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실적 시즌이 ‘어닝 쇼크’로 얼룩졌다. 유럽 재정 위기에서 촉발된 세계적 경기 침체가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이미 올 하반기부터 대부분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꾸준히 실적 전망치를 낮춰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실로 닥친 기업들의 재무 성적표는 예상보다 훨씬 더 암울했다. 어닝 쇼크는 일반적으로 실제치가 증권사의 추정치보다 10% 이상 못 미칠 때를 뜻한다.
증권 정보 업체 에프엔가이드가 11월 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연결기준 실적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가 있는 실적 발표 기업 중 76.08%인 35개사가 예상치보다 낮은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 중 17개사(36.95%)는 컨센서스보다 10% 이상 미달한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반면 영업이익이 컨센서스를 10% 이상 웃돈 기업은 3개(6.52%)에 불과했다.
3분기 실적 시즌 초반은 분위기가 좋았다. 삼성전자가 시장 예상치를 웃돈 8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거뒀다고 발표하면서 기존의 실적 하향 전망이 빗나가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주력·성장 산업 전반 ‘실적 부진’
3분기 연결기준 실적을 발표한 47개 상장사의 3분기 총 영업이익 잠정치는 19조504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9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경신한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나머지 46개사의 영업이익 잠정치는 11조379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54% 늘어나는 데 그친 것이다. 사실상 국내 대기업 영업이익의 절반 정도가 삼성전자에서 나온 것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한국 경제를 이끌던 현대·기아차도 사정이 좋지 않았다.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은 직전 분기 대비 17.84% 감소한 2조588억 원에 그쳐 컨센서스를 2.95% 밑돌았다. 기아차의 실적은 말 그대로 ‘쇼크’였다. 기아차는 직전 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29.36% 줄어든 8294억 원에 그쳤다. 컨센서스에 비해서는 14.13%나 밑도는 충격적인 결과다.
이 밖에 화학·철강·기계·태양광 등 한국의 주력 산업과 성장 산업 전반에서 실적 부진이 나타났다.
증권사의 예상과 가장 큰 차이를 낸 곳은 케이피케미칼이었다. 케이피케미칼은 당초 매출 1조545억 원, 영업이익 54억 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됐지만 매출은 9605억 원, 영업이익은 74억 원 적자를 기록해 전망에 비해 237.2%나 미달했다.
또 두산인프라코어의 3분기 영업이익은 314억 원에 그쳐 컨센서스에 비해 70.83%나 못 미쳤다. OCI(-52.30%)와 삼성정밀화학(-21.48%)도 실적 추정치에 훨씬 못 미치는 경영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금호석유화학의 영업이익 역시 451억 원으로 예상치에 35.2% 못 미쳤다. 그 외 삼성테크윈(-32.3%)·제일기획(-24.3%)·에스원(-23.3%)·LG이노텍(-21.4%) 등도 영업이익이 예상치에 20% 이상 못 미쳤다.
대형사 중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기업은 LG하우시스(15.1%)·삼성전기(10.8%)·현대위아(7.7%)·삼성전자(7.2%) 등 손에 꼽혔다.
연결기준이 아닌 별도 재무제표 기준으로 실적을 발표한 기업들의 부진 역시 심각했다. 이스트소프트(-98.3%)·액트(-85.0%)·국순당(-74.7%)·에스에너지(-71.5%)·신세계I&C(-56.7%)·MDS테크(-53.0%) 등 예상치와 실제치의 차이가 마이너스 50% 이상인 곳도 많았다. 현대증권의 분석도 이와 비슷했다. 현대증권이 10월 30일 와이즈에프엔의 자료를 바탕으로 10월 30일 기준 실적 발표가 끝난 국내 주요 기업(69개 기업, 코스피 시가총액 기준 60% 차지)을 분석한 결과 실적 발표치가 컨센서스를 평균적으로 10.9% 정도 밑도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이들 기업 중 39개사(50.7%)가 영업이익 기준 어닝 쇼크(-10%)를 기록한 반면 영업이익 예상치를 5% 이상 웃도는 실적을 기록한 종목의 비율은 15.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기업 중 22개사(62.8%)는 시가총액이 1000억 원을 넘는 것으로 조사돼 대기업들 역시 실적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년 동기 대비 기업들의 실적을 비교했을 때는 영업이익이 감소한 곳이 더 많았다. 연결재무제표 기준 3분기 실적이 전년 동기와 비교 가능한 39개 기업 중 영업실적이 악화된 곳은 적자 전환 기업 1곳을 포함해 20곳(51.3%)으로 나타났다.
기업 실적 악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가 주요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실제로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의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7.4% 성장을 기록했다. 2009년 1분기(6.5%)에 비해 최저치다. 물론 지난 3분기 한국 경제성장률 역시 전 분기 대비 0.2% 성장, 2009년 1분기(0.1%) 이후 최저였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은 이미 증권사들의 실적 전망치가 올 하반기 들어 추가적으로 하향되며 기대치가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결과라는 데서 위협적이다. 당초 3분기 실적 시즌을 앞둔 시점에서는 “이미 눈높이가 낮아졌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런 전망이 빗나가자 주식시장도 연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9월 말 한때 2000(종가 기준)을 터치했던 코스피 지수는 본격적으로 실적 시즌이 시작된 10월 10일 하루에만 31포인트가 떨어졌다. 그 후 계속된 기업들의 어닝 쇼크에 11월 1일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8로 급전직하했다.
4분기 상장사 10곳 중 4곳이 전 분기 대비 순이익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말 그대로 충격이다. 임종필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실적 전망치를 합산한 결과 현재 4분기 및 2012년 연간 실적 전망치 모두 3분기와 마찬가지로 3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하향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애널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영업 이익 기준 2012년 전망치는 한 달 전 대비 1.9% 떨어졌고 4분기 전망치는 한 달 전 대비 2.6% 하향됐다. 쉽게 말해 4분기가 어닝 쇼크로 얼룩진 3분기보다 더 나쁘다는 얘기다.
4분기는 더 나빠질 듯
에프엔가이드가 분석한 주요 상장사 121곳(증권사 3곳 이상이 실적을 추정한 종목)의 4분기 실적 컨센서스를 살펴보면 삼성전자·현대중공업·LG화학 등 주요 기업 50곳의 4분기 순이익이 전 분기보다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조사 대상의 3분기 영업이익 합계는 31조4401억 원, 순이익은 24조5605억 원에서 4분기는 영업이익 31조4188억 원, 순이익은 24조3737억 원으로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업별로는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주요 기업 중 현대중공업의 수익성 악화 전망이 눈에 띈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조선업 수주가 부진하면서 현대중공업의 4분기 순이익(4911억 원 예상)은 3분기 순이익(7295억 원)보다 무려 39%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대우인터내셔널 역시 4분기 순이익이 533억 원(예상)으로 3분기 1296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이 같은 예측은 환율(원화 절상)과 맞물리며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국내 기업의 실적 전망과 연간 실적 목표의 원·달러 환율 예상치는 1100원대다. 따라서 환율 급락으로 주요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면 외형 성장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고정비용은 고정비용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수익성 감소는 더욱 가팔라진다.
여기에 대통령 선거와 미국 재정 절벽 등 경영 불확실성을 높이는 변수들이 4분기에도 줄줄이 예정돼 있어 실적 부진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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