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렇다. 삼자냐, 양자냐에 따라 조사 결과가 뒤집히기도 하고 같은 기간 같은 방식의 조사도 결과가 갈린다. 그래서일까. 그 어느 선거 때보다 여론조사 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고 이에 따라 캠프 진영도 일희일비한다.
여론조사의 판이 커진 것과 동시에 여론을 설득하고 판세를 좌우하는 힘을 갖게 된 모양새다. 한경비즈니스가 여론조사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이 때문이다. 수치를 통해 민심을 들여다보는 이들이 이번 대선을 어떻게 예측하고 있을지 귀를 기울여봤다. 좌담회 참가자
지용근 글로벌리서치 대표
김상범 월드리서치 상무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이사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 추석 이후 대선 판도를 큰 흐름에서 짚어본다면 어떻습니까.
윤희웅 :현재 여론조사가 양자 구도와 삼자 구도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삼자 구도에서는 박근혜 대선 후보가 앞서 있는 것이 여실히 확인되고 있죠. 하지만 양자 대결은 경쟁 구도로 진행되며 후보 개개인의 지지도라기보다 진영 지지도나 세력 지지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지용근 :지금은 세 후보의 컨벤션 효과(정치 이벤트 직후 지지율이 오르는 현상)가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에서 레이스를 펼치는 상황입니다. 변수는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투표장에서와 같을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조사 대상자들 중에는 투표장에 가지 않는 사람이 꽤 있죠.
배종찬 :저는 현재 대선 판세가 아주 재미없는 구도라고 봅니다. 최근 삼 주간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누가 더 높고 낮은지 얘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변화가 없는 상태입니다. 후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사실 오차를 생각하면 그대로라고 볼 수 있죠. 추석 이후 민심은 답보 상태고 여기서 누가 이 적막을 깰 것인지가 중요해 보입니다.
김상범 :일정 부분 혼조세로 왔던 것이 최근 정수장학회와 비밀 대화록 기점을 통해 변화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 비밀 대화록이나 정수장학회 문제는 사실 새누리당이 국면을 전환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안철수 후보라는 무소속 후보를 전체 논의의 틀에서 배제하려는 전략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사 결과는 일반적인 박스권 내에서 움직이는데, 충성도라고 할까요. 꼭 찍어야 한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안 후보가 과거 출마 전이나 직후에 비해 조금 가라앉은 측면이 있습니다.
17대 대선에선 성장이 핵심이었는데, 이번 대선의 화두랄까요. 여론을 통해 본 시대정신은 무엇일까요.
배종찬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화두로 당선됐는데 사람들이 막상 겪어보고 많이 실망했죠. 헌법 119조 1항과 2항 중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1항에 방점을 찍었다면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은 2항에 실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2항은 2항이고 1항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경제 민주화를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과연 경제성장이 없는 경제 민주화를 원할까요. 경제 민주화를 고려한 경제 설계를 우리 시대는 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용근 :얼마 전 제가 40대 주부들을 초청해 직접 좌담회를 진행해 봤습니다. 한 분이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남편이 중소기업 임원인데, 물가는 계속 오르는 반면 월급은 3년 동안 오르지 않았다고요. 아이 두 명의 학원비를 낼 돈이 없다고 얘기하면서 울어버렸어요. 그때 옆에 있던 주부들도 다 울었죠. 지금 시대가 이런 것 같습니다. 조사하는 사람들은 바닥 민심을 알거든요. 이분들의 눈물을 누가 어떻게 닦아줄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과연 누가 해줄 수 있을까요. 유력한 세 후보의 강점과 약점을 짚어볼까요.
김상범 :박 후보는 정계 입문 이후 야당 당수로서의 활동이 워낙 컸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통해 내 표를 얻는 방식에 익숙해 있습니다. 반면 문재인 후보와 안 후보는 정치적인 공간에서 내공을 쌓아 왔던 분들이 아니죠.
이런 차이가 현재 상황을 밋밋하게 끌고 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좀 더 지지를 얻으려면 대중의 주목을 끄는 이슈를 발굴해 적기에 내세우는 게 중요한데 이런 부분에서 서로가 몸조심하고 있어요. 이 부분은 문 후보나 안 후보와 같이 도전하는 입장에서 보면 제약점입니다.
