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4년 만에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14%)에 진입하고 12년 만에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에 진입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인 일본보다 훨씬 빠르다.

2000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7%를 넘어 ‘고령화사회’에 도달한 우리나라는 2018년 고령사회 진입 후 20 26년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되는 등 ‘LTE급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게다가 기대 수명도 대폭 연장됐다. ‘100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처럼 이른바 실버 세대의 급증으로 시장 수요가 증가하면서 신성장 산업으로서 실버산업(고령친화산업)에 대한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60대이상 연령층 카드소비 증가.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고객들이 구매한 물건을 계산하고 있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60대이상 연령층 카드소비 증가.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고객들이 구매한 물건을 계산하고 있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실버 세대 급증으로 시장 수요 증가

이미 정부는 2006년 고령친화산업진흥법을 제정하고 2008년 고령친화산업지원센터를 지정하는 등 실버산업을 성장 동력 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최근 들어 실버산업의 성장에 더 큰 기대감이 쏟아지는 것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가시화되면서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1955~1963년에 태어난 인구 집단으로, 2012년 현재 전체 인구의 14.3%(714만 명)를 차지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국민소득, 대학 진학률, 거주 형태, 근로시간 등 라이프스타일에서 과거 세대와 다른 성향을 갖고 있고 경제력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 베이비부머 세대는 국내 토지의 42%, 건물의 58%, 주식의 20%를 소유하는 등 막강한 소비력도 보유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가장 강력한 소비 계층으로 2차 베이비부머 세대로 분류되는 1968~1974년생들도 60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2.1%에 해당한다. 즉 전체 인구의 26.4%를 차지하는 1차와 2차 베이비부머들이 2020년부터 순차적으로 실버층에 진입함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생산과 소비의 중심 계층인 1,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실버층 진입으로 ‘고령자=가난한 비주류층’이라는 통념이 점차 희석되고 은퇴 세대는 ‘부유하고 활동적이며 건강하게 장수하는’ 소비 그룹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베이비부머 세대는 현재의 순자산과 소득으로 가늠할 때 자산과 소득수준이 이전 세대보다 우월한 상태로 실버층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기준 1차와 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가구주인 가계의 순자산은 2006년 대비 각각 18.0%, 46.2% 증가하는 등 큰 폭으로 신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의 순자산은 1.6% 증가에 그쳤고 특히 65세 이상 가계는 오히려 11.1% 감소해 대비를 이뤘다. 소득 측면에서도 베이비부머 세대 가계의 연소득과 증가율 모두 월등하다. 2011년 1차와 2차 베이비부머 가계의 연소득은 각각 5067만 원과 4902만 원으로 2006년에 비해 28.2%, 32.8% 늘었다.

역시 같은 기간 전체 가계의 연소득은 17.3% 증가했고 65세 이상 가계는 9.3% 감소했다. 노후 준비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등 베이비부머 세대는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능동적 소비 주체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연금 가입률은 이전 세대보다 높은데 국민연금의 경우 1차 베이비부머는 91.2%, 2차 베이비부머는 95.1%에 달할 정도다.
[실버 비즈니스의 미래] 전환기 맞는 한국의 실버 비즈니스, 잠재적 실버 세대 강력한 소비층 ‘부상’
실버층 진입 앞둔 ‘대기자’ 많아

상황이 이러니 우리나라 실버산업의 급성장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버산업이 발달한 일본은 현재 실버 계층에 속하는 인구가 많은 구조인 반면 우리나라는 실버층 진입을 앞둔 ‘대기자’들이 많은 구조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실버산업의 성장 속도 역시 더 빨리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도 높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고령친화산업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국내 실버산업의 규모는 2010년 33조2241억 원으로, 2020년에는 124조9825억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로 따지면 무려 14.2%에 달한다.

