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비즈니스의 메카로 불리는 싱가포르 호텔 산업의 호황기가 끝난 것 아니냐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잇단 금융 위기 이후 규제 강화 등의 여파로 전 세계 금융 산업이 위축되면서 주요 고객층인 뱅커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세계 기업들이 경기 침체 여파로 출장은 물론 출장비용을 줄이고 있는 것도 타격이 됐다.

싱가포르 호텔은 객실 점유율이 홍콩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다. 홍콩에 이어 아시아 금융 및 비즈니스 중심지로 꼽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객실 점유율은 85%를 넘어섰다. 세계적인 관광지이자 금융 중심지인 뉴욕과 런던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외신들에 따르면 최근 투숙객이 크게 줄었다. 지난 9월 싱가포르 4~5성급 호텔의 고급 객실 평균 점유율은 81%까지 떨어졌다.

객실 점유율이 하락한 것은 금융회사 등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임직원들이 출장을 갈 때 고급 호텔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한데 따른 것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일반 객실보다 뱅커들이 많이 이용하는 고급 객실 점유율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 이를 보여준다.

싱가포르 호텔 업체 파이스트호스피텔러티트러스트의 제럴드 리 최고경영자(CEO)는 “고급 객실 고객들이 싼 가격대의 객실을 찾고 있다”며 “유럽 등 선진국의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기업들이 출장비 등 경비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 기업들 사이에서 이런 현상이 뚜렷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호텔 공급이 늘어난 것도 객실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다. 호텔 정보 업체 STR글로벌의 조나스 오그렌 아시아 대표는 “싱가포르 내 호텔 공급까지 늘어 내년 객실 점유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종합 부동산 업체 CB리처드앨리스(CBRE)의 집계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4~5성급 호텔 객실 공급 규모는 2014년까지 17.4%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객실 점유율 하락에 따른 수익 타격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4~5성급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싱가포르 최대 부동산 개발 업체 CDL의 3분기 실적은 예상보다 나빴다. 3분기 객실당 매출은 209싱가포르 달러(약 18만5000원)로 전 분기(217싱가포르 달러)에 비해 감소했다. CDL은 “기업들의 출장은 물론 국제 콘퍼런스가 줄어 매출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YONHAP PHOTO-0834> A man walks in front of highrise buildings of the financial district in Singapore on October 21, 2008. Southeast Asia's economies will suffer if a growing shortage of managers and skilled professionals is not addressed, the International Labour Organisation warned. AFP PHOTO/ROSLAN RAHMAN
/2008-10-21 14:55:53/
<저작권자 ⓒ 1980-200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 man walks in front of highrise buildings of the financial district in Singapore on October 21, 2008. Southeast Asia's economies will suffer if a growing shortage of managers and skilled professionals is not addressed, the International Labour Organisation warned. AFP PHOTO/ROSLAN RAHMAN /2008-10-21 14:55:53/ <저작권자 ⓒ 1980-200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싼 객실 찾는 고객들…객실 점유율도 하락

전망도 좋지 않다. 싱가포르에서 포시즌과 힐튼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호텔프로퍼티스는 “앞으로 사업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싱가포르 호텔 산업은 앞서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큰 타격을 입었다. 2009년 객실 점유율은 76%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2010년 새로운 카지노를 열자 객실 점유율이 반등했었다.

싱가포르 호텔들이 어려워진 반면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호텔 산업은 활기를 띠고 있다. 최근 이들 지역의 경제 성장세가 강해지자 세계 기업들은 물론 투자자들이 투자 기회를 찾아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최악의 홍수 피해를 본 태국 경제는 재건 사업이 본격화되자 회복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태국 최대 호텔 및 외식 체인 운영 업체 마이너인터내셔널의 주가는 올 들어 87% 급등했다. 센트럴플라자호텔의 주가도 두 배 이상 올라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태국 주식시장의 SETI 지수 상승률인 25%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존스랑라살호텔은 올해 객실당 평균 매출이 15~20%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톰 오크덴 존스랑라살호텔 부회장은 “경제 성장세가 강해지자 다국적기업들을 포함해 많은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호텔 객실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설리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