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여성 임원 인사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최초’다. ‘창사 이후 최초’, ‘동종 업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여성 임원이 다수 등장했다. 대개 40대 여성 임원들로 성과주의의 수혜자인 ‘공채 출신’과 ‘발탁 승진자’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삼성그룹은 2013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사상 최대 여성 인력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신임 임원 10명을 포함해 총 12명의 여성 임원 승진자를 배출했다. 이번 여성 임원 승진자에는 부사장 1명, 전무 1명, 상무 10명이 포함됐다. 사장 승진이 점쳐졌던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은 직급을 그대로 유지하며 기대했던 여성 최고경영자(CEO)는 나오지 않았다. 삼성그룹 내 여성 CEO 탄생은 다음으로 미뤄졌지만 전체 여성 임원은 30대 그룹 중 가장 많다. 이는 여성 인재를 중시하는 이건희 회장의 지론이 인사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여풍당당 ‘성공 시크릿’] 여성 임원 현황… 잇단 ‘최초’ 타이틀…차·정유도 종횡무진
첫 공채 출신 임원…성과주의 수혜

전무에서 1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한 이영희 삼성전자 부사장은 유니레버·로레알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로 갤럭시 시리즈의 성공적인 실적을 이끌어 낸 주역이다. 지난해 심수옥 삼성전자 부사장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여성 부사장이 됐다. 삼성SDS의 윤심 전무는 모바일 정보 서비스 개발과 마케팅 전문가로, 제안 경쟁력 강화를 통한 수주율 향상과 금융·공공 부문 특화 플랫폼 확보로 시장 지배력을 확대했다.

삼성그룹의 2013년 인사에서는 ‘과감한 발탁 인사’가 돋보인다. 조인하 삼성전자 신임 상무는 아르헨티나 CE담당 주재원 출신이다. 중남미 TV 시장점유율 1위(36%)와 전년 대비 매출 12% 성장 등 현지 시장 리더십 강화를 주도한 성과를 인정받아 3년이나 앞서 발탁됐다. 유미영·오시연·김경아 신임 상무 등 3명은 2년 발탁 승진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정기 임원 승진 인사에서 채양선 기아차 전무, 백수정 현대캐피탈 이사, 김원옥 현대엔지니어링 이사대우를 임명했다. 현대차그룹이 한꺼번에 3명의 여성 임원 승진 인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채 전무는 프랑스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그룹에서 랑콤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다가 2010년 기아차로 이직했다. 입사 후 참신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 기아차를 사상 최초로 글로벌 브랜드 톱 100에 진입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번 인사로 현대차그룹은 최명화 현대차 상무와 이미영 현대카드 이사, 김혜경 이노션 전무 등을 포함해 6명의 여성 임원을 두게 됐다.

SK그룹은 현재까지(1월 25일 기준) 6개 계열사가 임원 인사를 단행한 가운데 첫 여성 임원이 배출됐다. SK이노베이션의 강선희 지속경영본부장 겸 이사회사무국장이 그룹 최초 여자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SK그룹과 정유 업계의 새 역사를 썼다. 이로써 SK그룹은 700여 명의 임원 가운데 12명이 여성 임원으로 포진해 있다.

강 부사장은 서울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2002년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대통령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이후 2004년 SK 상무로 입사한 뒤 SK에너지 윤리경영본부장과 SK이노베이션 이사회사무국장 등을 맡아 왔다. SK 계열사 인사를 발표하지 않은 SK텔레콤·SK네트웍스·SK하이닉스 등은 각 사의 일정에 따라 1월 말에서 2월 초에 임원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보수적으로 소문난 LG그룹에도 여풍이 불기 시작했다. LG그룹에서는 이정애 LG생활건강 상무가 공채 출신 첫 여성 전무로 승진하는 등 여성 임원 4명이 새로 나왔다. 이 전무의 승진은 창립 이후 여성 공채 출신으로는 첫 여성 전무가 탄생해 의미가 남다르다. 이 밖에 김희선 LG생활건강 상무, 김희연 LG디스플레이 상무, 백영란 LG유플러스 상무를 여성 임원으로 승진시키면서 LG는 전체 280여 명의 임원 가운데 여성 임원이 16명이 됐다.