실버산업의 주축인 9대(요양·의약품·식품·화장품·의료기기·용품·금융·주거·여가) 산업별로 보면 2010년 현재 금융(31.8%)·여가(22. 9%)·식품(14.7%)·의약품(9.2%)순, 202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을 비교하면 금융(19.2%)·화장품(17.7%)·요양(17. 2%)·의약품(13.5%)·식품(13.0%)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하면 실버산업 중 금융 산업이 전체 시장의 절반 가까이 되는 48.8%를 차지하고 그 뒤를 이어 식품(13.3%)·여가(13.0%)·요양(10. 0%) 등이 차지하는 것으로 전망된다.
[실버 비즈니스의 미래] 전환기 맞는 한국의 실버 비즈니스, 잠재적 실버 세대 강력한 소비층 ‘부상’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실버 비즈니스는 초기 단계다. 전문가들은 이미 눈앞에 와 있는 고령화의 현실을 비즈니스 기회로 활용하는 선제적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실버층의 외적 확대뿐만 아니라 소비력에서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기존 혹은 잠재적 실버 세대의 경제력은 벌써부터 확인되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이 신한카드와 손잡고 연령별·업종별 카드 사용액을 분석한 결과 1차 베이비부머와 60세 이상의 신용카드 사용액 비중이 약 30%로 4년 전 같은 기간보다 10% 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구매력은 거의 모든 업종에서 확인됐으며 심지어 취약 부분이라고 예상되는 인터넷 전자상거래와 홈쇼핑 등에서도 60세 이상의 카드 사용액은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한 역량 강화도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2035년이면 세계 고령 인구 10명 중 약 3명이 한중일 3국에 거주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문화·신체적으로 공통점이 많은 한중일 3국의 지리적 특성을 활용해 동아시아 실버 시장에 적극 진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면 국내 실버산업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삼성경제연구소는 이와 관련, 최근 ‘실버 세대를 위한 젊은 비즈니스가 뜬다’는 보고서를 통해 ‘실버 세대를 위한 젊은 비즈니스 5선’을 발표했다. 이의 근거가 되는 미래 실버층의 5대 소비 트렌드도 제시했다.

과거 실버층과 다른 성장 환경, 경험, 경제적 여건, 관심사 등을 반영한 결과다. 5대 트렌드는 미래 실버 생활의 결정 요인으로 예상되는 건강·가족·여가·사회참여·디지털라이프에서 도출됐다.

첫 번째 건강 트렌드는 신체 활력과 자존감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질병 예방은 기본이고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라면 비용이 들더라도 투자를 주저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이가 들고 신체 기능이 쇠퇴할수록 건강검진이나 적극적 질병 치료에 대한 니즈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심리적 건강’도 소비 촉진의 주요인으로 전망된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외환위기, 글로벌 경제 위기 등을 겪으며 극도의 긴장감과 소외감 등을 경험한 세대다. 최근 우울증 등으로 실버층 자살이 급증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만큼 ‘마음 관리’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사전 질병 예방을 통한 건강 수명 연장과 마음 건강 서비스 상품이 증가할 전망이다.

정신건강 테라피, 힐링 상품 관련 산업과 업종들이 개발되고 확대되는 식이다. 맞춤형 특정 건강관리 프로그램 등 육체적 질병이 없더라도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원활한 신체 활동을 돕는 새로운 사업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외모·체형 관리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항노화 관련 비즈니스가 급속히 성장할 전망이다.
<YONHAP PHOTO-0878> '커피 나왔습니다'
    (서울=연합뉴스) 배정현 기자 = 8일 오전 서울 경운동 실버북카페 삼가연정에서 열린 실버바리스타 커피 시음회에서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커피를 손님에게 내어놓고 있다. 이번 커피 시음회는 서울시노인취업훈련센터 실버바리스타 훈련과정 수료생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발표하기 위해 마련됐다. 2011.8.8
    doobigi@yna.co.kr/2011-08-08 11:11:57/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커피 나왔습니다' (서울=연합뉴스) 배정현 기자 = 8일 오전 서울 경운동 실버북카페 삼가연정에서 열린 실버바리스타 커피 시음회에서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커피를 손님에게 내어놓고 있다. 이번 커피 시음회는 서울시노인취업훈련센터 실버바리스타 훈련과정 수료생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발표하기 위해 마련됐다. 2011.8.8 doobigi@yna.co.kr/2011-08-08 11:11:57/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31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고 있는 안티에이징엑스포에서 관람객들이 행사장에서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20831
31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고 있는 안티에이징엑스포에서 관람객들이 행사장에서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20831
‘실버’를 드러내지 않는 게 성공의 관건

