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전문가들은 테마주의 시작을 한국 증시가 본격적으로 일반 투자자들에게 가까워진 1980년대 후반으로 본다. 1985년 말 163.37에 머물렀던 코스피 지수는 1989년 3월 사상 처음으로 1000까지 치솟았다.

이 가운데 특정 주제에 따라 군(群)을 이루고 있는 ‘테마주’도 등장했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테마는 1988년께 중국과의 공식 교류가 시작되면서 등장한 ‘만리장성 4인방(대한알루미늄·태화·삼립·한독약품)’이다.

언론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정치 테마주’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15대 대선(1997년) 때부터다. 이유는 김영삼 정부 때만 해도 아직 ‘정경유착’이 심했고 정보도 크게 제한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이나 권력자와의 친분에 관한 정보가 은밀히 주식시장에서 유통됐다. 또 그 정보에서 거론되는 기업 역시 극히 소수여서 ‘테마주’라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정치 테마주의 운명] 정치 테마주 히스토리, 15대 대선 때 등장…돌고 도는‘폭탄’
하지만 노무현 대선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격전을 치렀던 2002년께 본격적으로 ‘정치 테마주’가 등장한다. 정치 테마주는 정치인의 정책 혹은 개인적인 친분을 기반으로 하는 테마주다. 물론 김대중 정부 시절의 ‘닷컴 버블’ 역시 일종의 정치 테마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닷컴 버블이 워낙 광범위하게 생겨난 ‘일종의 현상’이라 테마주의 범주에 넣기는 힘들어 보인다.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맞붙었던 16대 대선은 ‘정치 테마주’가 본격적으로 싹튼 시기였다. 당시 노무현 후보가 내걸었던 ‘충청권 수도 이전 계획’은 수많은 관련 테마주를 쏟아냈다. 먼저 계룡건설·대아건설·한라공조·영보화학 등이 충청권 연고 기업으로 주목받았다. 또 수도 이전 계획으로 자산 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거론되며 충남방적·동양백화점·우성사료·동방 등의 주가가 치솟기도 했다.

이와 함께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 후에는 김대중 정부에서 추진된 ‘햇볕정책’이 계속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남북 경협 수혜주’가 관심을 끌기도 했다. 당시의 남북 경협 수혜주는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관련 기업 ▷위탁 가공 등 관련 기업 등이 소개됐다.
대선후보들의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27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서울역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김정욱기자 haby@2007.11.27
대선후보들의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27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서울역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김정욱기자 haby@2007.11.27
‘대운하’는 정치 테마주 중 최대 규모

반면 낙선한 이회창 후보와 관련된 종목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이회창 후보의 아들 이정연 씨가 대주주의 조카사위로 알려진 통신 장비 제조업체인 단암전자통신은 대선 다음날 바로 하한가로 직행했다. 또 대선 전날 노 당선자와의 공조 파기를 선언한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였던 현대중공업은 당일 10% 가까이 하락하며 대형주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07년 대선은 정치 테마주의 스케일을 크게 키웠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유력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등에 업고 중소 건설사들이 급등했다. 바로 아직까지도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대운하 관련주’다.

테마의 이유는 과거 테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호개발·이화공영·동신건설은 수중 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테마주로 주목을 받았다. 운하 공사를 하려면 수중 면허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에서 테마주가 됐다. 삼목정공은 철재 거푸집을 생산한다는 이유로 합류했다. 울트라건설은 1990년대 북악터널 공사를 했다는 점이 부각되며 테마주에 이름을 올렸다.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하려면 소백산맥을 터널로 뚫어야 한다는 논리가 먹혔다.

일례로 이화공영은 2007년 주가가 최고 33배까지 올랐다. 그해 12월 초순 3만1922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이 회사 주가는 직후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더니 연말에는 7531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이 회사의 현재 주가는 2235원(202년 10월 10일 종가)이다.