지용근 :이와 관련해 직접 조사해 봤더니 박 후보의 가장 큰 강점은 정치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5년 전에는 품성이 좋다고 나왔는데 지금은 다른 후보에게 밀리고 대신 경험 쪽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문 후보는 경제적 약자를 잘 보살필 것 같다는 게 첫 번째 강점으로, 두 번째는 도덕적이고 깨끗한 성품으로 조사됐죠. 안 후보도 비슷한데 도덕성과 품성이 좀 더 높게 나왔어요. 저는 이게 좀 위험하다고 봅니다. 품성이 높은 후보는 검증 과정에서 걸리면 쉽게 무너질 수 있어요. 안 후보는 계속 공자님 같은 말씀을 해왔기 때문에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요. 개인적으로는 레이스를 진행하면서 안 후보의 지지율이 빠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배종찬 :사람들은 새로운 걸 봤을 때 놀라워하고 좋아하는데 세 후보 모두 새로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먼저 박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죠. 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죠. 안 후보는 안철수 백신의 안철수예요. 박 후보가 정치 경험이 풍부하다고 하지만 박정희의 딸로서 오랫동안 여당에 머물렀던 것, 선거에서 몇 번 승리를 이끌어낸 것 이외의 정치 경험이 있나요. 문 후보는 느닷없이 대선 후보가 됐어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문 후보가 보여준 게 없죠. 예전에 보면 정치할 마음이 없던 사람이에요. 마지막으로 안 후보는 뭔가 새로울 것 같지만 사실은 새로운 게 없고 너무나 화려한 길만 걸었던 사람이죠.
서울대 의대를 나온 아버지 밑에서 서울대 의대를 나왔고, 서울대 의대를 나온 여자를 만나서 미국 초일류 명문 대학에 갔고 한국 초일류 대학의 교수를 연이어 역임했어요. 세 후보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업보를 내려놓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단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상범 :이명박 정부에서 나타난 큰 문제는 소통의 문제, 그리고 과정과 절차에 대한 무시였어요. 또한 과거 토목공학적인 선거 이슈들을 들고나왔었죠. 이런 것들을 반성하는 구조에서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 감내해야 할 제약 조건이 있는 거죠. 이것이 현재의 재미없는 선거를 이해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 경제 민주화를 말하지만 공통점을 강조하다 보니 차별성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재벌 개혁이나 남북 관계 역시 대동소이한 관점에서만 얘기하기 때문에 차별성을 내보일 수 있는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하지 못하고 있죠.
윤희웅 :박 후보는 아버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박 후보의 고정 지지층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는 긍정적 유산과 부정적 유산이 모두 있거든요. 긍정적 유산은 단순히 향수가 아니라 국가 발전을 이룬 것인데, 사실 이 부분은 지난 대선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가 다 가져간 측면이 있어요. 오히려 지금은 남아 있는 부정적 유산이 박 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죠.
직접적으로 지지율에 타격을 주지 않더라도 이 문제 때문에 박 후보가 정책·공약 행보를 꾸준히 하면서도 정수장학회라든지 과거사나 역사 인식이 불거질 때마다 정상적인 캠페인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문 후보는 정치인 문재인으로서 향후 정치적 비전, 즉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대중에게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캠페인을 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고 안 후보는 아무래도 국정 경험의 부재가 약점으로 지적되죠. 남아 있는 큰 이벤트가 단일화일 것 같습니다. 두 후보 간 단일화가 가능할 것인지, 그때 박 후보를 이길 수 있을 것인지 의견이 궁금합니다.
윤희웅 :박 후보가 40% 지지율을 유지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나머지 범야권 후보가 합리적인 플레이어들이라고 가정했을 때 단일화는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논란들은 있지만 단일화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종찬 :단일화는 두 가지 국면에서 고려돼야 할 것으로 봅니다. 하나는 후보자 개인의 판단이고 두 번째는 유권자의 판단입니다. 유권자들의 성향은 여야로 나뉘어 있죠. 지금 구조로는 단일화를 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데, 만약 단일화하지 않고 삼자 구도로 가서 박 후보가 당선됐을 때 야권 지지자들이 남은 두 후보를 아름다운 완주자로 볼 것인지, 정권 교체를 해내지 못한 후보로 기억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하겠죠. 아무리 좋은 명분과 슬로건을 가지고 있더라도 정권 교체와 이반될 수 없다고 본다면 단일화로 가야 하는 국면이라고 봅니다.
김상범 :조사해 보면 단일화해야 한다는 것에 방점은 찍혔는데, 그 조건이 뭘까 하는 부분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단일화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적당한 지지율 차이가 발생해야 하죠. 두 후보 간 지지율이 비슷하다면 후보만의 문제가 아니라 후보를 떠받치는 조직 세력의 압력에 의해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것은 장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단일화 선호도를 보면 문 후보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데요. 이때 안 후보의 지지 세력이 옮겨오기보다 박 후보 쪽으로 이탈할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희웅 :과거에는 중도층이나 무당파층 등 선거 막판에 대세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경향을 보였는데, 최근에는 독자적인 경향을 보여주고 있어요. 남은 기간 단일화 국면에서 문 후보가 안 후보만큼 중도 무당파에 대한 소구력을 얼마나 보여줄 것인지가 관건이 되겠네요.
