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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항공 시장은 2개 대형 항공사와 5개 저비용 항공사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5개 저비용 항공사 중 진에어(대한항공)와 에어부산(아시아나항공) 등은 모기업 항공사를 두고 있으며 독립 저비용 항공사는 제주항공·이스타항공·티웨이항공 등 3사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저비용 항공사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대형 항공사와 시장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부대 서비스를 중시하는 대형 항공사 시장과 가격 경쟁력에 초점을 맞춘 저비용 항공사 시장이 분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항공 정책, 업체들의 경영 방식 등이 현재 혼선을 빚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형 항공사들의 우월적 지위가 저비용 항공사의 가격 경쟁력 강화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한국미래소비자포럼과 한국소비자정책교육학회는 지난 1월 30일 서울 중구 수화동 페럼타워에서 학계 교수들을 비롯해 업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저비용 항공사의 경쟁 구도와 소비자 편익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현용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대형 항공사들이 저비용 항공사의 출범으로 시장을 잠식당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 브랜드(fighter brand)를 출범시켰다”며 “이들의 등장으로 저비용 항공사의 맹점인 저비용 모델을 고착화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이터 브랜드(fighter brand)’는 기존 구매자가 경쟁사로 이동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브랜드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 교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기존 브랜드의 고급 포지셔닝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쟁사 수준의 낮은 가격을 도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즉 항공 시장은 적정한 서비스에 적정한 가격이 결합된 ‘편익 비용 대비 시장’ 사업 모델을 도입하고 국내선을 중심으로 ‘편입 비용 대비 시장’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배경에는 기존 항공사 중심의 산업 정책과 우리나라 소비자의 성향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기존 브랜드의 포지셔닝 훼손 방지 및 사회적·체험적 편익을 중시하는 한국적 소비 풍토가 반영된 셈이다.
저비용 항공 시장도 ‘대기업 vs 중소기업’ … 가격·서비스 경쟁…저비용 항공 ‘ 빨간불’
‘저비용’ 사업 모델 퇴출 위기

현 교수는 “어떤 시장이나 업체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시장가격은 하락하고 만족스러운 품질이 유지되게 마련이다. 저비용 항공사가 시장에서 순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소비자가 사업자에게 다양한 것을 요구할수록 소형 사업자들이 살아남기 어려워진다”며 “저비용 항공사는 소비자에게 시달리고 대형 항공사에 밀려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고 우려했다.

기존 항공 업계를 편의 서비스와 가격 경쟁력에 특화된 시장으로 양분해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잡아내고 관련 정책 역시 특성에 따라 재정비하자는 얘기다.

저비용 항공 사업자 중에는 자본금 확충이나 사업 운영 면에서 기업 그룹의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사업자와 그렇지 못한 사업자가 존재한다. 시너지를 얻을 수 없는 사업자는 자본 조달, 서비스 개발과 운영에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포럼에서는 기업 지배 구조의 시너지를 누릴 수 없는 항공사의 경우 중·장기적으로 서비스 제공의 효율성을 제고하며 현재의 국내선 시장과 같이 ‘편익 비용 대비 시장’ 사업 모델을 추구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같은 회사들이 정상적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격 경쟁 중심 시장’을 겨냥하고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경쟁사는 국내선에서 ‘편익 비용 대비 시장’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 경쟁 중심 시장’의 파이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렇게 되면 기업 지배 구조 측면에서 시너지를 낼 수 없는 저비용 항공사의 경우 서비스 수준을 높이거나 비용 압박 속에서 가격을 더 낮춰야 하는 등 심각한 상황에 부딪칠 수 있다.

이숭규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국 과장은 “대형 항공사는 계열사나 네트워크를 통해 조종사 고용, 소모품 구매, 정비 등 모든 위치에서 저비용 항공사를 압박할 수 있다”며 “재무구조가 좋지 못한 저비용 항공사들이 대형 항공사의 압박과 출혈경쟁을 버텨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날 포럼에 참가한 김정숙 제주대 교수는 “기존 항공사들은 운수권을 배분받을 때 자회사와 동시에 참여해 운수권 확보 가능성을 2배 높이고 경쟁 관계에 있는 저비용 항공사에 배분될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숭규 공정위 과장은 “100% 자회사는 (모회사와) 단일체로 보기 때문에 노선을 배분할 때 신청자에게 계열사가 있을 때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며 “노선 배분 시 계열사에 동일하게 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비롯해 아직도 저비용 항공사에 불합리한 점이 많다”고 답했다.





“ 부대 서비스를 중시하는 대형 항공사 시장과 가격 경쟁력에 초점을 맞춘 저비용 항공사 시장이 분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비용 항공 시장도 ‘대기업 vs 중소기업’ … 가격·서비스 경쟁…저비용 항공 ‘ 빨간불’
노선 배분 등 제한 필요

이 같은 상황에서 ‘기업 지배 구조의 시너지를 누릴 수 없는 사업자’는 투자 여력을 갖춘 외국 국적 항공사(외항사)를 중심으로 ‘국제선’에 성장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막강한 경쟁자에 밀려 퇴출 위기로 몰릴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된다면 정통적 저비용 사업 모델을 지향하는 국적사는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즉 국내선에서 저비용 항공 시장은 한국형인 ‘편익 대비 비용 시장’ 사업 모델로 통용되며 시장구조는 과거보다 경쟁자만 약간 더 늘어난 과점으로 고착화되고, 국제선은 이 같은 한국형인 ‘편익 대비 비용 시장’ 모델 대신 더 많은 투자와 효율적인 운영을 실현해 최상의 저비용 모델을 구현하는 외항사를 중심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선은 유럽연합(EU)과 같이 외항사가 국내선에 취항하지 않는 한 안정적으로 과점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기업 지배 구조의 시너지를 누릴 수 없는 사업자’가 탄력을 받아야 국내선 시장의 경쟁 구조는 의미 있게 구현될 수 있다. 또 ‘기업 지배 구조의 시너지를 누릴 수 없는 사업자’는 국내선보다 국제선에서 더 쉽게 성장의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선에서 개방화 정책과 저비용 항공의 인프라 구축이 적극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프라 구축으로 ‘기업 지배 구조의 시너지를 누릴 수 없는 사업자’는 국제선의 안정화를 통해 국내선에서의 위상도 안정화되고 국내선도 시장 경쟁에 따라 의미 있게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국제선 개방화 정책과 인프라 구축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 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불리는 ‘항공 자유화’ 확대와 저비용 항공사 전용 터미널 등 인프라 구축이다. 김정숙 교수는 항공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공정 경쟁 유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시장이 소수 기업에 의해 지배되면 제품의 가격·수량·품질 등의 거래 조건이 사업자들에 의해 좌우되므로 소비자는 질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기 어렵게 된다. 이에 따라 경제활동의 기본 질서를 확립하고 소비자 주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장 경쟁 체제의 기본 원리인 기업 간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돼야 항공 운임의 인하 효과가 발생할 수 있으며 소비자의 항공 선택권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공정 경쟁에 필요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 법률적인 문제 검토와 함께 ‘소비자의 역할’에 대한 주장도 제기돼 관심을 모았다. 김혜선 순천대 교수는 “가격 대신 고객 서비스를 지향하는 부문에서 경쟁을 하다 보니 목소리 큰 소비자의 비합리적인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럴 때 대다수 손님의 불편을 담보로 목소리 큰 소비자의 편익이 채워진다”라며 “장기적인 소비자 편익으로 이어지려면 소비자가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