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과 대학생들이 한 식료품 가게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손님들의 시선을 끌기에 가장 좋은 입구 쪽에 잼 시식 코너를 만들고 한 시간 간격으로 처음에는 6종류의 잼을, 그다음에는 24종류의 잼을 제공했다.
실험 결과 6종류의 잼을 제공할 때와 24종류의 잼을 제공할 때 판매량이 크게 달라졌다. 24종류의 잼이 진열된 시식 코너를 거친 손님들은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상당히 헷갈려했다. 그들은 잼 진열대에서 이 병 저 병을 살펴보다 그냥 빈손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6종류의 잼을 시식한 손님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잼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안다는 듯 진열대로 성큼성큼 걸어가 원하는 종류를 골라 계산대로 향했다. 실제로 30%와 3%로 구매율이 엇갈렸다. 이는 선택지가 많을수록 구매 욕구가 커지고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일반 상식과 정반대 결과다. 심리학 전문가들은 선택지가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선택이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역사상 유례 없는 물질적 풍요와 자유에도 불구하고 많은 현대인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 숨어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려야 하는 결정의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후회는 조금씩 더 커지고 이미 선택한 것에 대한 만족은 조금씩 작아진다. 현대인은 선택과 정보의 만성적 과잉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해법은 ‘현명한 포기’와 ‘절제의 미덕’이다. 참된 향유는 부족함에서 생기고 ‘더 적게’가 때로는 ‘더 많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바스 카스트 지음┃정인회 옮김┃304쪽┃한국경제신문사┃1만4000원
이종우의 독서 노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인문학의 눈으로 본 제주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jwlee@iminvestib.com 1년에 국내 지역 중 어디를 제일 많이 가는지 따져본 적이 있다. 의외로 제주였다. 일 때문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놀러 가는 경우도 많았다. 동선은 간단하다. 공항~호텔~공항, 여기에 하나 더하면 골프장. 아마 필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영주십경(瀛州十景). 제주 시인 이한우가 꼽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치 10개다. 성산의 해돋이, 사라봉의 저녁노을, 백록담의 늦겨울 눈, 영실의 기이한 바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제주 시내에 숙소를 잡은 사람이라면 한라 수목원에서 아침 산책을 하고 사라봉에서 저녁을 맞는 게 가장 좋다.
오름은 제주 사람 그 자체다. 오름은 흰죽을 끓일 때 여기저기에 부글거리는 기포가 생기는 것처럼 화산섬인 제주가 만들어질 때 생긴 기생화산이다. 제주 어디를 가나 오름이 없는 곳이 없다. 제주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오름을 보고 자라고, 거기에 의지해 삶을 꾸리며, 오름 자락 한쪽에 산담을 쌓고 떠나는 이의 뼈를 묻는다. 오름이 없는 제주는 상상할 수 없다.
해녀와 귀양에 대한 기록이 없는 제주도 별로다. 해녀가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고려사’에 탐라군 관리자가 ‘남녀 간의 나체 조업을 금한다’는 금지령을 내린 걸 보면 탐라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주 여인들은 7~8세부터 물질을 연습하기 시작해 15세 전후가 되면 해녀로 한몫했다. 때론 해녀들의 삶은 고단하고 지난했다. 평생 전복을 공물로 바치는 노역을 수행해야 했는데 조정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가렴주구가 조선 왕조 말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제주에 유배 온 사람들은 매일 매일 한양에서 어명이 내려올 것을 기대하며 바다 너머를 쳐다봤다. 배가 오면 결과는 둘 중 하나다. 정국이 나빠져 사약이 내려지든 아니면 정국이 풀려 석방되든지. 그중 추사 김정희도 있었다. 유배 중에서도 센 형벌인 위리안치에 처해졌기 때문에 정약용 같이 자신의 학문을 집대성하지는 못했지만 유명한 그림 ‘세한도’를 제주에서 남겼다.
제주는 자연이 있고 문화가 있다. 그리고 훈민정음에 가장 근접한 방언도 있다. 올레길을 갈 때 제주를 풀어 놓은 인문 서적을 끼고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유홍준 지음┃469쪽┃창비┃1만8000원 누구나 저마다의 실패를 안고 산다
김서곤 지음┃272쪽┃휴먼큐브┃1만4000원 김서곤 솔고바이오메디칼 회장의 성공 스토리다. 김 회장은 국산 수술 기구가 없어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품에 의지해야 했던 1970년대 국내 최초의 수술 기구 제조회사 솔고를 창업했다. 솔고는 꾸준한 연구·개발 투자와 인재 육성으로 국내 외과용 수술 기구의 판도를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그 후 생체용 임플란트에 이어 전통 온돌 효과를 접목한 온열 매트까지 개발해 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상경해 끝없는 도전으로 기적을 일군 김 회장의 성공 철학이 담겨있다.
뉴스의 거짓말
쓰쓰미 미카 지음┃서금석 옮김┃216쪽┃푸른길┃1만2000원 일본 출신 저널리스트의 미디어 비평서다. 저자는 미국 노무라증권 근무 중9·11 동시 다발 테러를 경험하면서 미디어의 생리에 눈을 떴다. 당시 언론은 매일같이 전쟁과 그 배후에 대한 기사를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내보냈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청년들은 들끓는 애국심으로 전쟁터에 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대량 살상 무기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숨겨진 진실을 찾는 방법을 모색한다.
의사 김재규
김성태 지음┃336쪽┃매직하우스┃1만5000원 저자는 1979년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한다. 박 대통령의 죽음으로 세계적으로 악명 높던 18년 유신 체제가 무너지고 대한민국에도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바람이 찾아온다. 하지만 독재자는 여전히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추앙받고 김재규는 대통령 시해범 취급을 받고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재판 당시 변호인들의 증언을 비롯해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동원해 김재규의 인간적 면모와 거사의 배경을 복원해 냈다.
특산물 기행
채희숙 지음┃464쪽┃자연과생태┃2만2000원 대한민국 특산물 20년의 변천사를 담았다. 1990년대 여행 전문 기자로 전국을 누볐던 저자가 20년 전 취재 수첩을 꺼내들고 옛길을 다시 따라갔다. 20년 동안 강산이 바뀌었지만 우리의 역사와 정신을 대변하는 특산물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특산물은 한국의 자연과 한국인의 정신에서만 성장하고 완성될 수 있었던 절대적 원형질이다. 인간문화재가 빚어내는 한국의 전통 공예품에서부터 생활 속에 함께 발효된 한국의 맛, 우리 땅과 바다가 길러낸 지방 특산물 등 전국 60가지 특산물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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