김상범 :역으로 안 후보로 단일화됐을 때는 투표율을 얼마만큼 보장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있겠죠.
윤희웅 :문 후보를 지지하는 민주당 지지층과 진보 세력의 가장 큰 목적함수는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데 있기 때문에 안 후보를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김상범 :우려되는 것은 두 세력 간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겠느냐예요. 실제로 당선되게끔 도와주고 지지하고 참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느 쪽이든 부정적인 요인을 간과할 수 없죠. 현재 나와 있는 공약을 어떻게 접목해 하나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도 두 후보 간 방점이 다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단일 후보로 만들어 내는 게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용근 :서울시장 선거 때를 보면 당시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에 들어오면서 지지도가 올라갔죠. 조직 표라는 게 있기 때문에 만약 안 후보가 되더라도 민주당 조직이 들어오겠죠.
김상범 :안 후보 관점에서 본다면 단일화 논의가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민주당이 단일화 논의 경험이 있고 내부 전략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에요. 기술적 측면에서도 안 후보가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게 사실이죠. 과거 선거에서는 지역주의 영향이 컸던 반면, 이번 선거에서는 과거에 비해 약해진 모습인데요.
윤희웅 :과거에 비해서는 확실히 약화될 가능성 크다고 봅니다. PK(부산·경남) 지역에서의 영남 벨트의 이탈 현상이 강화된 것이 대표적이고, 이것은 단지 이번 대선을 앞두고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미 2010년 지방선거에서 강하게 나타났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충청 지역과 같이 정서적으로 무조건 지지하는 게 아니라 도움이 되는 공약을 내거는 정당을 선택하는 실리적 지역주의의 출현이죠. 호남 지역에서도 안 후보에 대한 지지를 통해 민주당에 대한 절대적 지지가 약화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요. 전반적으로 역대 대선 중 지역주의가 가장 약화된 흐름을 나타낼 것으로 봅니다.
지용근 :대신 연령별 격차가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40대가 여론 선도층입니다. 과거 펩시와 코카콜라 싸움이 치열할 때 펩시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을 타깃 마케팅한 결과 전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죠.
그들처럼 젊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펩시를 사먹기 시작한 거죠. 마찬가지로 결국 이번 선거는 지역과 관계없이 누가 40대의 니즈를 잘 맞추느냐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각 후보 진영에 40대 연구팀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종찬 :과거 1970~1980년대만 해도 지역주의가 강했죠. 1990년대에는 이념의 시대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부터는 학생들 사이에서 운동권·비운동권의 개념이 없어졌죠. 이제는 경제가 중요한 가치가 됐고 문화적 차이가 발생하면서 세대 투표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살펴봐야 할 점은 서울 교육감 선거와 경남지사 선거가 같이 맞물리고 있다는 겁니다. 수도권은 교육감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크게는 세대의 숲에서 지역의 나무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상범 :지역적 문제는 약화될 텐데 과연 선거 전략상에서도 약화될 것인지는 좀 다를 수 있습니다. 박 후보 진영의 내부를 보면 뉴라이트 등 지역적 대결 구도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이 포진돼 있죠. 대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제가 흥미롭게 보는 점은 각 후보들이 대중적인 연설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세 후보가 TV 토론회를 열 때 어떤 식으로 얘기를 주고받고 유권자에게 확인 도장을 받느냐가 후보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중요할 계기가 될 겁니다. 과거에 비해 TV 토론회가 갖는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은 관전 포인트를 뭐라고 보십니까.
지용근 :저는 이번 선거가 투표율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2~3% 차이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배종찬 :투표율이 높을 때 야권 후보에게 유리하다고 가정한다면 지금 20대 지지를 가장 많이 받는 후보가 바로 안 후보죠. 또한 안 후보는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전에 국민의 관심 속에 등장해 지금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았던 사람이에요.
과거 2002년 노무현 후보가 경선에서 높은 지지율을 받다가 지방선거 가까이 가서 10% 지지율에서 다시 단일화 과정을 통해 40% 이상을 회복하는데요, 과연 안 후보의 복원력이 얼마나 나올 것인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윤희웅 :박 후보가 자신의 이미지를 미래로, 민주당을 과거로 규정하면서 일정 부분 효과를 보기도 했는데요, 안 후보의 등장으로 그 프레임이 생명력을 잃었거든요. 남은 기간은 안정 리더십과 불안정 리더십 그리고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구도 싸움에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의 문제로 전개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 프레임 싸움도 지켜볼 만하죠.
진행=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정리=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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