LG그룹 측은 공채 출신 여성 임원 선발에 대해 “학력·경력 불문하고 우수 인재를 중용했다”는 뜻을 보였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시장 선도’ 기반 성과주의 인사가 앞으로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남성 중심의 공기업 문화가 강하게 형성됐던 KT그룹도 여성 인력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KT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홍보 사령탑인 커뮤니케이션실장으로 김은혜 전무를 발탁했다. 커뮤니케이션실은 기존 대외 홍보를 담당하던 홍보실과 사내 소통을 담당하던 GMC(그룹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전략실을 통합한 조직으로, 조직의 규모나 중요도가 훨씬 커졌다.

김 전무는 MBC 뉴스 기자와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KT로 영입된 케이스로, 그의 홍보 분야 경력과 KT 내부에서의 성과 등이 발탁 배경이 됐다. 신사업본부장에는 오세현 전무를 임명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여동생으로도 잘 알려진 오 전무는 LG CNS와 IBM 등 정보기술(IT) 기업을 두루 거쳐 작년 KT 신사업전략담당 상무로 영입됐다.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국장)에서 영입된 임수경 전무도 이번 인사에서 G&E(글로벌&엔터프라이즈) 시스템사업본부장과 G&E 운영 총괄까지 겸임하며 영역을 넓혔다. 임 전무는 2009년 국세청 최초의 여성 국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현대백화점은 국내 백화점 업계에서는 최초로 여성 점장을 배출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홍정란 현대백화점 상무는 백화점 업계를 통틀어 최초이자 창사 이후 첫 여성 임원 점장으로 현대백화점 킨텍스점장이 됐다.

업계에서는 홍 상무가 공채 출신이라는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고 평가하고 있다. 홍 상무는 서울대 식품영양학과를 나와 1988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25년간 근무해 오며 주로 식품 영업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원칙을 준수하고 고객 니즈를 파악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다.

코오롱그룹에서는 1954년 창사 이후 첫 여성 CEO가 탄생했다. 이수영 코오롱워터앤에너지 전략사업본부장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해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신임 이 대표는 전남 해남 출신으로 서울대 노어노문학과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2003년 코오롱그룹 웰니스 태스크포스팀에 차장급으로 입사했다. 2005년 부장을 건너뛰고 상무보로 2단계 승진해 주목을 받았으며 2011년 전무로 승진하는 등 초고속 승진을 계속해 왔다.



중공업·금융…유리 천장 여전

올해도 보이지 않았다. 여성 인력이 많다고 강조한 신세계그룹의 유리 천장은 높았다. 신세계가 발표한 2013년 정기 임원 인사의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총 40명. 이 가운데 새롭게 임원을 단 여성은 ‘제로(0)’다.

다만 이마트의 이연주 상무보가 상무로 여성 임원 중 유일하게 직급을 올렸다. 작년 역시 여성 임원 승진자가 없었다. 중공업계 역시 2년 연속 기업의 ‘별’로 불리는 임원 승진 대상에 여성을 포함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STX·삼성중공업 등 주요 기업의 여성 임원은 전무한 상태다.

증권사 역시 여성 임원들의 활약이 미진하다. 그나마 고위급 임원은 대신증권의 이어룡 대신금융그룹 회장과 우리투자증권의 오세임·노차영 상무가 있다. 동양·KDB대우·한국투자·키움증권 등의 증권사에는 여성 임원이 없고, KTB투자증권에는 심미성 상무보가 홀로 여성 임원을 맡고 있다.

이처럼 증권사에 여성 임원이 적은 것은 증권사 업무가 제조업이나 은행·보험·카드 등 다른 금융업에 비해 남성 중심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임원 후보군인 여성 부장과 부장급 프라이빗 뱅커가 계속 늘고 있어 여성 임원은 점차 증가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두터웠던 금융권의 유리 천장은 조금씩 깨지는 분위기다. 실제 일부 은행을 중심으로 최근 여성 임원들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시중은행 중 부행장 이상의 여성 임원이 있는 곳은 IBK기업은행·한국씨티은행·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은행권의 여성 임원들의 비율은 낮은 상태다.

국내 4대 시중은행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여성은 2만7601명으로 전체 직원의 48%였다. 하나은행이 56.9%로 여성 직원 비중이 가장 높았고 KB국민(47.0%)·우리(46.0%)·신한(43.0%)은행순이었다. 은행의 여직원 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여성 임원 비중은 4대 은행 평균이 4.8%에 그쳤다. 임원 중에서도 상위 직급인 부행장은 한 명도 없고 본부장만 11명이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