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진화, 세계 공익재단 현장 보고서 8 도요타 재단
미국이나 유럽에 견줘 공익재단의 존재감이 미약했던 일본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본은 2009년 112년 된 낡은 법령을 개정해 ‘공익재단’ 제도를 도입했다. 재단 설립을 활성화하고 투명성과 독립성을 갖춘 곳에는 더 많은 자율성과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시민사회 등 제3섹터의 힘으로 일본이 직면한 문제를 풀자는 구상이다. 일본 1세대 재단의 대표 주자인 도요타 재단은 이런 흐름에 앞서간다. 2010년 공익재단 전환을 완료했으며 ‘서로 지탱하는 사회’ 만들기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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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빌딩 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신주쿠 미쓰이빌딩 37층 재단 사무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3개의 사각형이 맞물린 재단 로고가 눈길을 끈다. 1974년 도요다 에이지 전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설립 취지문에서 명시한 ‘생활·자연 환경’, ‘사회복지’, ‘교육 문화’ 등 재단의 3개 활동 영역을 상징한다.
오늘날 글로벌 1위 자동차 기업으로 꼽히는 도요타자동차의 역사는 도요다 에이지 전 회장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재단의 탄생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렇다. 도요다 에이지 회장은 1933년 도요타자동차를 창업한 도요다 기이치로의 사촌 동생으로, 1967~1992년 사장과 회장을 차례로 맡으며 도요타자동차의 전성기를 연 주역이다. 도요타를 세계 최고 기업으로 도약시킨 렉서스 브랜드가 바로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도요타 재단이 설립된 1970년대 초반 일본은 급격히 늘어난 자동차로 몸살을 앓았다. 1966년은 일본에서 ‘마이카 붐’의 원년으로 기록된다. 도요타가 베스트셀러 모델인 코롤라를 바로 그해에 선보였다. 이 차는 2007년까지 세계적으로 3500만 대 이상 팔려나갔다.
일본 내에서 자동차 소유자가 극적으로 늘어나면서 도로 정체가 악화되고 교통사고율도 치솟았다. 차량 소음과 공해에 따른 각종 질병도 급증했다. 자동차를 사회악으로 보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한 신문이 ‘자동차 박멸’ 캠페인을 벌일 정도였다.
1969년 도요다 에이지 당시 도요타자동차 사장과 여러 전문가들이 전국에 생중계된 의회 청문회에서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에 대해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도요타자동차는 사회적 이해와 지원 없이는 기업이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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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고도성장기가 무르익으면서 사람들은 성장의 혜택보다 성장의 그늘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업체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여론의 따가운 질타에 직면했다.
일본 재계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1973년 일본경제단체연합회는 총회에서 ‘복지사회를 위한 우리의 책임’이라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같은 해 봄 창립 40주년을 맞은 도요타자동차와 도요타자동차판매가 재단 설립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도요다 에이지 사장은 “모든 기업은 궁극적으로 성공을 사회에 빚지고 있다”며 “공공선에 기여함으로써 이러한 빚을 갚으려고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며 재단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1974년 10월 도요타자동차와 도요타자동차판매가 각각 20억 엔과 10억 엔을 출연해 도요타 재단이 설립됐다. 도요타자동차와 도요타자동차판매는 1982년 합병해 지금은 한 회사다. 재단의 자산은 매년 불어나 2010년 기준으로 403억5700만 엔(약 5558억 원)이다.
