요? 한두 달 전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언제쯤 돼야 경기를 판단할 수 있는 거죠?”

지난 2월 7일 정부 세종청사 기획재정부 기자실. 이형일 재정부 경제분석 과장이 ‘최근 경제 동향’ 보고서(그린북)에 대해 브리핑하는 자리였다. 고개를 갸웃하던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자료를 봐선 경기가 회복 중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 과장은 “1~2월은 일시적 요인이 많아 다음 달 추세를 확인해야 한다”는 기존 설명을 거듭했다. ‘월희월비(月喜月悲)’해선 안 된다는 당부도 이어졌다. 월희월비는 최근 재정부 공무원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다달이 발표되는 경제지표만 믿고 추세를 진단했다가는 헛다리 짚기 쉽다는 의미다.

경제 부처로서는 요즘 참 ‘헷갈리는’ 시기다. 미국의 부동산 경기가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고 중국도 지난해 4분기 성장률 7.9%를 기록하며 선전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도 긴 터널을 벗어나는 단계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경제지표 움직임이 엇갈리는 데다 흐름 변화도 잦아서다.

정부가 매달 경제 현주소를 판단한 ‘그린북’에서도 뚜렷한 시각을 감지하기 어렵다. 이달 그린북은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 안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생산·투자·수출 등 주요 실물 지표가 개선됐다”면서도 경기 회복 가능성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대신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재정지출 자동 삭감 협상, 유럽 경제 회복 지연, 대내적으로는 소비 부진, 환율 변동, 투자 개선세 지속 여부 등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며 경제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식상한 결론’으로 마무리했다.
<YONHAP PHOTO-0309> 마지막 위기관리대책회의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이날 회의는 현 정부 마지막 위기관리대책회의. 2013.2.7

    leesh@yna.co.kr/2013-02-07 08:33:40/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마지막 위기관리대책회의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오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이날 회의는 현 정부 마지막 위기관리대책회의. 2013.2.7 leesh@yna.co.kr/2013-02-07 08:33:40/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아리송한’ 경기에 난감해진 재정부
비공식 분석 수단 ‘총동원’

이 과장은 “지난해부터 경기 흐름이 개선과 악화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그 영향이 국내 실물경제에 즉시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경기 흐름을 나타내는 경기동행지수는 지난해 2월 상승했다가 다음 달 바로 하락했고 7월에도 똑같은 급변동을 보였다. 향후 경기 국면을 예고하는 경기선행지수도 길어야 3~4개월을 주기로 오르락내리락 중이다. 최근 선행지수와 동행지수가 모처럼 동반 상승했지만 추세를 낙관하기 어려운 이유다. 수출 비중이 높고 대외 변수에 곧잘 흔들리는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징이 요즘 두드러지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통계청이 작성하는 경기순환 시계도 최근엔 무용지물이다. 경기순환 시계는 주요 경제지표들이 4가지 경기순환 국면(상승·둔화·하강·회복) 가운데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도표다. 예를 들어 지표들이 하강에서 회복 국면으로 뚜렷이 이동했다면 경기가 바닥을 찍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2월 치를 보면 10개 지표 가운데 8개가 하강과 회복 경계선에 바짝 붙어있다. 통계청 산업동향과 관계자는 “대부분의 지표들이 하강·회복의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할 뿐이어서 해석하기가 어렵다”며 “이 같은 모습이 이례적으로 5~6개월째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헷갈린다고 안테나를 접고 있을 수는 없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럴 때는 휴대전화 번호 이동 건수 같은 비공식적인 업계 자료가 숨겨진 나침반이 된다”며 “경제정책을 짜야 하는 공무원으로서는 수치가 아무리 좋게 나와도 낙관보다 비관을 앞세우는 게 원칙”이라고 귀띔했다. 정부의 월희월비 금지령은 당분간 풀리기 어려울 전망이다.


김유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