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후 첫 해외 순방 지역으로 아시아를 선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1월 18~20일 태국·미얀마·캄보디아 3국을 찾았다. 미얀마와 캄보디아는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첫 방문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동남아 3국을 방문하기 직전 중동의 화약고가 터졌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군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무력 충돌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2008년 가자 전쟁’이 재발되는 것 아니냐는 국제사회의 우려가 증폭됐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일정대로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모두 마쳤다. 오바마 대통령이 중동의 화약고를 잠시 뒤로하고 아시아를 찾은 데서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 기조 변화를 읽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의 외교·군사 정책의 중심축을 중동에서 아시아로 이동시키는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 전략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시그널이라는 것이다.
<YONHAP PHOTO-1713> 오바마, 잉락 태국 총리와 회담



(AP=연합뉴스) 재선 후 첫 해외일정으로 동남아 3국 순방길에 나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이 18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의 정부청사에서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와 회담을 갖고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2012-11-19 09: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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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잉락 태국 총리와 회담 (AP=연합뉴스) 재선 후 첫 해외일정으로 동남아 3국 순방길에 나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이 18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의 정부청사에서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와 회담을 갖고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2012-11-19 09:44:04/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G2 반열에 오른 중국 견제 차원

‘아시아 회귀 전략’이라고도 불리는 ‘피봇 투 아시아’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011년 외교 잡지 포린 폴리시에 ‘미국의 태평양 시대’라는 기고를 통해 처음 사용했다. 백악관은 이를 힘의 ‘재균형(rebalancing)’이라고 부르지만 중국의 부상을 염두에 두고 이를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미국은 지난 10년여간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중동 지역에 외교 군사 역량을 집중해 왔다.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 지출로 재정 적자가 급증했다. 설상가상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경제도 휘청거렸다. 그 사이 중국은 초고속 성장을 지속하면서 미국을 위협하는 ‘G2(주요 2개국)’ 반열에 올랐다.

이에 따라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했다. 미국으로선 중국의 부상이 위협으로 다가온 셈이다. 중동에 집중한 역량을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겨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피봇 투 아시아 전략은 에너지 안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 내 아시아정책연구소(NBR)의 미칼 허버그 수석연구원은 “미국이 중동에서 아시아로 힘을 재분배하고 있는 것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중동의 전략적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2008년 이후 25% 증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미국의 원유 생산이 2020년까지 30% 더 증가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최대 산유국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체 원유 생산이 늘어나면서 전체 소비 가운데 수입 원유 비중은 2005년 60%에서 42%로 줄었다. 중동 지역에서의 수입은 지난 20년간 33% 정도 감소했다. 전체 석유제품 수입에서 차지하는 중동의 비중도 22%로 서반구(아메리카·유럽·아프리카) 52%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IEA는 2035년 중동산 원유의 90% 정도가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로 수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허버그 수석연구원은 “중국이 중동 원유의 최대 수입국으로 부상했다”며 “미국이 중국의 원유 수송 라인을 안전하게 지켜주기 위해 과거처럼 중동에 외교·군사력을 집중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다시 말해 미국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이뤄낸 ‘중동의 평화’ 혜택을 중국이 고스란히 챙기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무임승차’를 누리고 있다는 지적은 미국으로선 아픈 대목이다.


워싱턴(미국)=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