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4세 유아 보육료를 지원받으려면 소득 하위 70%에 들어야 한다. 3인 가족은 월소득 454만 원까지다. 이 월소득엔 월급뿐만 아니라 부동산·금융재산·자동차 등 보유 재산이 소득으로 환산돼 포함된다.
이 가운데 자동차의 소득 환산법은 크게 두 가지다. 배기량 2500cc 미만이거나 6년 이상 된 승용차는 ‘일반 재산’으로 환산, ‘차량가액의 4.17%’를 3으로 나눠 소득액으로 친다. 차량가액 2400만 원이라면 33만3700원이다.
반면 배기량이 2500cc를 넘고 6년 미만인 승용차는 ‘차량가액 100%’를 3으로 나눠 계산한다. 같은 차라면 800만 원이 월소득에 포함된다. 이때 자동차 한 대만으로 소득 하위 70%의 소득 인정액을 훌쩍 넘겨버린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가 보육료 수급의 최대 복병이 되는 실정이다.
제도 간 형평성도 지적된다. 기초노령연금은 배기량에 상관없이 차량가액 5%를 연소득으로 친다. 한 전문가는 “노령연금은 자동차 소유 기준이 덜 강하다”며 “하지만 유아를 데리고 있는 가구가 노령 가구보다 자동차를 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란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자동차 기준의 골격은 2003년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재산의 소득환산제가 도입될 때 생겼다. 자동차는 부동산 다음으로 큰 재산으로 여겨져 ‘특별 대우’를 받았다. 재산 조사 때 자동차를 별도의 재산 항목으로 두고 소득환산율 100%를 부과하는 등 기준이 매우 엄격했다. 승용차를 가졌다면 빈곤층으로 볼 수 없다는 국민 정서 때문이다. 중형차 타는 사람은 수급을 받지 못하게 1500cc라는 배기량 기준도 걸었다.
하지만 이 점이 오히려 복지의 사각지대를 낳기도 했다. 2009년 초 ‘봉고차 모녀’가 대표적 사례다. 막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인천의 한 초등학생이 ‘엄마와 단 둘이 사는데 헌 봉고차 한 대를 갖고 있어 기초 수급 대상자가 안 된다’고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이 되면서 비슷한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가구당 자동차 보급률은 92%다. 승용차 등록 대수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설계 당시의 2배에 이르고 81.9%는 중대형이다. 큰 차를 타면 부자란 통념은 옛말이 된 셈이다. ‘자동차 노이로제’ 극복해야
민원이 쏟아지자 정부는 보육료 지원의 배기량 기준을 2005년 2000cc로, 2009년 2500cc로 높였다. 왜 하필 2500cc여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요즘은 배기량과 차량 크기, 가격이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현실에 맞지 않는 기준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은 “보육료 지원이나 노령연금은 기초생활보장제도와 달리 폭넓은 이들에게 정해진 액수가 지급된다”며 “이처럼 보편적인 복지사업에서 자동차가 장벽이 되어선 안 된다”고 봤다. 차량가액 위주로 기준을 통일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도 보편적 사업은 모든 자동차를 ‘일반 재산’으로 환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는 선뜻 나서지 못했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들은 ‘자동차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고 털어놓았다. 최 연구원은 “자동차 크기가 계층적 위화감을 자극하는 풍조가 아직 남아있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보편적 복지사업이 확대 추세인 만큼 이제는 근본적인 변화를 논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김유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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