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문화 없는 경제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 문화와 기업은 파트너 관계다. 오늘날 문화는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라는 사실을 정부와 기업은 잊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의 문화 비평가 기 소르망


“창조 경영의 출발점은 예술이다. 시·음악·미술·공연 등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생각의 탄생’ 저자 조버트 루트번스타인


불확실성이 더해가는 세계경제 환경에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해법으로 창조 경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고객의 다변화된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고객과 기업의 관계는 공급자와 수요자에서 점차 함께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경영 주체로 변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 경영에서 ‘아트 마케팅’이 부상하고 있다. 창조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예술이 지닌 창조성과 혁신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아트 마케팅이 떠오른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화두는 ‘진정성’이다. 단순히 예술 작품에 기업 상품을 덧입히는 차원을 넘어 기업이 직접 예술 활동의 주체가 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서민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아트 마케팅은 경영에 예술의 다양한 요소들을 접목해 제품·고객·평판 등의 실질적 가치를 높이는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경영에 접목되는 예술의 범위는 회화·조각·음악·건축 등 순수예술부터 상업적 목적의 대중 예술까지 문화 전반으로 확대할 수 있다.

예술의 고유한 속성인 창조 정신과 정신 고양 등이 기업에 적용될 때 낳는 효과는 다양하다. 기업은 첨단 기술이 주는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를 예술적 감성을 통해 완화할 수 있다. 또한 미학적 소비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기능적인 측면을 넘어 정서적이고 심미적인 만족을 줄 수 있다.

예술 교육에 참여하는 직원들은 예술적 완성도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 창작 과정의 매력 등과 만나게 된다. 기업은 아트 마케팅을 통해 ‘예술을 사랑하는 기업’이라는 기업 이미지와 ‘내부 직원들의 창의적인 역량 발휘’를 통한 조직 문화의 변화 를 끌어낼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 조각공원/김영우 기자youngwoo@hankyung.com20110608....
신세계백화점 조각공원/김영우 기자youngwoo@hankyung.com20110608....
브랜드 인지도·직원 사기 진작에 효과

실제로 한국메세나협의회가 회원사 64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의 문화 예술 지원을 통해 얻는 효과는 크게 기업의 정당성, 시장 우위, 종업원 혜택 등 세 가지 차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정당성 효과가 7점 만점에 5.5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시장 우위 효과와 종업원 혜택 효과가 4.8점으로 동일하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기업은 예술의 속성을 어떻게 마케팅에 적용할 수 있을까. 서민수 수석연구원은 상품 기획, 장소 마케팅, 외부 고객 관리, 내부 고객 관리, 평판 마케팅으로 이를 세분화한다. 상품 기획의 핵심은 ‘일상의 예술품’으로 제품을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루이비통이 최정상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갈색 모노그램 문양 일변도였던 기존 디자인에 현대적 이미지를 더해 타깃 연령층을 대폭 낮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상품 기획은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아트 마케팅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전자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보석 디자이너 마시모 주키와 협업해 프리미업급 지펠 냉장고를 출시했고 LG전자 또한 2006년부터 ‘순수예술과 제품 디자인의 만남’을 콘셉트로 한 ‘디오스 컬렉션’를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최근 고가의 제품뿐만 아니라 일상 용품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예술을 테마로 문화적 체험 공간을 연출하는 장소 마케팅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매장을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적 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 복합 예술 공간으로 연출하는 것이다. 유통업계에서 고객과의 접점에 적극적으로 예술 인프라를 활용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본점 본관에 ‘트리니티 가든’이라는 모더니즘 대가들이 조각 공원을 두고 있으며 최근 현대 미술의 대가 제프 쿤스를 비롯해 알렉산더 칼더, 헨리 무어 등 작가들의 조각 작품을 잇달아 전시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올가을, 겨울 매장 개편 시 국내 유명 아티스트를 전면에 내세워 감성의 편집 매장을 선보인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제조업에서도 장소를 활용한 아트 마케팅에 관심을 보인다. 기아자동차는 설치 미술가 서도호 작가와 함께 이동식 신개념 호텔인 ‘틈새 호텔’을 선보이고 11월 11일까지 광주 도심 곳곳을 이동한다.
[비즈니스 포커스] ‘아트 마케팅’이 뜬다 - 기술과 감성이 만나면 기업 가치 ‘쑥쑥’
‘아트슈머’도 등장

심미안과 창의력이 뛰어난 소비자 ‘아트슈머(Art+Consumer)’도 등장했다. 고객의 감각을 신제품 개발이나 맞춤형 상품 디자인에 활용하는 아트 마케팅도 주목받는다. 이탈리아 자동차 제조업체 피아트가 고객의 요구 사항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 25만 개에 달하는 온라인 소비자들의 아이디어를 검토한 후 자동차 모델 ‘친퀘첸토(Cinquecento)’를 출시한 게 대표적이다.

아트 마케팅의 효과는 조직 구성원들에게도 미친다. 창의력과 혁신 동기부여에 예술 교육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애니메이션 기업 픽사는 예술을 매개로 조직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사내에 ‘픽사대학교’를 설립하고 110여 개의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육 활동을 업무 시간으로 인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포스코가 예술 교육에 앞서고 있다. 포스코미술관에서는 통섭형 문화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미술과 기타 문화 예술 장르 간 소통을 통해 문화 예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프로그램으로 ‘피아노가 있는 미술사’,‘여자 그리고 와인’ 등의 강좌를 열고 있다.

이 강좌를 듣고 있는 포스코의 김신애 씨는 “점심시간을 활용해 스트레스를 풀고 재충전도 할 수 있어 좋다”며 “통섭형 교육으로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또한 사내 창의놀이방인 ‘포레카’에서 임직원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직접 작품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주말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기업의 예술 후원 활동은 단순한 기부 차원을 넘어 기업과 예술이 함께 발전하고 성장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기업들이 문화 예술을 지원하는 ‘메세나 활동’으로 불리며 금전적 지원 외에 물품과 서비스 협찬, 예술상과 공모전 개최 등 다양한 후원 방식을 통해 문화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카드는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한국인의 인턴십 채용과 큐레이터 교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학생들이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또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가 재능 기부를 하는 ‘아트스테이지’와 이들 학생들의 예술 창작 활동, 해외 콩쿠르 참가 등을 후원하는 ‘아트 스칼라십’ 등을 운영한다.
[비즈니스 포커스] ‘아트 마케팅’이 뜬다 - 기술과 감성이 만나면 기업 가치 ‘쑥쑥’
이 밖에 현대차 정몽구재단에서는 전국 12개 농산어촌 초등학교를 직접 찾아가는 ‘2012 온드림스쿨 특활교실’을 개최하고, 한화생명은 소외 계층 아동들에게 음악·미술·국악·연극 등 교육 및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예술 더하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예술 더하기 프로그램에는 임직원들도 직접 봉사와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메세나 활동의 트렌드는 ‘교육 지원’이 강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아트 마케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속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또한 조직 문화의 변화와 구성원의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역할이 강조된다. 예술적 소양을 갖춘 창조적 인재를 경영의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민수 수석 연구원은 “예술가적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제공받아 창조 경영의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