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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 3차 발사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예정대로라면 11월 29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도전에 나선다. 정부는 나로호 발사가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만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의 분위기는 의외로 냉랭하다.

한 우주산업 전문가는 “이번 발사에 성공하더라도 한국이 추가로 얻을 게 없다”며 “오히려 실패한다면 우주개발 프로젝트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발사 성공이라는 국민적 이벤트를 빼면 굳이 3차 발사를 강행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지난 10년 동안 수천억 원을 쏟아 부은 나로호 사업이 마지막 단계에서 이런 냉소적이 평가를 받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과연 지난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로호 사업 10년, 우주산업 어디까지 왔나, 발사체 기술 제자리…‘ 소형’ 틈새 개척
민간 기업 참여 늘려야

2002년 시작된 나로호 사업은 출발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정부는 발사체의 핵심인 1단 로켓을 러시아에서 사오기로 결정했다. 위성을 대기권으로 쏘아 올릴 만큼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액체 로켓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구매한 1단 로켓(앙가라)에 국내 자체 개발한 2단 고체 로켓과 탑재 칸을 얹어 나로호 발사체를 완성한다는 구상이었다.

러시아제 1단 로켓 구매에 나로호 사업 전체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2억 달러가 투입됐다. 정부는 로켓 구매와 함께 러시아로부터 관련 기술을 이전받는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로켓 기술이전이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위반 논란에 휩싸이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러시아의 요구로 한·러 우주기술보호협약이 체결되면서 로켓의 기술이전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지금도 1단 로켓이 국내에 반입돼 발사될 때마다 러시아 보안 요원 수백 명이 함께 들어와 한국 측 접근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조성식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세계적으로 발사체 기술을 쉽게 내주는 나라는 없다”며 “오히려 전략적 제휴를 통한 공동 투자나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이 더 나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불가피하게 러시아제 1단 로켓을 사왔지만 여러 차례 발사 경험을 통해 상당한 운영 기술과 체계 기술을 축적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역시 평가가 엇갈린다. 한 우주개발 전문가는 “자동 발사 시스템 등 핵심 부분은 러시아 것을 그대로 갖다 썼다”고 말했다.
나로호 사업 10년, 우주산업 어디까지 왔나, 발사체 기술 제자리…‘ 소형’ 틈새 개척
국내 우주산업은 여전히 절름발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우주개발의 후발 주자다. 1992년 우리별 1호 성공이 본격적인 우주개발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1990년대 크고 작은 위성 개발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완성한 위성을 궤도에 쏘아 올리는 발사체 기술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2년 시작된 나로호 사업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우주산업은 크게 발사체와 위성, 지상 장비, 위성 서비스 등으로 나뉜다. 발사체 분야는 10년 동안의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한국은 여전히 위성을 쏠 때마다 발사체를 구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다목적 위성인 아리랑 5호를 완성해 놓고도 러시아 측 사정으로 계속 발사가 늦어지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그나마 한국이 앞서 있는 분야는 위성 제작이다. 우리별 1호 개발에 참여했던 카이스트 출신 연구진이 창업한 우주개발 벤처기업 쎄트렉아이는 세계 소형 위성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김병진 쎄트렉아이 부사장은 “국내시장만 보고는 생존이 불가능해 처음부터 해외 수출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자체 위성 기술이 부족한 동남아시아와 중동을 1차 타깃으로 삼았다. 가장 먼저 말레이시아(라작샛)와 두바이(두바이샛)가 쎄트렉아이를 선택했다. 세계 소형 위성 시장은 이 회사와 영국 SSTL, 유럽 EADS 아스트리움이 삼분하고 있다. 쎄트렉아이의 저력은 높은 가격 경쟁력에서 나온다. 소량 주문 초정밀 제품인 위성은 제작 과정을 거의 사람의 수작업에 의존해 제조원가에서 인건비 비중이 높다. 2011년 기준으로 쎄트렉아이의 인건비는 경쟁사인 SSTL의 80%에 머무르고 있다. 이 회사의 네 번째 소형 인공위성 두바이샛-2(300kg)의 제작비가 4000만 달러 수준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도 위성 제작 사업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5월 내년 발사 예정인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3A호 본체를 개발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 납품했다. 국내 민간 기업이 위성 본체를 직접 개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리랑 3A호는 올해 일본에서 발사된 아리랑 3호에 흐린 날과 야간에도 지구를 관측할 수 있는 적외선 카메라를 장착해 성능을 높인 것이다. 1톤급 중형 위성으로 가격이 2000억 원대다.
현재 이 회사 전체 매출에서 우주사업 비중은 5%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리랑 3A호 본체 개발로 분위기가 한껏 고무돼 있다. 이 회사는 다목적 중형 위성의 수출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위성 산업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위성 제작은 대부분 정부 발주로 이뤄진다. 항우연이 전체 사업을 주관하고 카이스트 등 국내 대학과 연구소들이 참여해 제작을 담당한다. 민간 기업들은 항우연에 부품을 납품하는 정도다. 민간 주도의 위성 산업이 나올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참여 업체가 공동 설계팀을 만들지만 항우연이 시스템 설계를 절대 내주지 않는다”며 “결국 업체들이 시스템 설계에 끼지 못하면서 국내에 변변한 시스템 통합 업체가 없다”고 말했다.
<YONHAP PHOTO-1248> <나로호> 발사대로 향하는 나로호 