자산 규모로 보면 일본에서 6번째로 큰 재단이다. 이토 히로시 도요타재단 상무는 “재단 설립 후에도 도요타자동차가 몇 차례 추가 출연했다”며 “4년 전 50억 엔을 기부한 것이 가장 최근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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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립 취지에 따라 도요타 재단은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전체 이사회 멤버의 3분의 2를 도요타자동차와 관계없는 외부인이 차지하고 있다. 2009년 공익재단 제도 도입과 함께 ‘공익재단은 특정 기업을 위해 활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률로 규정돼 지금은 많은 재단들이 도요타 재단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
도요타 재단은 연구자 및 시민 단체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공모해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설립 이후 지금까지 700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주요 지원 프로그램은 연구 보조금 프로그램, 아시아 이웃 프로그램, 국내 보조 프로그램 등 3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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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재단의 활동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시아 이웃 프로그램이다. 도요타 재단은 출범 초부터 아시아, 특히 동남아를 타깃으로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쳐 왔다.
1976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된 ‘이웃을 알자’ 프로그램은 아시아 국가들의 문학작품을 일어를 포함한 다양한 아시아 언어로 번역해 보급하는 것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현재 진행 중인 아시아 이웃 프로그램은 2005년 처음 시작됐다. 아시아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 노력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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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 1층은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에 활용하고 2층은 젊은 예술가들의 숙소로 임대한다는 구상이다. 도요타 재단은 일본 내 지역사회 시민 활동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 중 하나다.
도요타 재단이 추구하는 가치는 2010년 발표한 ‘비전 2010’에 잘 담겨 있다. 이토 상무는 “도요타 재단은 ‘부드러운 인연’을 만들어 서로 지탱하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연을 뜻하는 키즈나(きずな)는 단순한 연대감보다 훨씬 강한 의미”라며 “고령화나 농촌 문제, 공해 문제 등 지역사회 공동체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 이토 히로시 도요타 재단 상무
“정부·기업 못하는 일 제3섹터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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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복구 사업도 하고 있는데.
지진 직후부터 다양한 지원을 해왔다. 학교와 집이 무너져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가장 큰 문제다. 이들에게 공부 장소를 제공하고 대학생들을 가정교사로 파견하는 활동을 하는 지역 시민 단체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
지원 대상은 어떻게 결정되나.
공모가 원칙이다. 매년 관심 주제가 바뀐다. 작년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 매년 300건 정도 응모가 들어오고 그중 30~40건을 지원한다. 사무국이나 외부 선정위원회에서 1차 심의를 하고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한다.
투명성과 독립성을 어떻게 유지하나.
이사회 자료가 전부 인터넷에 공개된다. 예산안이나 기획서 모두 예외가 없다. 이건 공익재단이 의무적으로 지켜야 되는 법 규정이기도 하다. 이사 3분의 2를 도요타와 관계없는 외부인이 맡는다.
일본 재단들의 상황은.
재단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진다. 정부나 기업이 못하는 일을 제3섹터가 해낼 수 있다는 분위기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숫자로만 보면 버블 붕괴 후 정체 상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재정 운영도 쉽지만은 않다.
인터뷰 : 다니카 히로시 일본재단센터 전무
“112년 만의 제도 개선… 재단 전성기 열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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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재단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
2009년 공익재단 제도가 도입됐다. 지금까지 1897년 만들어진 법령에 따라 각종 재단들이 운영됐는데 그게 112년 만에 바뀐 것이다. 기존 법인들은 바뀐 제도에 따라 내년 말까지 공익재단으로 전환할 곳을 전환해야 한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재단 설립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다. 누구나 재단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익재단으로 인정받으면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진다. 과거에는 한 번 정한 설립 목적이나 사업 내용을 바꿀 방법이 없었다. 재단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도 늘어나 시민들의 참여가 늘어날 걸로 예상한다.
공익재단이 되는 조건은.
투명성이나 독립성과 관련한 여러 조건이 법률에 세세하게 규정돼 있다. 그걸 모두 충족시켜야 공익재단이 될 수 있다.
법 개정의 배경은.
그동안 일본에서 공익 활동은 주로 정부와 기업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정부나 기업이나 힘이 약해지고 있다. 앞으로 일본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참여와 힘이 필요하다. 재단이 그 통로가 될 수 있다.
도쿄(일본)=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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