당연히 이명박 후보와 대통령직을 놓고 겨뤘던 정동영 후보가 내세웠던 공약인 ‘대륙철도’도 수많은 정치 테마주를 만들어 냈다. 폴켐·미주레일(현 일경산업개발)·코마스인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밖에 정동영 후보와 함께 민주당 후보 경선을 치렀던 손학규 후보 역시 테마주가 있었다. IC코퍼레이션·세지·한세실업 등이 그것이다. 이들 기업은 대표이사가 손 후보의 핵심 지지 세력인 선진평화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는 이유였다.

또한 2007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이회창 후보도 관련주를 이끌고 다녔다. 단암전자통신·아남전자·JS픽쳐스 등이 당시 이회창 관련주로 일컬어지던 주식이었다. 단암전자통신은 최대 주주가 이 후보의 ‘한 다리 건넌’ 사돈 관계여서, 아남전자는 최대 주주가 이 후보의 주요 후원회 일원이라는 이유로, JS픽쳐스는 특별한 인연도 없이 ‘그냥 소문’으로만 관련주로 언급되고 있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18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신경훈기자khsh@hankyung.com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18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신경훈기자khsh@hankyung.com
지방선거 때도 테마주 ‘들썩’

2007년 대선 이후 한동안 뜸하던 정치 테마주는 2010년 지방선거를 기점을 다시금 생겨나기 시작한다. MB 정부가 절반쯤 지난 시기이기 때문에 ‘차기 대권’을 누가 가져가느냐에 대한 관심이 솔솔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수많은 테마주를 몰고 다니는 박근혜 한나라당 18대 대통령 후보 관련주는 물론이고 김문수 경기 지사 관련주,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관련주, 오세훈 전 서울시장 관련주 등이 그것이다.

김문수 경기지사 테마주는 대주전자재료·한솔홈데코 등등이다. 대주전자재료는 회사 경영진이 김 지사와 서울대 선후배 관계라고 알려져서, 한솔홈데코는 회사의 사장이 김 지사와 경기고 동기로 알려져서 테마주로 거론된다. 또 김 지사의 정책에 따른 테마주는 경기도 안산 유니버셜스튜디오 사업과 관련된 대영포장·엠피씨·배명금속 등이 거론된다.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공통점은 ‘자전거 관련주’로 묶인다는 점이다. 이들은 둘 다 유명한 자전거 마니아들이다. 이 때문인지 이들이 특별한 정치적 행보를 보일 때면 자전거 관련주들의 주가가 크게 오르곤 한다.

작년 치러졌던 재·보궐 지방선거 역시 수많은 정치 테마주를 등장시켰다.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자 무상급식 관련주로 거론되던 여러 급식 업체들의 주가가 가격 제한 폭으로 치솟기도 했다. 물론 박 후보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웅진홀딩스·위닉스컴·풀무원홀딩스 등은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했다.

반면 박 후보와 서울시장을 놓고 경쟁했던 나경원 후보 관련주들(한창·오텍)은 곤두박질쳤다. 한창은 나 후보와 대표이사가 대학 동기라는 이유로 정치 테마주의 범주에 들어갔으며 오텍은 나 후보가 내놓은 장애인 복지 정책 수혜주라는 이유였다. 오텍은 장애인 차량을 생산하는 특장차 업체다.

이처럼 언제부터인가 선거 때마다 끊이지 않고 등장하는 정치 테마주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식의 다양한 해석을 통해 탄생한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일까. 2007년 정동영 후보 테마주로 거론됐던 ‘대륙철도 관련주’들이 최근 다시 부상하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안철수 무소속 18대 대통령 후보도 ‘대륙철도’를 언급하면서 철도 관련주들이 가격 제한 폭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세명전기는 상한가를 기록하며 6490원에 장을 마감했고 장중 한때 상한가까지 올랐던 대호에이엘은 4.91% 오른 3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역시 한때 ‘대륙철도 수혜주’를 이끌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2010년께 유라시아 대륙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자신의 구상인 ‘동북아 평화 번영 공동체 방안’을 현실화하기 위한 연구에 몰두하겠다고 밝혀 관련주들이 폭등하기도 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otmail.com