(고흥 = 연합뉴스)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1)'가  3차 발사를 위해 24일 오전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 발사체조립동에서 발사대로 옮겨지고 있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

2012.10.24

leesh@yna.co.kr/2012-10-24 13:34:45/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나로호> 발사대로 향하는 나로호 (고흥 = 연합뉴스)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1)'가 3차 발사를 위해 24일 오전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 발사체조립동에서 발사대로 옮겨지고 있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 2012.10.24 leesh@yna.co.kr/2012-10-24 13:34:45/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새로운 성장기 들어선 세계 우주산업

전문가들은 정부 발주 위성 제작을 가능한 한 기업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정부와 항우연은 오히려 차세대 위성 원천 기술 개발 등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우주개발의 산업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우주산업 중 시장 규모가 가장 큰 위성 서비스 분야도 대수술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위성 영상의 중요성이 계속 커지고 있다. 지구관측위성을 통해 곡물과 산림의 수확량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원유 저장 시설의 석유 비축량까지 알아낸다.

전 지구적인 전염병 확산을 예측해 제약사들이 미리 대비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이에 따라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위성 영상 전문 업체 인수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 다목적 실용위성의 영상 판매 실적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발사해 2008년 임무가 종료된 아리랑 1호와 2006년 발사한 아리랑 2호의 위성 영상 판매 수익은 140억3338만 원에 불과했다. 두 위성의 개발비인 4875억 원의 2.9% 수준이다. 그나마 판매비의 절반 가까이를 판매 대행 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과 프랑스 스팟이미지에 지불했다.

나로호 2차 발사가 실패한 2010년 한국형 발사체 개발 사업이 조용히 막을 올렸다. 1단 로켓을 러시아에 의존한 나로호와 달리 2022년까지 1조6300억 원을 투입해 발사체 전체를 자체 개발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박길재 교육과학부 우주기술과 사무관은 “초기 단계, 설계 단계부터 기업들을 참여시켜 핵심 기술을 민간에 조기 이전할 계획”이라며 “나로호 사업 때의 두 배에 가까운 300여 개 기업이 함께 참여한다”고 말했다.

냉전 체제 붕괴 후 어려움에 빠졌던 세계 우주산업이 2000년대 들어 새로운 성장기를 맞고 있다. 미국이 관련 예산을 다시 늘리기 시작했고 달과 행성 탐사 연구가 재개됐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재원을 축적한 중국과 인도 등도 우주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아시아가 우주개발 경쟁의 새로운 주 무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나로호 사업 10년을 냉정하게 평가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