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황 악화로 고전… 수익원 찾기 몸무림

도쿄 중심의 가부토초. 이곳은 일본 금융의 메카다. 월가(미국)·시티(영국) 등과 함께 세계 3대 금융가로 불리던 곳이다. 다만 지금은 아니다. 적잖이 퇴색됐다. 시황 악화 때문에 활기를 잃었던 탓이다.

지금은 고도성장과 버블 붕괴의 영욕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중적 의미로 더 유명하다. 요즘 일본 증권가의 거리 변신이 화제다. 물론 불가피한 변화다. 명성을 자랑하던 회사 간판이 자주 사라지거나 바뀐다. 퇴거 결단 혹은 합종연횡이다. 판단 근거엔 앞길이 안 보인다는 공감대가 공통적이다.

증권가의 풍경 변화는 업계의 변화 파고와 중첩된다. 살아남으려는 증권사의 간판이 수시로 교체된다. 중소 증권사의 업태 변경 및 폐업의 결과다. 지역 밀착형 노포증권사의 폐업과 타사에의 사업 양도 등이 일상적이다. 협회 회원사도 피크였던 2008년(325개)보다 40개사가 줄었다. 3년 연속 줄어 지금은 276개사에 불과하다.

가령 주지야(十字屋)증권은 창업 79년 만에 증권사에서 투자고문 회사로 옷을 갈아입었다. 도쿄거래소 옆의 8층짜리 본사 건물 중 2층만 남기고 나머진 회의실로 바꿔 운영 중이다. 120명 직원도 8명으로 감축했다. 올 2분기엔 무로세이(室淸)증권과 가네야마(金山)증권이 타사에 사업을 양도한 후 자취를 감췄다. 8월엔 대형사인 SMBC닛코(日興)증권이 본사 기능을 증권가에서 도내의 별도 빌딩으로 옮겨 썰렁함을 더했다.
[일본] 간판 바꾼 금융가…증권사가 커피를 파는 이유
이로써 증권가엔 ‘구조조정 잔혹사’가 광범위하게 확산 중이다. 끊이지 않는 흉흉한 소문이다. 그만큼 인원 감축을 통한 경비 절감이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상시적인 희망퇴직 후 인원 충당 없이 압축 경영을 실시하는 형태가 주류다.

내근 직원보다 직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식·채권매매 등 외근 직원의 고통이 심하다. 개인 상대의 대면 영업으로 매매 수수료를 챙기던 전통적인 비즈니스가 설 땅을 잃었기 때문이다. 실제 증권 종사자는 급감했다. 버블 직후였던 1991년 17만 명에 달하던 증권맨은 현재(2012년 6월) 9만 명 밑으로까지 줄어들었다. 금융 위기 이후 매년 7000~8000명이 떠나는 추세다. 불황의 파급효과는 증권가 주변 산업에까지 충격을 안겼다.

증권가 불황 압박은 차별적이다. 버텨내는 대형사에 비해 중소형사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도매 영업을 독점한 대형 증권사는 그래도 낫다. 법인영업이 힘든 중소 증권사는 그간 자기매매에서 활로를 모색했지만 그나마 새로운 매매 시스템이 시작돼 고전 중이다. 2010년 개시된 ‘애로헤드(Arrowhead) 시스템’이 그렇다.

컴퓨터가 자동으로 주식 매매 주문 타이밍과 수량을 정해 1밀리 초(1000분의 1초) 이하 속도로 주문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운용자에 의한 매매가 무의미해진 셈이다. 제아무리 빨리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 매매 버튼을 눌러도 컴퓨터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2013년 오사카거래소와 경영 합병 후 일본거래소그룹으로 재탄생하는 것도 도쿄거래소 소속 중소 증권사의 폐업을 가속화했다. 상장 이후 일본거래소 주식을 팔면 직원 퇴직금이나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증권사 부업거리가 화젯거리로 손색이 없다. 본연의 소매 영업으로 돈 벌기 힘들기에 다른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몸부림이다. 일례로 건물 일부를 활용해 부수입을 올리는 아카기야(赤木屋)증권의 카페는 이미 유명 스폿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본사 건물 일부를 개장해 3개 층, 94개 좌석의 커피 전문점을 열었는데 인기가 높다. 1922년 창업한 노포증권사의 수익 모델 다변화는 장기간에 걸친 매출 악화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 카드다. 구조조정(경비 절감)은 일찌감치 단행됐다.

3년 전 110명이던 직원은 희망퇴직으로 30명까지 줄였다. 회사 관계자는 “중소 증권사가 살아남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카페 외에도 다른 사업 모델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