두 번째, 가족 관계에 있어서는 직접 봉양에서 원거리 효도로 전환되는 분위기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70%가 부모의 생활비를 부담하는 등 부모 봉양에 책임을 느끼지만, 반면 자신의 노후에는 자식으로부터 봉양을 기대할 수 없거나 기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베이비부머의 생활 실태 및 복지 욕구(2010년)’에 관한 설문 결과를 보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93.2%가 ‘노후에 부부끼리, 혹은 혼자 살고 싶다’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향하는 가족 관계는 달라지지만 효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만큼 실버층의 자발적 독거가 확산될 수 있도록 원거리의 자녀를 대상으로 한 효(孝)상품 시장이 확대될 전망이다.

정보기술(IT)을 통한 안부 확인, 응급 대응 등 인간미가 느껴지는 생활 밀착형 맞춤 서비스가 그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건강관리 및 안전 상품, 일상생활 보조 서비스는 물론 인간적 유대감을 촉진하는 상품에 대한 니즈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실버 비즈니스의 미래] 전환기 맞는 한국의 실버 비즈니스, 잠재적 실버 세대 강력한 소비층 ‘부상’
세 번째, 현재 실버산업에서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여가는 향후 더 적극성을 띨 것으로 보인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문화를 만끽한 세대로, 이전 실버 세대보다 문화적 눈높이가 크게 향상된 상태다. 따라서 경제활동에 전념하느라 시간적 제약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각종 스포츠, 문화 활동, 자기 계발 등에 관심을 갖고 적극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단순 여가에서 벗어나 의미 있게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문화’로 거듭난 휴식을 제공하는 산업이 발달할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에서 이미 등장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역사, 지역 문화, 음악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상품 등이 대표적인 예다. 실버 세대의 호기심과 지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기존 교육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의 확대도 전망된다.

네 번째, 자신이 보유한 기술과 노하우·경제력 등을 기반으로 사회 기여에도 활발한 활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 지도층일수록 사회 봉사 활동에도 의욕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말 국내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은퇴 후 가장 선호하는 활동은 여행(78%)에 이어 사회 봉사(74%)가 차지할 정도였다.

실버 세대의 사회참여 방식이 단순 사교에서 실질적 기여 지향으로 바뀌면서 ‘경로당’으로 대표되던 실버층의 커뮤니티는 향후 지역 현안에 동참하는 ‘온·오프라인 동호회’가 활성화될 전망이다. 실버층의 경험이나 지식을 지역사회의 현안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연계한 사회참여 비즈니스는 고령자의 취업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도 고무적이다. 지역에 거주하는 은퇴 자원과 인력을 활용하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해 보는 것도 좋다.

마지막으로 최신 IT에 해박하고 이를 일상적으로 자유롭게 활용하는 베이비부머의 실버층 진입으로 ‘실버 세대=디지털 둔감층’이라는 편견이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맞춤형 IT 기기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선 기술은 물론이고 가족과의 고밀도 소통, 이웃과의 인간적인 유대 등 실버층 감성에 맞춘 기기가 그것. 실버 세대를 위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및 온라인 쇼핑몰 등도 새롭게 부각될 전망이다.

실버 비즈니스에서 한 가지 명심할 점은 절대 ‘실버 세대용’이라는 점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대의 변화와 함께 현재의 60대는 과거의 60대와 다르다. 스스로 ‘실버 세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국내 한 실버 전문 여행사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실버 세대 맞춤을 내세운 상품이 상승세였지만 요즘은 주춤하다”며 “과거 실버 세대가 해외여행을 평생 한 번 하는 세대였다면 요즘 실버 세대들은 여행 경험도 풍부하고 체력 및 경제력도 있어 일반 여행사의 다양한 상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